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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럼없이 연애하는 뜨거운 초딩들… 질투와 배신 등장하는 속전속결 감정은 어른의 복사판? 이성친구가 있는 아이들끼리 뭉쳐 ‘더블데이트’를 하다가 그 안에서 새로운 커플이 탄생하는 것도 흔한 일이다. 초등학교 교사 정다운씨는 “아이들이 감정에 몰입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론 그 감정을 흉내내거나 연습하는 성향도 있기 때문에 그만큼 빨리 사귀고 빨리 잊는다”고 설명한다. 초등학생 딸을 키우고 있는 김아무개(38)씨는 몇달 전 딸의 ‘스캔들’에 몸소 뛰어들어야 했다. 어느 날 딸 하영(가명·12)이가 울부짖으며 털어놓은 사건의 진상은 이랬다. “남자짝 여친인 민지(가명)가 날 몹시 질투해. 내가 지 남친이랑 뽀뽀했다나. 친구들한테 나랑 못 놀도록 꼰질러서 나는 완전 ‘따’야. (엉엉~)” 두달새 원형탈모증까지 생길 정도로 맘고생이 심한 딸을 그냥 내버려둘 수 없어 학교를 찾았다. 민지는 어른 앞에서 기죽기는커녕, 친구들과 함께 빙 둘러서서 당당히 따졌다. “아줌마라도 남친 관련해서 그런 소리 들으면 기분 좋겠어요?” 맹랑한 질문공세에 한대 쥐어박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으나, 어른은 그래도 어른, 참아야 했다. “뜬소문 때문에 친구를 맘 아프게 하면 옳지 못한 일”이라고 찬찬히 일러주고 뒤돌아섰다. 김씨는 “요즘 애들이 발육이나 정서적 성장이 빠른 반면 어설프게 어른들의 스캔들이나 삼각관계 이미지만 보고 기형적인 면만 닮는 경우가 있다”며 걱정스러워했다. 공식선언! 무조건 둘만 있고 싶어라 초딩의 당돌한 연애가 뜨겁다. 20대 커플의 전유물이라고 여겨졌던 ‘커플링’ ‘백일기념일’은 이제 아이들에게 낯선 것이 아니다. 서로 사귀자는 뜻이 맞으면 학교 앞 문구점으로 달려가 구슬반지라도 사서 나눠 낀다. 용돈이 풍족한 아이들은 동네 금은방에서 18K 금반지를 선물하기도 한다. 밸런타인데이·화이트데이를 비롯해 빼빼로데이·로즈데이 등 각종 기념일을 챙긴다. 사귄 지 100일이 되면 커플끼리 선물하는 것은 물론, 친구들로부터 촛불잔치 같은 공개적인 축하를 받는다. 사귀는 것이 공식화되면 애정을 표현하는 데 별 스스럼이 없다. 올해 4학년이 되는 혜승(가명)이는 지난해 같은 반에 있던 유명한 커플 얘기만 나오면 낯빛부터 달라진다. “미나랑 은수. 걔네들 진짜 얄미워요. 짝 배정할 때도 자기들끼리 미리 속닥속닥 짜놓고 지들끼리만 앉고, 어딜 가든 늘 붙어다녀요. 점심시간에 급식당번을 맡으면 달걀말이 같은 거 더 많이 얹어주고. 정말 눈꼴시려요.” 지난해 혜승이의 생일잔치에 초대됐을 때도 닭살커플들은 계속 빈방을 찾아다니며 둘이서만 있으려고 해서 혜승 엄마가 함께 놀도록 타이를 정도였다. ‘사귄다’는 말이 통용되는 것처럼, ‘질투’ ‘이별’ ‘배신’ ‘삼각관계’ 같은 개념도 자주 등장한다. 어른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이성관계의 패턴이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로 나타나는 것이다. 인터넷·TV 등을 통해 학습한 개념을 별 의심 없이 바로 적용하고 그것으로써 자신을 설명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반에서 인기 많은 남자애 또는 여자애 한명을 두고 여럿이 좋아하는 경우엔 다양한 경로로 ‘승자’가 결정된다. 