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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치러진 제4회 자자학교 입학식의 모습. 이날 1학년 새내기 12명을 포함해 모두 22명의 어린이가 새로 자자학교 가족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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쳇바퀴 삶, 욕심을 버린 자리엔… 김문정(43)씨는 어린 얄개들과 하루하루 다투기 바쁜 대안학교 교사다. 파주 내포리 일대를 좀체 벗어나지도 못한다. ‘금단현상’이 있지 않을까. 몇 년 전만 해도 그는 1988년 호주로 이민을 간 뒤 영주권까지 얻었던, 그야말로 고액 연봉의 정보기술(IT) 관련 국제 컨설턴트였다. 호주 영주권·12년 생활접고
IT기업 잘나가던 컨설턴트 고액연봉에도 한켠 허탈감
귀농하는 길목에
아이들이 있었고
나를 ‘노을’ 이라 부러줬다
“나는 너희와 같이 커간다” 사연을 들으러 간 25일. 동장군은 수은주를 영하 10도로 내려보냈고, 바람은 휑한 파주 평원을 거침없이 내쳤다. 하지만 학교에서 마주친, 앞마당을 뛰놀며 볼이 발갛게 익은 아이들은 이미 봄을 닮아 있었다. 그 아이들이 김씨를 ‘노을’이라 불렀다. 불혹을 넘어선 노을은 뜬금없이 아이들에게 “너희들과 같이 커가고 있어”라고 되뇌곤 했다. 돈, 욕심, 잡념 따위를 버리면서 텅빈 자신을 진짜 행복으로 다시 채우는 일만 남은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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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벌고 쓰고, 다시 일하는 쳇바퀴 삶이었죠. 제가 지나간 자리에는 쓰레기밖에 남지 않았어요. 끌려 다니며 마신 술이 외려 허탈감만 키웠습니다.” 2002년 끝자락, 결국 회사를 버렸다. 아내의 반대를 무릅쓰고 ‘귀농’에 눈을 돌려봤다. 도시 생활을 잘 견디지 못하는 체질이라 본능적으로 찾은 대안이었다. “대학 때도 틈만 나면 친한 친구와 산으로 숨어 들어갔거든요. 호주도 그 친구가 가자고 해서 갔던 겁니다. 하지만 도시 삶을 그저 피하기 위한 거라면 농촌 생활도 마찬가지로 집착이고 고통일 거라 생각했어요.” 그의 발길은 어느새 생태 강연장으로 돌려졌고, 그곳에서 자자학교 사람들을 만났다. 오는 4월이면 학교에 몸담은 지 어느새 1년이다. 애초 그는 아이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교육과도 거리가 멀었다. 그래도 온 건 생태적 삶이 가능할 거란 ‘얄궂은 계산’ 때문이었다. “아이들은 징징대고, 학교가 파주 헤이리에 있을 땐 집까지 황량한 벌판을 30~40분씩 걸어야 했는데…내가 지금 뭐 하는 건가” 하며 여러 날 끙끙댈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수업방식을 저학년은 어려워하고 고학년은 지루해했다. 장애·비장애인이 섞여 있는 교실에서 수업은 툭하면 끊겼고, 아이들은 때로 주먹다짐까지 하며 초짜 교사를 경계했다. ‘노을’에게 아이들이 비로소 마음을 연 게 지난해 여름 여행 때. 수업만 끝나면 연구를 이유삼아 교실을 떠났던 그가 처음으로 오랜 시간 이들과 살을 맞대자 지난 고빗사위들이 겸연쩍을 만큼 아이들은 쉽게 다가와줬다. “이름을 부르면 굉장히 깊게 눈빛을 맞춰 줍니다. 뭔가 끼어 있는 듯 한 일반 사람들끼리의 응시와는 달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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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웃고, 마음 가는대로 노는 아이들과 주변의 선생님들. 잡념, 욕심 따위로 가득한 자신을 비우자는 오랜 목표가 이들에겐 일상이었다. 결국 지난해 2학기 아들 민규(9)도 이곳으로 전학시켰다. 월급봉투도 비운 듯 얇아졌지만 먹고 살만하다. 쓸 일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가 그렇다는 거죠. 아이 장래를 위해서 이젠 저축도 시작해야 해요.” 우리 사는 양식에서 그는 너무 가까이, 그렇다고 너무 멀리 있지도 않다. 이제 겨우 버려가기 시작했을 뿐이다. 버리고 빈 자리엔 비로소 웃음이 자리한다. 해 저문 곳 가득한 노을처럼 그가 웃는다. 파주/글·사진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자연을 닮은 아이들의 자유학교’
관청 간섭싫어 인가제안도 거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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