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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양수철 전 민족문제연구소 충남지부장이 충의사 현판을 떼어내고 있다. 오마이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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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전문가들이 보는 ‘현판철거’의 사회학…‘그는 탈레반인가’
2001년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정권은 바미안 석불이 우상숭배를 금지하는 이슬람 가르침에 어긋난다며 석불을 향해 로켓포를 쏘았다. 2세기에 제작된 55m 높이의 세계문화유산은 산산조각이 났다. 거슬러 올라가선 성서의 가르침에 어긋난다며 교회의 성상(聖像)들을 파괴한 7~8세기 동로마제국 당시의 성상파괴 운동이 있다. 이들에게는 종교적 근본주의에 입각한 ‘우상 파괴’였지만, 보다 많은 사람들은 ‘문명 파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꼭 모든 파괴가 ‘반달리즘’이라며 ‘문명인’들의 돌을 맞은 것은 아니었다. 동아시아 최고의 로마네스크양식 건축물이라며 경복궁을 압도하던 조선총독부 건물은 대대적 기념식 속에서 폭파해체되었다. 경찰청을 비롯해 대표적 국가 기관 곳곳에 남아 있던 전두환씨의 글씨는, 건물주가 부끄러워 슬그머니 감추거나 지웠다.
3.1절에 충남 예산 충의사에서는 “윤봉길 의사를 모신 곳에 친일파 만주군 장교의 현판을 방치하는 것은 민족의 수치”라며 무단으로 현판이 철거돼 파괴되는 일이 일어났다. 이를 두고 ‘역사파괴를 일삼는 반문명적 야만’이라는 시각과 ‘민족정기의 회복에 나선 시민의 용기’로 보는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윤봉길 사당의 박정희 현판을 철거훼손한 양수철씨는 탈레반인가, 민족주의자인가. 네티즌들의 의견 분포와 함께 전문가들의 해석을 구했다. [편집자]
1. ‘잘한 행동이다’ 2136명 (54.5%)
2. ‘잘못된 행동이다’ 1727명 (44.1%)
3.1절, 윤봉길 의사의 영정을 모신 충청남도 예산 충의사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현판을 양수철(전 민족문제연구소 충남지부장)씨가 무단으로 뜯어낸 것에 대해 <인터넷한겨레> 누리꾼의 의견은 3일 오전 9시 현재 이렇게 나타났다. 양씨의 행동을 어떻게 볼 것인가? 언론의 비판은 거세다.
조선일보 사설 “누가 역사를 마음대로 파손할 권한을 주었는가”
<조선일보>는 2일치 사설에서 “누가 역사를 제 마음대로 떼어내고 파손할 권한을 주었는가”라고 개탄했다.
“…윤 의사 사당에 박 전 대통령의 친필 현판이 적절하냐에 대해선 사람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다. …그것이 잘못된 역사인지, 그래서 떼어내야 하는지에 대한 최종 결정은 국민적 토론과정을 거쳐 내려져야 한다. 사적에 무단 침입해서 몰래 역사를 떼어내고 더구나 돌이킬 수 없게 파손까지 한 것은 용납될 수 없는 범법 행위다. …‘우리만이 역사를 평가할 수 있다’는 독선과 오만을 읽게 된다. …누가 그들에게 역사를 제 마음대로 떼어내고 파손할 권한을 주었는가.”
문화일보, 서울신문 사설 “문화혁명과 뭐가 다른가…문화테러다”
<문화일보>와 <서울신문>은 각 2·3일자 사설에서 양씨의 행위를 “문화테러”라고 비판했다.
“…자신들과 코드가 안맞다고 불법행위도 불사하는 건 독선이자 정치폭력이다. 사회적 합의를 거치지도 않은 채 기존 권위를 마음대로 때려 부순다면 중국 문화혁명과 다를 바가 뭐 있겠는가. …분명한 것은 이번 사건이 법과 상식을 벗어난 문화테러라는 점이다.”(문화일보 2일치 사설)
“…그 평가에 대해서는 개인이나 정권, 시대변화에 따라 얼마든지 다를 수 있고, 법과 민주적 절차에 따라 주장하는 바를 요구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개인이나 특정세력이 자신들의 생각과 다르다고 멋대로 부수고 쪼갠다면 그것은 문화테러나 파괴행위일 뿐이다.”(서울신문 3일치 사설)
<한국일보>도 양씨의 ‘독선’을 지적하며, 호되게 비난했다.
“…문제라면 사회적 논의 결과에 따라 공식적으로 조치해야 한다. 이미 문화재의 일부인 사당 현판을 훼손한 후 ‘역사적’ 정당성을 운위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어떤 경우든 독선은 안 된다. 독선적 사고는 누구나 가질 수 있지만 행동은 사회적 책임과 함께해야 한다.”
청와대 “문제있더라도 민주적 절차 따라야”
비판의 근거는 조금씩 다르지만, 핵심은 “법과 질서”, “사회적 합의”다.
