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5.03.02 11:00 수정 : 2005.03.02 11:00

지난 2월 23일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가회동 집을 나서는 정태수씨(오른쪽). 정씨는 엘레베이터까지 설치된 고가의 이 집에 2년 계약으로 세들어 살고 있다.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고 정주영 회장의 가회동 집을 거처로 사용…국세청 고액 체납자 1위인 그가 호화로운 집에 사는 이유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운명하기 직전 살았던 서울시 종로구 가회동(177-1) 집이 전 한보그룹 회장 정태수(82)씨의 거처로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최근 확인됐다. 이 집은 정 명예회장이 지난 2000년 2월 청운동 집을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에게 물려준 뒤 구입한 것으로, 정 명예회장은 2001년 3월21일 타계하기 전까지 이곳에서 여생을 보냈다. 정태수씨는 현재 이 집에 2년 계약의 전월세로 세들어 살고 있다.

‘재물운’ 등 미신에 크게 의존


▲ (주)한보 사무실이 있는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 상가. 정태수씨는 지금도 이곳으로 출근하고 있다.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462평의 터에 연건평이 150평(실평수)에 이르는 2층 고급 양옥인 이 집은 시가 50억원이 넘고 전세금도 10억여원을 웃도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한보철강 부도에 따른 6조여원의 부채와 1500억여원의 세금 체납으로 채권단과 세무 당국의 감시를 받고 있는 정씨가 3남 보근씨와 함께 살던 구로동 집을 놔두고 이 집에 세들게 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세청과 채권단은 정씨가 채권 추심과 세금 추징을 피하기 위해 숨겨놓은 재산을 사용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실제로 정씨는 이 집으로 거처를 옮긴 뒤 검찰과 국세청의 ‘내사’를 받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국세청 관계자는 “정씨가 세금 추징을 피하기 위해 제3자 명의로 이 집을 구입했다는 소문이 돌아 사실 여부를 조사했지만 별다른 혐의를 발견하지는 못했다”며 “검찰에서도 재산 은닉 여부에 대해 상세히 조사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국세청은 지난해 정씨의 세금 체납을 조사하다가 정씨의 주소지가 가회동 집으로 돼 있는 것을 확인하고 조사에 나섰다.

정씨가 이런 의심을 무릅쓰고 이 집을 거처로 사용하고 있는 이유를 그의 독특한 성격에서 찾는 시각이 있다. 정씨는 사업상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풍수지리나 점 등 미신적 요소에 크게 의존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한보가 한창 잘나가던 때에도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 상가의 낡고 허름한 사무실을 고집했다. 이곳이 자신에게 재물운을 가져다 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정씨는 1978년 자신이 직접 지은 은마아파트가 강남 개발 붐에 편승해 대히트를 치면서 목돈을 손에 쥐게 돼 사업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정씨가 이 집으로 거처를 옮긴 것도 재물운을 중요하게 여기는 정씨의 이런 성격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가회동 집의 내력을 보면 이런 분석은 나름대로 근거가 있다. 이 집은 일제시대 최대 갑부였던 박흥식 화신백화점 사장이 살았던 곳이다. 박 사장은 당시 명당자리로 소문난 곳을 찾다가 이 집을 발견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 명예회장도 노환으로 현대아산병원과 청운동 집에 머무는 시간이 더 많았지만, 이 집에 애착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런 내력이 재기를 꿈꾸는 정씨에게 큰 매력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집주인은 그가 입주하는 지도 몰랐다”

▲ 정태수씨는 '한보 비자금' 사건으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으나 대장암 판정으로 2002년 특별사면을 받았다.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실제로 정씨는 이 집으로 거처를 옮긴 지 1년 만에 재기의 포부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정씨는 지난해 5월 한보철강 입찰을 앞두고 채권단에 입찰 자격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채권단은 부도에 책임이 있는 사업주의 입찰을 금지하는 파산법에 따라 그에게 입찰 자격을 주지 않았는데, 정씨는 “한보철강을 돌려주면 6조1천억원의 부채를 모두 갚고 당진제철소를 완공해 2007년에는 정상 가동하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하지만 채권단은 정씨의 요구에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정씨는 외국은행에서 돈을 빌리고 자신과 아들 명의로 된 땅과 종중 땅에 아파트를 지어 빚을 갚겠다고 제안했지만, 채권단은 이를 실현성이 없는 것으로 보고 아예 무시해버렸다. 채권단 관계자는 “정씨가 아파트를 짓겠다고 한 땅은 이미 가압류가 된 것이기 때문에 정씨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땅”이라며 “정씨가 재기를 선언한 그 무렵에 그는 거액의 세금을 체납하고 있었다”고 꼬집었다.

