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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2.21 14:18 수정 : 2005.02.21 14:18

“상당히 심사숙고한 판결” - “내기형태 뇌물 어떻게 처벌?”


서울 남부지법 형사6단독 이정렬 판사가 20일 억대 ‘내기골프’를 한 피고인들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자 도박의 법적 해석과 범위를놓고 논란이 뒤따르는 등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이 판사의 이번 판결이 그동안 내기골프나 내기장기 등 경기라도 돈을 걸면 도박으로 인식돼 온 사회통념에 어긋나는 데다 상급법원의 판례와도 배치되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판결이 서민들이 쉽게 접근하기 힘든 ‘귀족 스포츠’인 골프를 하면서거액의 판돈을 건 행위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것이어서 세간의 비판이 만만치 않은실정이다.

◆ “국가가 허용하면 도박 안되나?” = 재판부가 상습 내기골프를 한 피고인을무죄로 판결한 이유는 ‘운동경기는 화투처럼 우연이 승패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않고 기량이나 당사자의 육체적ㆍ정신적 조건 등에 의해 승부가 갈린다’는 것이다.

형법 246조에 따르면 도박죄는 ‘도박이란 재물을 걸고 우연에 의해 재물의 득실을 결정하는 행위’로 규정돼 있다.

이 판사는 “현재 학설과 같이 우연의 결정을 객관적인 요소가 아닌 주관적이라는 것이라고 한다면 결국 기능과 기술을 대해 승패를 결정하려 할 것이고, 이에 따라 승패가 결정된 때에는 우연이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이같은 논리에 따라 이 판사는 “골프는 운동경기의 일종으로 승패의 전반적인부분은 경기자의 기량에 의해 결정되고, 사소한 부분에 있어서만 우연이 개입하기때문에 도박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물론 재물을 얻으려고 속임수를 쓰거나 이른바 ‘짜고 치는’ 행위는 운동경기라할 지라도 도박죄와는 별도로 사기죄로 처벌할 수 있기 때문에 이 판사는 피고인들이 경기 결과에 돈을 걸었지만 승부는 어디까지나 실력대결이라고 본 것이다.

이 판결에 대해 법조계 일각에서는 상식을 뒤집은 ‘신선한’ 판결이라는 평가를내렸다.

대기업이 낸 수억원대의 상금을 건 운동경기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개인끼리 돈을 건 게임은 도박이라고 보는 사회적 통념 또는 상식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판결이라는 것이다.

중독자를 낳고 있는 강원랜드 카지노, 로또에 당첨이 되지 못해 동반자살을 기도한 부녀의 사례에서처럼 국가가 허용한 사행성 행위로 인한 부작용이 분명히 나타나고 있는데 도박죄를 적용하지 않는 것은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 변호사는 “이러한 불공평을 사람들이 아무 문제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지극히 국가주의적이고 자본가 중심의 시각”이라며 “분명히 경청해 볼 부분이 있는판결”이라고 평가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이번 판결에 대해 “상당히 심사숙고한 판결”이라며“판결의 가치는 갈릴레이 재판처럼 시간이 지나야 평가받겠지만 사법부의 역할은 사회적 가치에 고민과 문제제기를 끊임없이 해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무턱대고 비난만 하는 것은 성숙하지 못한 태도”라며 “사법부가 지배적 가치에 맞게만 판결한다면 다수의 전횡을 대변할 수 있고 상식과 가치의 오류를 시정할 기회를 잃게 된다”고 덧붙였다.

◆ “사회 통념과 정서 무시한 판결” = 그러나 이 판사의 판결을 두고 여론의 시각은 그리 곱지 않다.

보도가 나간 뒤 포털사이트 네이버가 실시한 인터넷 설문조사에서 참여 네티즌의 89.5%(1천996명)가 “운동경기만 도박에 예외일 수 없다”며 판결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냈을 정도다.

이 판사 역시 판결문 말미에 “아직까지 ‘귀족 스포츠’로 인식되는 골프를 하면서 수십차례나 다액의 재물을 건 행위는 도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며 사회적정서를 고려했다.

이 판결은 또 기존 판례와 맞선다는 점에서 상급심 판결이 주목된다.

가까운 판례는 지난해 1월 서울고법이 내기 골프를 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신안그룹 박순석 회장에 대해 도박혐의를 인정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실력이 결과의 주된 결정요소인 운동경기라 할지라도 우연이 조금이라도 개입됐고, 이 경기 당사자가 승부에 돈을 걸었다면 도박죄를 적용할 수 있다는 게 법원의일반적인 시각이다.

지방법원의 한 판사는 “운동경기가 순수하게 실력차에 의한 승부라고 할지라도요행을 기대할 수 있는 데다 이러한 판례에 따른다면 내기 골프로 뇌물을 주거나 재산을 양도하는 편법적인 행위를 처벌하기 어렵지 않겠느냐”고 우려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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