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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2.18 09:39 수정 : 2005.02.18 09:39

이연택 대한체육회장

[인사이드스토리] 검찰은 왜 엠바고를 요청했나

“엠바고를 요청할 게 있습니다.”

지난 15일 낮 서울중앙지검 1층 기자실에 이준보 3차장의 엠바고(보도 보류) 요청이 들어왔다. 서울중앙지검의 공보관 구실을 하는 3차장은 기자단 간사를 통해 엠바고 요청 사건을 설명할테니 오후 1시40분에 자기 방으로 오라고 했다. 기자실에서 가끔씩 벌어지는 풍경이다.

이 차장은 “이연택 대한체육회장을 내사하고 있다. 소환하려고 했는데 대한체육회장 선거가 오는 23일이라면서 연기를 요청해 와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 때까지만 엠바고를 받아달라”는 말을 꺼냈다. 그는 이어 “체육회장 선거 전에 소환 조사할 경우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가 있지 않겠느냐”며 엠바고 요청 이유를 설명했다.

혐의를 확인하려는 기자들의 질문이 잇따랐지만, 이 차장은 “땅과 관련된 비리”라고만 짧게 말할 뿐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당선된 뒤 형사처벌되면 재선거를 해야할텐데 차라리 지금 소환하는 게 낫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무혐의가 날 수도 있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검찰이 수사 예고해온 ’깜짝 놀랄만한 인사’… 엠바고 요청 안받아들여져


‘이연택’이라는 이름이 확인되는 순간, 기자들은 의문이 풀렸다는듯 표정이었다. 지난달 말, 고건호 특수3부장은 일부 기자들에게 “깜짝 놀랄만한 인사를 우리 방에서 (수사)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기자들은 ‘깜짝 놀랄만한 인사’가 누군지 각개전투식으로 취재를 벌였고, 일부 언론은 ‘팩트’에 꽤 접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보다 앞서 지난해 11~12월에도 각 언론사 정치부와 체육부에서 떠돈 ‘정보’에 따라 일부 검찰 출입기자들은 검찰이 실제로 이 회장을 수사하고 있는지 확인 취재에 나섰으나, 별 성과는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어쨌든 서울중앙지검 출입기자들은 이 차장의 방에서 나와 엠바고 요구를 받을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해 논의했다. 그러나 논의는 1분만에 싱겁게 끝났다. <중앙일보>가 “우리는 (내일치 신문에 기사를 쓰기로) 이미 기사계획이 잡혀 있다”면서 엠바고를 거부했다. 엠바고 요구는 한 언론사라도 반대하면 받아들이지 않는 게 원칙이다. 엠바고 수용을 거부하고 <중앙일보>가 기사를 쓰는 마당에 다른 언론사들도 기사를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잠시후 인터넷을 통해 <연합뉴스>를 시작으로 ‘이연택 대한체육회장 소환 방침’이라는 기사가 잇따라 나오기 시작했다.

기자들은 더욱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하려 했으나, 이 차장은 “엠바고를 받지 않았으니 앞으로 아무 것도 확인해 줄 수 없다. 엠바고를 요청할 때 했던 내 멘트도 신사협정상 기사에 인용하지 말아달라”고 전해왔다.

이것이 대한체육회장 선거를 앞두고 ‘표적수사’ 논란이 일고 있는 ‘이 회장 판교 땅 헐값매입 의혹사건’에 대한 언론의 보도 경위다.

검찰이 의도적으로 ‘표적 수사’를 벌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인지, 진실은 알 수 없다. 다만 보도 경위에서 볼 수 있듯이 검찰이 대놓고 ‘발표’를 한 것은 아니고, 그렇다고 ‘기자들에게 의도적으로 흘린’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럼에도 진실은 여전히 안개속이다.