가회동 집은 정 명예회장 타계 뒤 미망인 변중석씨의 소유로 됐다가 두달 뒤인 2001년 9월 부동산업자인 정아무개(55)씨에게로 소유권이 넘어갔다. 집주인 정씨의 측근은 “집주인은 정 명예회장이나 정태수씨와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이라며 “정태수씨가 대리인을 내세워 전세 계약을 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그가 입주하는 줄 몰랐다”고 밝혔다. 그는 “정씨가 입주한 뒤 국세청 등으로부터 정씨와의 관계를 묻는 전화를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이웃 주민들은 정태수씨가 이 집에 살고 있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분위기다. 지난 2월23일 가회동 집 앞에서 만난 한 주민은 “왕회장이 사시던 집에 정태수씨가 살고 있는 게 꺼림칙하다”며 “정씨가 이 동네에 살고 있다는 것을 주민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정씨는 지난 1997년 ‘한보 비자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돼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았으나 2002년 대장암 판정으로 특별사면을 받았다. 정씨는 지난해 국세청이 발표한 상습 고액 체납자 명단에서 1507억원의 세금 체납으로 ‘당당히’ 1위를 차지하고, 보근씨와 4남 한근씨도 각각 641억9600만원과 291억6천만원으로 3, 5위를 차지해 ‘한보 3부자’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 정씨가 지난 2월23일 며느리 소유의 벤츠 승용차를 타고 집을 나서고 있다.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정주영 회장의 손길이 곳곳에 배어

집주인쪽은 애초 이 집을 허물고 고급 빌라를 지을 계획이었으나 정 명예회장의 손길이 뜻밖에 많이 남아 있어 재건축을 미뤘다고 밝혔다. 집주인 정씨는 “처음 이 집을 방문했을 때 왕회장께서 김정일 위원장과 함께 찍은 사진을 비롯해 여러 유품이 있었다”며 “정원에 큰 은행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왕회장께서 그 나무를 참 좋아하셨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현대쪽에서 이 집을 왜 매물로 내놨는지 모르겠다. 삼성 같으면 멋진 창업주 기념관으로 꾸몄을 것”이라며 “이 집을 정 명예회장 기념관으로 개조하면 훌륭한 역사교육의 장이 될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하지만 현대쪽 관계자는 “가회동 집은 정 명예회장과 큰 연고가 있는 집이 아니기 때문에 기념관 설치 계획은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허공으로 날아간 4조8천억

한보철강이 국민경제에 끼친 손실은 어느 정도일까?

한보철강 창업주로 부실 기업주라는 낙인을 받은 정태수 전 회장이 고 정주영 현대 회장의 서울 가회동 옛 자택에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은 한보철강 부실화에 따르는 국민경제의 부담을 반사적으로 떠올리게 한다. 조 단위의 공적자금 부담을 떠안긴 장본인이 호화로운 집에서 살고 있는 데서 빚어지는 정서적 거부담 때문일 것이다.

한보철강은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10월 INI스틸·현대하이스코에 팔렸다. 자산관리공사(캠코)를 비롯한 한보철강 채권단은 매각대금에서 1조1천억원을 분배받았다. 한보철강의 전체 채권 규모가 5조9천억원 수준이었음을 감안할 때 4조8천억원은 허공으로 날아간 셈이다. 한보철강 주거래은행이었던 제일은행 등에 천문학적인 공적자금이 투입됐다는 점을 감안할 때 공중에 뜬 4조8천억원은 고스란히 납세자(국민)들의 부담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채권단쪽은 나머지 채권의 회수를 포기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1조3천억원어치 채권 가운데 매각대금에서 1900억원을 배분받은 자산관리공사의 한 관계자는 “한보철강이란 법인체, 곧 돈 받을 데가 없어지지만 (나머지 채권을) ‘특수채권’으로 분류해놓고 있다”며 “이는 정태수 전 회장 등의 숨긴 재산이 드러나면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처”라고 말했다.