예진(13)이는 지난해 같은 반 남자애들 3명이 한꺼번에 집에 찾아온 일이 있었다. 아이들은 각자 꽃·반지·지갑 등의 선물을 가지고 왔고, 예진에게 3명 가운데 맘에 드는 남자를 고르라고 요구했다. 고민하던 예진은 “생각해보고 나중에 얘기해주겠다”며 달래 보냈다. 때로 연애는 성취도를 높여줘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대성(13)이는 지난해 여자친구를 짝꿍으로 맞기 위해 갑자기 모범생으로 변했다. 일기·숙제를 열심히 해가면 담임 선생님이 주는 5가지 쿠폰 중 하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성이는 ‘점심시간 인터넷 사용권’ ‘청소 면제’ ‘점심 먼저 먹기’를 제쳐두고 ‘1주일간 원하는 짝과 앉기’를 골랐다. 성적이 우수한 예진(13)이는 남자친구가 공부 못한다는 소리가 듣기 싫어 ‘협약’을 맺었다. ‘평균 50점이 돼야 사귄다’는 조건이었는데, 바짝 긴장한 남친은 그 다음 시험에서 ‘51점’을 받았다. 그렇다면 초등학생들이 ‘이성’을 인식하는 것은 언제일까? 강원도에서 6년째 초등학교 교사를 하고 있는 정다운(29)씨는 “도시·농촌 상관없이 2학년 때쯤부터 서로 ‘사귄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때는 독점적인 관계라기보다는 좋아하는 감정을 별 의식 없이 표현하는 단계”라고 설명한다. “2~3학년 때는 남을 의식하지 않고 쉬는 시간에 놀다가 뽀뽀를 한다. 그러다 5학년쯤 되면 슬슬 ‘체육관에서 쟤들끼리 키스했대요’라는 소문이 돈다.” “집으로 데려와" 표정관리 어려운 부모 초딩들의 연애에선 몸과 마음의 성장이 더 빠른 여자애들이 주도권을 쥐는 경우가 많다. 사귀자고 먼저 제안하는 쪽이 여자가 더 많고 데이트의 내용을 결정하는 것도 여자들이다. 경기도 분당의 초등학교에서 6학년 담임을 맡았던 박지영(29)씨는 “여자는 키 크고 조숙한 애들이, 남자는 매너·수단이 좋은 애들이 인기가 많다”고 말했다. 남자애들은 같은 나이라도 연상 같은 스타일에 쏠린다는 것이다. 초딩 연애에서 또 하나의 특징은 ‘주기’가 짧다는 것이다. 아무리 조숙해도 아이들은 아이들이기 때문일까. 사귐과 이별이 속전속결이다. 사귄 지 22일째 되는 날을 ‘투투데이’라고 부르며 기념할 만큼 교제시간이 길지 않고, 보통 아무리 길어도 5~6개월 정도다. 이성친구가 있는 아이들끼리 뭉쳐 ‘더블데이트’를 하다가 그 안에서 새로운 커플이 탄생하는 것도 흔한 일이다. 정다운씨는 “아이들이 감정에 몰입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론 그 감정을 흉내내거나 연습하는 성향도 있기 때문에 그만큼 빨리 사귀고 빨리 잊는다”고 설명한다. 어린 연애꾼들의 범람 앞에서 부모들은 표정 관리가 어렵다. 아들·딸이 인기가 많은 것을 은근히 자랑스러워하는 한편, 어른들이 한눈파는 새 혹시 ‘도’를 넘을까봐 걱정스러워한다. 올해 중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학부모들은 털어놓았다. “솔직히 ‘이성친구 사귀지 마라’라는 말은 할 수 없다. 오히려 자연스럽게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알아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친구가 생기더라도 집으로 데려와서 놀았으면 좋겠다. 음지보다 양지가 좋은 법이니까. 하지만 솔직히 나도 ‘자연스러운 선’이 뭔지는 잘 모르겠다. 나도 헷갈리는데 애들이야 오죽할까.”
