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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영희>의 영희는 어른스럽지만 어른 흉내를 내지 않고, 철수는 철부지이지만 깊은 속내를 가졌다. 철수의 진심은 결국 영희에게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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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철수♡영희> <여선생 vs 여제자> <귀여워>에 등장한 복잡하고 미묘한 초등학생들 “초등학교 4학년 하면, 그때부터 뭔가 생각이 많아지고 어른스러워지는 학년 아닙니까?… 저도 그맘때 노을을 보면서 ‘내가 왜 이러고 사나’ ‘사는 게 뭔가’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영화 <철수♡영희>의 음악 발표회에서 교사가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하는 대사다. 돌이켜보면, 공감이 간다. 초등학교 4~5학년이면 사춘기가 시작되는 때다. 고민이 복잡해질 뿐 아니라 연애에도 관심이 생기는 나이다. 지난해 연말과 올 초 잇따라 초등학생의 섹슈얼리티를 다룬 영화가 개봉됐다. 올 1월 개봉한 <철수♡영희>, 지난해 12월 상영된 <여선생 vs 여제자>가 있다. 이에 앞서 <귀여워>가 ‘전무후무’한 초등학생 캐릭터를 선보였다. <철수♡영희>는 연애에 목숨 안걸어~ <철수♡영희>는 어느 소도시에 사는 초등학교 4학년 철수와 영희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영희(전하은)는 어른스러운 아이다. 전학을 오자마자 수학시험 1등을 하고, 여자반장으로 뽑히는 영민한 아이다. 부모가 교통사고로 숨지고, 할머니와 살지만 결코 기죽지 않는다. 영희의 짝인 철수(박태영)는 입에 실내화를 물고 벌 서는 것이 하루 일과인 개구쟁이다. 영희를 좋아하지만 표현하는 방법을 모른다. 하지만 철수가 영희를 위기에서 구해주면서 둘은 가까워진다.
<철수♡영희>는 초등학생의 세계를 어른의 축소판으로 그리거나 순수한 동심의 세계로 묘사하는 양쪽의 한계를 동시에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았다. ‘있는 그대로’의 초등학생 모습에 다가섰다는 것이다. 어른들은 ‘어린이 오리엔탈리즘’에 빠지기 십상이다. 대개 어른들이 만든 어린이에 대한 이야기는 ‘까진’ 어린이에 대한 공포에서 시작해 역시 ‘순수하다’는 안도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철수♡영희>는 그 공식을 배반한다. 예컨대 <철수♡영희>에서 연애는 목숨 걸린 문제가 아니다. 철수는 영희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하지만 어른 흉내를 내지는 않는다. 영희는 레코드 가게 아저씨를 은근히 연모하고, 남자반장에게 호감을 가진다. 철수는 영희와 아저씨가 같이 있는 모습을 훔쳐볼 뿐 별다른 행동을 하지는 못한다. 어느 날 아저씨에게 “영희가 아저씨 가게에 자꾸 가요?”라고 묻는다. 아저씨는 “영희가 듣고 싶은 노래를 녹음해주는 거야”라고 답한다. 순박한 소년은 “아저씨, 땡큐!”라고 말하며 안도한다. 그리고 영희에게 필요한 CD플레이어를 사주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살이 빠지도록 신문배달을 하여 CD플레이어 살 돈을 마련한다. 이처럼 <철수♡영희>에서는 딱 이해가는 정도의 질투가 표현된다. 영희도 레코드 가게 아저씨가 좋아하는 서점 아가씨를 질투한다. 하지만 영희의 질투 어린 행동은 서점에 책을 사러 갔다가 레코드 가게 아저씨가 선물한 장미 화분을 보고 슬쩍 넘어뜨리고 나가버리는 정도다. 더 이상 심각해지지는 않는다. 영희를 미워하는 부잣집 아이인 유리의 캐릭터도 악녀 이미지에서 벗어나 있다. 유리는 영희가 반장으로 당선되자 “뒤뜰로 나와”라고 했다가 맞장을 뜨기는커녕 함께 고무줄 놀이를 한다. 자신의 CD플레이어를 도둑맞았다고 야단을 피우다가 철수에게 누명을 뒤집어씌우지만, 자신의 실수임을 깨닫고 담임에게 고백한다. 철수는 그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웃음을 짓게 만드는 캐릭터다. 철수는 뭐 하나 잘하는 게 없다. 밥 먹듯이 벌을 서고, 고무줄을 끊어놓고 도망치기 일쑤다. 초등학교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있는 듯 없는 듯’한 아이다. 하지만 영희와의 첫 수학공부 시간, 철수가 영희가 기다리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문방구에 갔다 오며 자랑스럽게 “빅파이!”를 내밀 때 그 자연스러움에 웃음이 새어나온다. 억울하게 CD플레이어 도둑으로 몰려 화장실 청소를 하면서도 ‘아무 생각 없이’ 열심히 걸레질을 하는 철수의 모습에서는 세상사에 찌든 어른들은 도저히 갖기 힘든 ‘도저한’ 낙관주의가 배어나온다. 철수는 순수하기보다 순박하다. 영희가 철수에게 묻는다. “산이 좋아 바다가 좋아?” 철수가 대답한다. “산은 꼭대기에 도시락이 있어서 좋고, 바다에는 호텔이 있고, 호텔에는 뷔페식당이 있어서 좋아.” <철수♡영희>의 황규덕 감독이 철수 역을 맡은 박태영군과 나눈 대화를 그대로 옮겨온 대사다. 