2일 청와대도 일일현안점검회에서 “설령 뜻이 옳다 해도 물리력을 행사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지금은 혁명의 시기가 아니다. 따라서 마음에 들지 않는 문제가 있더라도 법적, 민주적 절차에 따라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전문가들의 의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서울대 사회학과 송호근 교수도 “법 질서”를 강조했다.
송호근 교수 “박정희 흔적을 없앤다면, 국민 공감대 얻어야”
“아무리 민주화시대라고 해도 개인적 감정에 따라 행동한다면 사회질서는 어떻게 되겠나? 이런 행위가 가져올 사회적 파장은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흔적을 없앤다면, 국민적 공감대를 얻어야 한다. 혁명은 법 밖에서 일어나지만, 국민이 분노나 불만이 뒷받침된다.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나뉘는 상황에서, 민주사회에서 정당한 행동인지 논의해봐야 한다. 국민여론의 향배를 봐야하고, 절차를 밟아 법을 바꿔 해나가야 한다. 역사발전의 방향이란 게 허용되는 한계가 있고, 그 한계를 규정하는 게 법질서다. 개인적인 판단보다는 사회적 공론이 우선이다.”
김두식교수 “지루하더라도 토론통해 지지 얻어나가야”
한동대 법학과 김두식 교수도 “지루하더라도 토론을 통해 지지를 얻어나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충의사의 현판을 떼어낼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해 다수를 설득해나가는 과정이 의미가 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설득하고 지지를 얻어야 한다. 군사독재 정권 때도 아닌데, ‘지루하다’고 바로 행동으로 나서면 곤란하다. ‘얘기를 못 알아듣는다’고 너무 빨리 나서면 사회가 나눠진다. 어려워도 말로 풀어나가야 한다. 광화문 현판 논쟁처럼 논쟁의 수준이 낮다고만 할 게 아니라, 토론 수준을 끌어올려야 한다.”
<조선일보> 등의 사설이나 위 전문가들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누리꾼도 많다.
“너무 심한 일을 했군요. 내가 정의롭다고 생각한 것이 정말 진실일까요”(한토마 망부석)
“발차기로 과거청산을 하겠다고? …때가 되면, 적법절차에 따라 처리하면 될 일을 자신이 무슨 역사의 잣대인 양 현판을 박살내놓고는 하는 소리란…. …이런 부류의 소아적영웅주의에 물든 자들로 인해 진정한 의미의 과거청산이 더더욱 멀어지고 결국은 국민의 분열만 초래할 뿐이다.”(한토마 타클라마칸)
양수철씨 “수차례 철거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직접 철거”
하지만, 담장을 넘어 들어가 현판을 뜯어낸 양수철씨의 생각은 물론 전혀 다르다. 그는 ‘불가피성’을 토로한다.
양씨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친 윤봉길 의사의 사당에 친일파 박정희의 현판은 어울리지 않는다. 여러번 친일파 박정희의 현판 철거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직접 철거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논리는 과거에도 비슷했다. 지난 2001년 11월 곽태영 박정희기념관건립반대국민연대 상임공동대표 등이 서울 종로 탑골공원 정문인 ‘삼일문’ 현판을 떼어냈을 때도 그랬다. 그들은 “민족정기가 서린 탑골공원에 일제시대 장교 출신인 박정희의 글이 올라 있는 것을 묵과할 수 없었다. 그동안 삼일문 현판을 교체해 달라고 서울시와 관계당국에 수차례 건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직접 나섰다”고 밝혔다.
“사회의 법과 질서와 담론이 뒤처져 있으니, 내가 앞장섰다”는 설명인 셈이다.
양씨가 살짝 ‘오버’했지만 이해해야한다는 의견도 만만찮다.
참여연대 손혁재 운영위원장이 그렇다.
손혁재 위원장 “너무한 것은 양씨가 아니라 현판을 놔둔 우리 사회”
“그 시민의 행동이 너무한 게 아니라, 지금까지 그렇게 현판을 놔둔 우리 사회가 너무하다. 문제제기를 해도 되지 않으니까 이렇게 된 것이다. ‘오죽하면 그랬겠느냐’는 정상참작을 해야한다. 유씨의 행위가 바람직하지 않고, 현행법에 의해 처벌을 면제받을 수도 않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면 인정을 해줘야 한다.”
가톨릭대 국사학과 안병욱 교수도 양씨의 행동을 이해해야 한다는 쪽이다. 물론, “잘했다고 하기도, 잘못했다고 하기도 애매모호하다. 법률적 책임은 면하기 어렵다”고 전제한 뒤다.
“사회가 시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때 기존제도를 일탈하는 행위가 벌어지기도 한다. 현판철거 행위를 미화할 수는 없지만, 사회가 미처 가치판단 기준을 정립하지 못한 상태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여론을 환기시기는 의미는 있다.”
양씨를 지지하는 누리꾼들의 생각도 비슷하다.