▲ 김정길 대한태권도협회장
이연택 회장, 보도 뒤 나가자 “이미 해명된 일…음해 의도” 표적수사론

“노대통령 오랜 정치적 동지인 김정길 당선 노린 것”

언론 보도가 시작되자 이 회장은 기자실에 팩스로 성명을 보내 “2002년 6월 선거 때도 이 문제가 거론됐으나 모두 해명된 바 있는데 회장 선거를 앞두고 또다시 이 문제가 제기되는 것은 본인을 음해해 중도사퇴케 하려는 의도”라며 유감을 표명했다. 과거에 해명된 일을 선거를 앞두고 검찰이 새삼스럽게 다시 들춰냈으니 확실한 ‘음해 공작’이라는 것이다.

이 회장쪽이 ‘표적수사’ 의혹을 제기하고 나선 배경에는 선거 구도와 맞물려 있다. 오는 23일 선거를 치르는 제35대 대한체육회장 선거에는 이 회장과 김정길 태권도협회장(전 행자부 장관), 박상하 대한정구협회장, 김광림 21세기 생명·환경선교본부 총재 등이 나섰다. 이 가운데 이 회장과 김 회장이 치열한 2파전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의 이른바 ‘노심’이 오랜 정치적 동지인 김 회장쪽으로 작용하고 있고, 이번 검찰 수사도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는 게 이 회장쪽 주장이다.

체육계에서는 지난해 말부터 “열린우리당쪽에서 이 회장을 밀어내고 김 회장을 차기 대한체육회장으로 밀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이 때문에 이 회장쪽은 검찰이 진작 내사를 했으면서도 선거를 불과 1주일 남겨 둔 시점에서 사건이 불거진 점을 수긍하지 못하고 있다. 이 회장의 한 측근은 “지난 9일 출마를 선언했는데, 11일 밤 검찰에서 소환 통보가 왔다”며 외압 의혹을 제기했다.

대한체육회장 선거는 49개 가맹경기단체의 대표(회장 또는 부회장)로 구성되는 대의원들의 투표로 선출한다. 정치인 출신 회장은 모두 7명으로, 이 가운데 열린우리당 소속이 절반이 넘는 4명에 이른다. 김 회장을 비롯해 김한길(핸드볼), 이종걸(농구) 의원과 김덕배(아이스하키) 국회의장 비서실장이 그들이다. 야당은 한나라당 임인배(사이클) 의원, 민주당 김상현(산악) 전 의원, 무소속 정몽준(축구) 의원이 있다. 또 기업인 출신은 삼성 6명, 현대 4명이다.

김정길 “검찰 수사로 내가 더 곤혹…역풍 걱정”

정부의 ‘표적수사’인가, 엠바고까지 요구하면서 선거무관 수사하려 한 것인가?

‘정치적’으로만 따지면 열린우리당 소속이 유리하다. 여당 프리미엄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김 회장은 이런 주장에 대해 펄쩍 뛰고 있다. 그는 “차근차근 표를 다지고 있는데 검찰 수사로 내가 더 곤혹스럽다. 지금 검찰이 압력을 넣는다고 듣는 조직이냐. 당선 가능성이 높은데 되레 역풍이 불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검찰도 “지난해 11월 내사에 나선 뒤 관계자 계좌추적, 참고인 조사 등을 벌인 뒤 피내사자 소환 단계에 온 것일 뿐”이라며 선거를 앞둔 표적수사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대구지검은 17일 대구유니버시아드대회 옥외광고물사업자 선정 비리사건과 관련해 대한체육회장 선거에 출마한 인사를 수뢰 혐의로 수사하고 있고, 대한체육회장 선거가 끝난 뒤 소환하겠다고 밝혔다.

이 후보쪽은 “유력 후보들을 모두 죽이고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김 후보쪽에서는 “이것도 음해공작이라고 주장할 것이냐”고 말하고 있다.

진실은 분명히 존재한다. 거꾸로 말하면 이 회장과 여권 둘 중 하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당장 가려낼 방법은 없다. 앞으로 검찰 수사와 법원의 판단을 차분히 지켜볼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한겨레> 사회부 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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