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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무학교서 참교육을 보다 |
1970년대 말부터 알게 된 풀무농업기술고등학교는 내 교육의 이상향이었다. 풀무학교에서 근무했던 선생님들이 전하는 풀무학교에는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교육이 있고, 그야말로 교육다운 교육을 몸으로 실천하는 선생님들이 있었다. 풀무학교에서 만들었다는 수준 높은 국어 독본은 나를 주눅들게 하기도 했다.
2월 봄방학을 이용해 교직원 연수를 하면서 먼저 풀무학교에 들르기로 했는데, 학교가 가까워지자 가슴부터 설레었다. 이찬갑, 주옥로, 홍순명 선생님 같은 참교육의 선각자들이 그야말로 고된 꿈을 꾸고 실천했던 곳이고, 그 땀의 향기가 곳곳에 스며 있는 공간이어서인지 금방 낯이 익었다.
우리 학교는 교장이 따로 없다면서 교장이라는 것이 어색한 듯 인사를 하는 정승관 교장 선생님은 몸에 밴 겸허와 친절로, 그리고 젊은 의욕과 의기와 자신감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잔잔한 미소에는 진실되게 산 사람이 풍기는 인간적인 체취가 물씬 묻어났다. 그러면서도 공교육에서 잃어버리고 포기한 소중한 화두들을 다시 확인시키고 각인시키는 것이었다.
위대한 평민을 육성한다는 설립 정신을 가지고 지금은 더불어 사는 평민, 깨어난 평민을 육성하고 있는 학교란다. 일하고 생산하는 즐거움이 소중한 공부가 되는 학교, 자기와 남의 가치를 함께 존중하는 학교, ‘졸업’을 ‘창업’으로 여기고 30명도 안 되는 졸업생을 위한 창업식을 1시간30분이나 하는 학교, 학생 하나하나를 우주로 보는 학교, 문제가 끊임없이 일어나는 학교, 그 문제 자체를 교육의 소중한 재료로 보는 학교, 학생의 변화를 끈기 있게 기다리는 능력을 가진 학교, 30가지의 동아리 활동을 통하여 학생들이 미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는 학교, 지역사회를 변화시키고 그 변화된 지역사회를 교과서로 활용하는 학교, 50년대부터 벌써 아시아를 가르친 학교, 사학이야말로 진정으로 사상이 깊어지는 교육을 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학교, 훌륭한 분들을 자주 초빙하여 가슴을 흔들어 주는 학교, 김남주의 시가 학교 현관에 버젓이 붙어 있는 학교, 선생님이건 학생들이건 벌거벗은 탓에 잘난 척할 틈이 없는 학교, 주어진 생명을 남김없이 다 쓰고 살라고 가르치는 학교, 학생 스스로 규칙을 만들어 가는 학교, 한 학년 40명이 너무 많아 감당이 안된다며 30명 이하를 고집하는 학교, ….
교장 선생님은 익숙한 솜씨로 부담없이 말씀을 하는데 귀를 기울이는 나의 입에서는 자꾸 얕은 신음소리가 나온다. 무두무미의 학교라는 것도 충격이었고, 민주적인 것이 비효율적인 것 같지만 오래되면 효율적이라는 깨우침이 또 가슴을 친다. 공동체 자체가 좋은 것이 아니라 ‘좋은 공동체’가 되어야 좋다는 말도 가슴을 울린다.
풀무학교에서 나는 우리 교육의 ‘오래된 미래’를 보았다. 아주 작지만 큰 학교를, 참교육과 큰 교육을 이루어 내는 땀이 밴 위대한 모습들을 가슴으로 보았다.
고춘식 서울 한성여중 교장 soam88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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