“양씨의 행위는 약간의 무리는 있었을지 모르지만 상식이 있는 사회라면 그 무리쯤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박정희 휘호를 무단으로 떼어낸 무리수를 감안하더라도 박수를 치는 이유는 바로 그의 행위가 양심에 기인한 사회정의를 실현하려는 의지 때문이다”(한토마 비앤비)
그렇다면, ‘이해’의 차원을 넘어 문제는 다시 “토론과 설득을 통한 사회적 합의”다.
이에 대해, 손혁재 운영위원장은 이렇게 반박한다.
“토론 필요하다지만 과거사청산 논의하자면 “누굴 죽이려는 거냐”
“토론과 합의를 해야한다고 하지만, 우리사회는 그런 게 없다. 과거사를 청산하자고 하면, “누구를 죽이려는 것 아니냐”는 수준으로 맞선다. 지금 토론과 설득으로 문제를 해결해야한다는 쪽이 이성적 설득과 토론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광화문 현판교체도 이미 오래 전부터 제기됐고, 회의를 거쳐 바꾸기로 한 것인데도 이상하게 몰아가지 않았나. 이번 경우도 친일청산 등에 대해 우리 사회가 얼마나 의사소통 구조가 무시되었기에, 유씨가 개인적으로 그런 방식을 선택까지 하게됐는지 되새겨봐야 한다. 문제를 푸는 방식은 토론이나 담론형성이지만, 지금 우리는 그것이 되지 않는다.”
안병욱 교수 “토론 통한 사회적 합의를 메이저 언론이 용인하지 않아”
안 교수도 대화와 설득으로 문제를 풀 수 없는 현실을 지적한다.
“<조선일보> 등이 빠져나가는 괴변적인 논리인데, 토론을 거쳐 사회적 합의를 정상적으로 할 수 있도록 메이저 언론이 용인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주장이 올바른 방향으로 수렴되도록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매도함으로써, 일탈적인 행동을 폭발시킨 측면이 있다. 광화문 현판 논란에서 볼 수 있듯, 정부 기관이 합리적 절차를 밟는데도 엉뚱한 논리로 올바른 논의를 방해하거나 매도한다. 사회적 논의가 합리적일 때 대화와 타협을 통한 문제해결은 가능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대화와 타협은 어렵다. 삼일문 철거 때도 사회적 공론화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일이 벌어졌다. 박정희 정권이 무엇을 잘못했나를 파악하고 제대로 논의하도록 막는 게 가장 큰 문제다.”
황평우 소장 “아픈 상처도 역사적·문화적 합의하에 정돈돼야”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차원에서 문제를 제기한다.
“난감하다. 방법이 과격하기는 하지만 ‘오죽하면 뜯어냈겠나’하는 이해도 된다. 그러나, 박정희 전 대통령도 기념의 대상은 아니지만, 기록의 대상이다. 아픈 상처도 역사적·문화적 합의하에 정돈돼야 한다. 다만, 박정희 대통령의 현판을 훼손하면 안된다고 하지만, 아픈 역사도 역사적 문화니까 보존해야한다고 합의된 적도 역시 없다. 올바른 토론과 담론을 꺼내기 힘들기 때문이다.”
우리사회가 지금 “사회적 합의”가 가능하냐에 대해 엇갈리는 만큼, 양씨 행위에 대한 평가도 다르다.
양씨를 비판하는 쪽은 “문화테러”라고 규정한다.
하지만, 안병욱 교수는 이런 ‘일탈행위’도 사회적 변화를 끌어낸다고 지적한다.
“왜 혁명이 일어나는가? 사회적 모순에 대해 기존 사회나 기득권이 수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회변화가 모두 절차에 따라 움직이지는 않는 게 역사다. 일탈적 행위가 문제를 제기하고, 이것이 제도화되면 사회변화를 이끌어낸다. 호주제 폐지에서도 알 수 있다. 10년 전에는 말도 꺼낼 수 없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성을 같이 쓰는 과정을 거쳐 호주제 폐지로 이어졌다. 당장에는 돌출적인 행동일 수 있지만, 사회변화의 동력으로 역사에서 충분히 평가할 수 있다. 이번 현판 철거도 사회적 공론화로 이어질 수 있다. 현판은 박정희 정권의 잘못된 역사의 상징물이며, 대중은 그 상징물을 향해서 역사를 고발하는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안 교수는 이렇게 강조했다.
“‘잘못된 역사도 역사가 아니냐’고 하지만, 잘못된 역사가 현재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미래의 발목을 잡는다면 부정적 영향을 제거하는 것이 현재의 역사다. 잘못된 역사에 수긍만 한다면 역사의 발전은 없다. 노예제는 노예제로, 봉건제는 봉건제로 남아야 한다.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 것은 현재의 역사 창조다.”
박 전 대통령의 현판이 걸려 있다 제거된 곳은 1932년 중국 훙커우공원 의거를 한 윤봉길 의사를 모신 사당이다. 양씨와 양씨의 행위가 ‘의사’와 ‘의거’로 평가받을지는 훗날 역사의 몫이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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