이처럼 <철수♡영희>에는 리얼리티가 살아 있다. 하지만 그 리얼리티는 ‘선한 면’을 보여주기에는 충분하지만, ‘선악의 양면’까지 드러내지는 못한다. 아이들이 변한 현실을 감안하면 복고풍의 리얼리티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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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선생님 맘뺏기에 열올리는 여제자 <여선생 vs 여제자>는 여제자 고미남(이세영)이 여선생 여미옥(염정아)과 젊은 미술 선생 권상춘(이지훈)을 두고 맞장을 뜨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초등학교 5학년 미남은 어른 뺨치는 아이, 선생을 울리는 아이다. 여선생은 잘생긴 미술 선생이 부임하자 첫눈에 반한다. 하지만 미술 선생에게 반한 것은 여선생뿐만이 아니다. 여선생이 담임을 맡은 5학년3반 여자아이들도 미술 선생의 마음을 얻기 위한 경쟁에 뛰어든다. 5학년 여학생들은 미술 선생이 잠시 자리를 비우면 다들 거울을 보느라 바쁘다. 미술실을 몰래 찾아가 카메라폰으로 미술 선생의 ‘몰카’를 찍기도 한다. 하지만 미남은 군계일학이다. 미남은 미술 선생의 ‘폰번’을 알아내고 작업을 건다. 미술 선생과 스테이크를 썰며 데이트를 하고, 선생의 차를 타고 드라이브까지 즐긴다. 아베크족이 모이는 공원에서 차를 세워두고 선생님에게 “키스하면 정말 산낙지 먹는 것 같아요?”라는 당돌한 질문을 던진다. 이 사실을 안 아이들은 “고미남이랑 미술이랑 사귄대”라고 호들갑을 떤다. 장규성 감독은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선생 김봉두>를 찍을 때 여자 아역이 남자 스태프에게 ‘섹스는 해봤냐’고 물어보는 것을 보고 <여선생 vs 여제자>의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말했다. 미남이를 무시하던 여선생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수습에 나선다. 여선생은 갈수록 아이가 되고, 미남은 갈수록 어른이 된다. 급기야 여선생은 “여자 대 여자로 이야기해보자”고 제안하지만, 미남은 콧방귀도 끼지 않는다. 여선생은 대응책으로 미남의 어머니에게 미남의 학교 생활에 문제가 많다고 ‘고자질’한다. 하지만 미남은 장학사들이 보는 앞에서 여선생에게 망신을 줘 복수한다. 화가 난 여선생은 미남이의 뺨을 때린다. 여선생이 미남이를 때리는 장면이 인터넷에 올라와 학교가 발칵 뒤집힌다. 여선생 반 아이가 카메라폰으로 찍은 동영상을 올린 것으로 밝혀진다. 여선생은 결국 사표를 낸다. 이때부터 <여선생 vs 여제자>는 갑자기 치열한 코미디에서 화해의 드라마로 바뀐다. 아이들은 여선생의 부재를 실감하고 여선생을 그리워한다. 미남이도 여선생이 자신에게 관심을 주지 않자 미술 선생님을 꼬셔 앙갚음을 하려고 했다고 고백한다. 여제자가 원한 것은 남자의 사랑이 아니라 선생님의 관심이었다고 영화는 말한다. 미남이 아버지의 부재가 강조되면서 미남이는 조숙한 애어른에서 애정결핍에 시달리는 아이로 추락한다. <여선생 vs 여제자>와 <철수♡영희>에서 아버지의 부재는 아이의 조숙을 불러온 이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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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선생 vs 여제자>가 ‘조숙한 척하지만 알고 보면 어린애’라는 어법에 충실하다면, <귀여워>는 ‘착한 어린이 신화’를 여지없이 깨뜨린다. <귀여워>는 청계천 철거촌을 배경으로 한 영화다. 철거촌의 황량한 폐허 위에서 뒹구는 아이들에게 가족은 물론 학교, 또래 집단까지 모든 사회적 관계가 지워져 있다. <귀여워>에서 아이들은 어른들의 다른 이름이다. 이 영화에 착한 아이는 없다. 남자아이는 모두 악동이고, 여자아이는 어린 마녀다. 초등학교 고학년쯤으로 짐작되는 여자아이는 좋아하는 남자 어른(개코)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행동도 마다하지 않는다. 슬쩍 개코에게 다가가 웃음을 흘리며 “나 어제 멘스했어”라고 말하고, 개코가 좋아하는 아가씨(순이)를 음해한다. 음해가 통하지 않자 순이와 머리채를 잡고 싸우기도 한다.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코흘리개 형제는 약에 취해 비행을 일삼는다. 악동들의 장난감은 ‘에프킬라’에 불을 붙여 만든 화염방사기다. ‘어린이’는 핵가족의 발명품이다? 어른들도 아이들을 다르게 ‘대접’하지 않는다. 보호하지 않는다. 순이는 여자아이와 화해하면서 ‘글라스’에 소주를 부어주고, 여자아이는 ‘원샷’한다. 어른은 악동들에게 범죄를 교사하기도 한다. 악동들은 아직 사람이 살고 있는 철거촌 아파트에 석유를 뿌리고, 에프킬라 화염방사기로 불놀이를 즐긴다. 악동들의 놀이로 아파트에는 큰 화재가 난다. 이처럼 <귀여워>는 작은 양아치와 어린 마녀의 이미지로 ‘어린이’가 근대 핵가족의 발명품임을 말한다. 가족의 보호와 학교의 훈육이 없으면 아이들도 없다는 것이다.