공적자금의 집행 통로이던 예금보험공사가 채권 금융기관에 대해 한보철강 채권의 회수를 독려하는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예보는 정 전 회장을 비롯해 한보철강의 전직 임직원 15명이 분식회계를 통해 사기 대출을 받았다는 혐의를 잡고 (주거래은행이었던) 제일은행에 대해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것을 지난해 4월 요청하고, 사기 대출의 근거 자료를 보냈다. 제일은행은 이에 따라 지난해 9월 정 전 회장 등에 대해 27억원의 손해를 배상하라는 소송을 제기해놓고 있다.

예보 관계자는 “한보철강 부실화로 피해를 입은 금융기관이 여러 곳이지만, 천문학적인 피해 규모에 견줘 현실적으로 가능한 배상액을 감안해 제일은행쪽에만 손해배상 소송을 내도록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채권단과 예보의 이런 회수 노력이 구체적인 성과로 이어질지는 물론 미지수다. 채무자인 한보철강의 당진 공장이 제3자로 넘어간 데 이어 (채무자인) ‘한보철강’이란 법인은 청산 절차를 밟고 있기 때문이다. 정 전 회장 등 전직 임직원들에 대한 책임 묻기도 수월하지 않아 보인다. 분식회계와 사기 대출의 관계를 밝혀내고, 전직 임직원들의 연루 사실을 명확히 입증하는 법적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난제를 무난히 거친 뒤에라도 또 하나의 결정적인 장애물에 부딪힐 공산이 크다. 손해를 배상할 재산이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드러날 수 있다. 이런 관측은 부실 기업주들이 재산을 교묘하게 빼돌리고 숨겨놓는 예가 숱하게 많았던 그동안의 경험에서 비롯된다. 부실에 상응하는 책임 물리기는 영영 기대할 수 없는 것일까.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한겨레21]바로가기

[표지이야기] 대한민국 초딩은 무엇으로 사는가 26

디지털 문화를 접하며 자란 초등학생들이 강력한 소비 계층으로 떠오르고 있다. 휴대전화, MP3, 게임 등 초등학생 대상 마케팅 산업이 번창하고 있다. 업체들이 따로 부모에게 접근할 방 법을 찾지 않아도 아이가 알아서 판촉에 나선다. 대한민국 초등학생들은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스스럼없이 연 애하며 질투와 배신도 일찍 알아버린 아이들. 21세기 ‘초딩’ 들의 풍경을 살펴본다.

[초점] 정태수, ‘ 왕회장’ 집에 세들다 12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운명하기 직전 살았던 서울시 종로구 가회동 집에 전 한보그룹 회장 정태수씨의 거처로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최근 확인됐다. 한보 사태로 국민의 돈 수조원 을 날린 정태수씨가 시가 50억원이 넘고 전세금도 10억원을 웃도는 호화저택에 사는 배경은 무엇일까

[라이프&트렌드] 이 편한 세상, 이빨 편한 세상! 40

암, 고혈압, 당뇨는 걱정하면서 왜 우리는 치아에 관 심을 기울이지 않을까. 당신이 방치한 ‘치아’가 당신에게 말을 건다. 치아에 관한 세밀한 정보에서 잘못 알고 있는 상식과 편견, 구강정책에 관한 역사까지 조곤조곤 설명해준다. 치아에 관해 제대로 알면 당신의 생활이 행 복해진다.

[문화] 터프가이의 눈물, 맘을 흔드네 44

강한 남자들이 몰려온다. 꽃미남을 누르고 떠오르는 이들은 근육질의 몸매에 과묵한 성격까지 두루 갖췄다. 드라마 <쾌걸 춘향>의 엄태웅, <해신>의 송일국 은 ‘악역’으로 인기 상승이다. 이에 뒤질세라 우리의 꽃미남 왕자님들마저 터프한 수염을 기르기 시작했다.

[정치] “목포를 얻으려면 호남을 얻는다” 64

‘호남 1번지’ 목포를 얻으려는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의 자존심 대결 현장을 갔다. 목포시장 전태홍씨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열리는 4월30일 보궐선거 바람이 벌써 뜨 겁다. 앞선 것으로 점쳐지는 민주당에선 ‘후보 경선 공정성 논란’이 한창이고, 열린우리당에선 물밑 기류가 일고 있다.

[한겨레21]바로가기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