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3.02 10:02
수정 : 2005.03.02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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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치있는 입담과 코믹한 표정연기로 승객들에게 즐거움을 안겨주는 택시기사 박희옥 씨. 28년 무사고 경력에 영어 솜씨도 수준 급이다.(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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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을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모시는 일만이 전부가 아닙니다.피로에 지친 손님이 잠시나마 웃으며 쉴 수 있게 해드리는 일 또한 제겐 중요한 일이죠."
재치있는 입담과 코믹한 표정 연기로 목적지에 가까워가는 승객을 아쉽게 만드는 택시기사가 있어 화제다.
28년째 택시를 몰며 서울 시내를 누비는 박희옥(65)씨의 옆 좌석 앞에는 `지옥에서 돌아온 박기사(Driver Park Returned from Hell)'라는 소름끼치는 소개 글이적혀있다.
승객들이 "이게 무슨 소리냐"며 묻는 순간 박씨는 "사연을 들어보겠느냐"며 `달리는 코미디언'으로 돌변한다.
레퍼토리도 다양하다. 우선 박씨는 1970년대 라디오 뉴스에서나 나왔을 법한 비음섞인 목소리로 뉴스몇 꼭지를 들려준다.
뉴스에는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과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 등 굵직굵직한 등장 인물들이 나오고 승객들은 자못 진지해진다.
그러나 거창하게 시작한 뉴스는 뜻밖의 `허무 개그'로 끝을 맺으면서 택시 안은웃음바다가 된다.
승객이 다음 코너를 기대할 때쯤 박씨는 근엄한 표정의 존 웨인, 차가운 분위기의 찰스 브론슨 등 할리우드 배우 표정을 연기하는가 하면 느닷없이 구석에서 코안경을 꺼내들고 익살스런 찰리 채플린의 표정 연기를 이어간다.
물론 28년 무사고 경력의 박씨는 안전 때문에 동작이 들어가는 공연은 차가 정차할 때만 보여준다.
때문에 아무리 짜증스런 교통정체가 이어져도 박씨의 코믹 연기에 매혹된 승객들은 미터 요금이 올라가는 것도 잊어버린다.
전파상을 하다 1977년부터 운전대를잡은 박씨에게 택시기사 일은 천직이다.
그런 박씨에게 1998년 초 뜻하지 않은 일이 찾아왔다.
4개월 간격으로 간염과 췌장염이 발병해 박씨는 20년간 정든 택시 일을 접어야했다. 그러나 사람을 좋아하고 택시운전이 천직이라고 여겨온 박씨는 병세가 어느정도 회복된 2001년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지옥에서 돌아온 박 기사'는 이런 투병 생활을 이기고 돌아온 자신을 뜻한다.
박씨는 또 스스로 `달리는 외교관'이라 여긴다.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1988년 9월 서울시가 주최한 택시기사 영어회화 대회에서우수상을 탈 정도로 영어 솜씨가 수준급이어서 외국인 손님과도 어려움없이 대화를나눈다.
그의 옆자리에서 한참을 웃은 승객이 덕담을 건네며 내릴땐 연락처와 개인 홈페이지 주소가 적힌 명함도 건네준다.
그의 택시를 탔던 한 여승객은 그의 홈페이지 방명록에 "언제 어디선가 꼭 다시만나길 바란다며 만나는 사람에게 웃음을 안겨주고 힘이 돼줘 고맙다"는 감사의 글을 남겼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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