글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동방신기와 초딩 음해론 동심천사주의 ‘동요’를 잊고 화려한 ‘대중가요’에 몰두하는 초등학생들 1970년대까지는 ‘초등학생:중고생:성인=동요:가곡:성인가요’라는 공식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팝과 포크송의 물결이 밀려오면서 가곡은 사라지고, 중고생들도 가요를 부르기 시작했다. 연예산업이 한층 발전함에 따라 가요 향유층의 나이는 계속 내려갔고, 지금은 초등학생이 학예회에서 가요를 부르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타깃을 세분화하는 마케팅 전략은 ‘우리만의 오빠’를 내놓기에 이른다. SM엔터테인먼트에서 ‘H.O.T’에 이어 내놓은 남자그룹 ‘동방신기’는 그 성공 사례다. TV만 틀면 나온다. 초등학생도 공식 홈페이지에서 부모님 허락하에 충전식 선불카드로 만들어진 회원카드를 발급받아 팬클럽 점퍼를 사서 공개 방송에 놀러간다. 화려한 춤과 외모는 계속 봐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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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된 팬클럽 문화의 부작용은 ‘팬과 안티’의 감정적인 싸움이다. 다음 최대의 안티 카페인 동방신기 안티 카페의 회원 수는 24만5천명으로 동방신기 공식 팬카페 ‘카시오페아’의 회원 수 10만8천명을 훨씬 웃돈다. ‘아카펠라 댄스그룹’이라는 타이틀에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도 있지만, 공개 방송에서 ‘몹쓸 짓’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다른 팬클럽의 반발 덕분에 안티 세력의 세가 커지게 됐다. 지금도 핑클 팬들은 “동방신기 팬클럽의 펄레드 풍선은 원래 우리 것”이라며 불쾌해한다. 2월24일 네이버에 뜬 기사 ‘동방신기 안티팬들 고 이은주 모독 시도’로 다시 싸움이 시작됐다. 연예·레저 인터넷 신문을 표방하는 <고뉴스>에서 공급한 이 기사는 안티들의 지나친 행동을 비판하고 있는데, 해당 안티 카페의 시솝은 “우리를 음해하려는 동방신기 빠순이가 내 아이디를 해킹해서 조작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양쪽에서는 동일하게 “어느 초딩 안티 짓이냐” “초딩 빠순이가 했군”이라는 말이 되풀이된다. 초딩의 실체는 없지만 초딩 음해론은 어느새 큰 힘을 얻었다. 한편 “콩쿠르용이다” “동심천사주의다”라는 비판에 시달리던 동요는 방송창작동요제등을 통해 변신의 노력을 보여주지만 입지는 더욱 좁아지고 있다. 2003년 초 서울YMCA가 실시한 동요보급 실태조사(수도권 지역 1779명)에 따르면, 47.5%의 아이들은 가장 좋아하는 음악으로 ‘가요’를 꼽았다(2002년 60.0%). 동요를 즐기는 아이는 25.0%로 1993년의 45.6%에 비해 급격히 줄어들었다. 동요는 ‘수업용’이다. 공중파 유일의 동요 프로그램인 한국방송 <열려라! 동요세상>은 모든 어린이에게 참가 기회를 주는 등 대중화를 위해 노력을 기울이지만 역부족이다. 1999년 10월 첫 방송 이후 200회 가까이 방송을 해왔지만, 토요일 한낮의 프로그램은 아이들과 멀다. “가요는 아이들의 음역대에 적당하지 않다”는 한 동요 작곡가의 지적도 파묻힐 뿐이다. 아이들은 ‘오빠’들을 향한 맹목적 사랑을 염려하는 어른 눈을 비껴 일상에서 탈출하고자 한다. 학교 수업 제끼고 공개 방송 가는 소수의 아이들 옆에선 성적 고민에 지쳐 있다가 갑자기 눈을 반짝이며 좋아하는 가수 얘기에 열올리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있다. 대중문화를 통해 성인의 감정을 학습하고 소비적 향유에 동참하는 게 일반적인 요즘, ‘아이들의 음악도 대중가요로 하자’고 인정해버리고 말면 끝인지 사회의 고민이 필요하다.
김수현 기자 groov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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