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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칭의 광복군 사령부로 쓰던 건물의 내부. 오래된 목조건물이 제대로 보전되지 않고 음식점의 주방 등으로 사용돼 심한 악취와 먼지로 가득하다. 충칭/윤운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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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하 ‘대한민국 임시정부’ 가 외롭게 버티던 곳 중국땅 깊숙한 곳 모두 지워져간다
쓰려질듯 낡은 목조건물 동네아이 깔고노는
빛바랜 작은 비석만이
선열들의 통한을 아스라이 기억할뿐…
광복 60년이 이리 무심타 건물은 쓰러질 듯 위태롭게 서 있었다. 낡은 목조건물 앞에 덩그러니 놓인 비석만이 이곳이 한때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였다는 사실을 일깨우고 있다. 비석은 이미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로 변한 듯, 꼬마 펑샤오수(4)는 비석 위에 올라 낯선 손님에게 손을 흔들며 웃는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32년 4월29일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훙커우공원 의거 이후, 일본의 집요한 추적을 피해 창사, 광저우, 류저우 등으로 떠돌다 1940년 8월 중화민국의 임시수도 충칭(중경)에 자리잡았다. 임시정부는 충칭에서만 네번이나 건물을 옮겨 다녔는데, 이 건물은 임시정부가 세번째 청사로 썼던 ‘오사야항 1호’ 청사다. 이에 앞서 양류가와 석판가에 있던 청사 2곳은 일제의 폭격으로 파괴됐다. 이 동네에서 30년을 살았다는 황안즈(70·여)는 “처음 이사왔을 때만 해도 3층짜리 목조건물이 깔끔하고 좋았는데 지금은 이렇게 망가졌다”고 말했다. ‘오사야항 1호’ 청사는 주변 재개발 붐에 밀려 곧 철거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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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와 광복군이 벅찬 해방의 감격을 누렸던 ‘독립군의 성지’ 충칭에서, 우리 독립투사들의 혼이 깃든 유적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다. 1996년 독립기념관이 펴낸 <중경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복원 보고서>를 보면, 충칭에는 △광복군 총사령부 △광복군 1지대 본부 △임시정부 오사야항 1호 청사 △임시정부 연화지 38호 청사 △토교 한인촌 건물 등이 일부나마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렇지만 9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광복군 1지대 본부와 토교 한인촌 건물 등은 이미 사라졌고, 오사야항 1호 청사와 광복군 총사령부도 주변 재개발 붐에 밀려 사라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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