글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딥’은 안하고 살짝 입술만 대겠어요” 온라인 성 상담소 ‘푸른 아우성’ 초딩게시판… 질문 수준 심화되고 있지만 성지식은 26점? 성교육 전문가 구성애씨가 운영하는 온라인 상담소 ‘푸른 아우성’(www.9sungae.com) ‘초딩 게시판’은 상담 선생님들이 직접 리플을 달지 않고 회원들끼리 자발적으로 의견을 나누는 것이 특징이다. 이곳엔 매일 수십건의 글이 올라온다. “인터넷에 뜨는 음란물을 보면 묘한 느낌이 드는데 왜 그런 걸까요?” “포경수술을 할 때 여자 간호사가 어떻게 하나요?” “11살인데 벌써 생리를 합니다. 자위를 해서 그런가요? 키가 안 크면 어떡하나요?” 사춘기에 들어서 급격히 나타나는 몸의 변화를 묻는 내용이 대부분이지만, 가끔 구체적인 상황을 거론하며 의견을 묻는 경우도 있다. “이틀 뒤에 학교에서 수련회를 갑니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애도 함께 가는데 우리는 키스를 할 계획이에요. 키스한다고 설마 임신은 안 되겠죠? 어디까지 허락해야 할까요?” “물론 임신은 안 되죠. 그치만 글케 금방 키스하면 님을 남들이 쉽게 보지 않을까요?” “저라면 일단 ‘딥’은 안 하고 살짝 입술만 대겠어요.” ‘푸른 아우성’의 박정임 총무팀장은 “아이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 속에 답이 있기 마련”이라고 말한다. “어른들의 도덕적 충고나 선입견에 젖은 의견보다는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주고받는 게 훨씬 설득력이 있어요. 가령 어떤 아이가 가슴이 짝짝이라서 죽고 싶다고 하면, 부지런히 리플이 달리죠. ‘짝짝이라고 큰일 아녜요. 나중에 변할 수도 있고. 하지만 그게 죽을 일은 아니네요.’ 현명하고도 명쾌한 답들을 보면서 어른들도 놀랄 때가 많아요.” 2002년 오픈한 ‘초딩 게시판’은 점점 더 질문의 수준이 ‘심화’되고 있다. 가령 3년 전만 해도 ‘자유행위(자위)가 몬가요?’라는 ‘순진한’ 질문이 많았으나 이젠 ‘자위할 땐 손을 꼭 씻어야 한다던데?’라는 식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박 팀장은 “인터넷을 통해 빠르게 성 지식이 확산되면서 하루가 다르게 아이들이 변해가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정확한 성 지식을 어느 정도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전국의 남녀 초등학생 2044명(3학년 이상)을 대상으로 조사한 ‘한국 초등학생의 성의식과 성행태에 관한 연구’(1999년·경기대 김상원 교수)에 따르면 ‘난자는 여자의 자궁에서 만든다?’ ‘콘돔이란 무엇인가?’ ‘키스하면 임신할 수 있다?’ 등의 7가지 문제를 질문한 결과 평균 성적이 100점 만점에 26.2점에 불과했다. 단, 학년별로는 차이가 있어서 3학년 평균은 17.1점인 반면 6학년은 30.4점을 기록했다. 김상원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성폭력의 대상이 되는 연령층이 8~13살이고, 첫 성경험이 가장 많은 연령이 15~16세라는 사실을 떠올릴 때, 초등학생 성교육이야말로 앞으로 국민들의 성생활의 토대를 이루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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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대한민국 초딩은 무엇으로 사는가 26
디지털 문화를 접하며 자란 초등학생들이 강력한 소비 계층으로 떠오르고 있다. 휴대전화, MP3, 게임 등 초등학생 대상 마케팅 산업이 번창하고 있다. 업체들이 따로 부모에게 접근할 방 법을 찾지 않아도 아이가 알아서 판촉에 나선다. 대한민국 초등학생들은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스스럼없이 연 애하며 질투와 배신도 일찍 알아버린 아이들. 21세기 ‘초딩’ 들의 풍경을 살펴본다.
[초점] 정태수, ‘ 왕회장’ 집에 세들다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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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트렌드] 이 편한 세상, 이빨 편한 세상! 40
암, 고혈압, 당뇨는 걱정하면서 왜 우리는 치아에 관 심을 기울이지 않을까. 당신이 방치한 ‘치아’가 당신에게 말을 건다. 치아에 관한 세밀한 정보에서 잘못 알고 있는 상식과 편견, 구강정책에 관한 역사까지 조곤조곤 설명해준다. 치아에 관해 제대로 알면 당신의 생활이 행 복해진다.
[문화] 터프가이의 눈물, 맘을 흔드네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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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목포를 얻으려면 호남을 얻는다” 64
‘호남 1번지’ 목포를 얻으려는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의 자존심 대결 현장을 갔다. 목포시장 전태홍씨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열리는 4월30일 보궐선거 바람이 벌써 뜨 겁다. 앞선 것으로 점쳐지는 민주당에선 ‘후보 경선 공정성 논란’이 한창이고, 열린우리당에선 물밑 기류가 일 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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