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세·의보 등 분야별 번호 달리할수도
‘군인은 죽어서 군번을 남기고, 대한민국 국민은 죽어서 주민등록번호를 남긴다.’ 5천만 국민의 평생을 옥죄는 주민등록번호를 개선하거나 아예 폐지하자는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가장 유력한 대안은 나이, 성별, 출신지역 등 개인정보가 고스란히 노출되는 현행 번호체계를 최소한 미국의 사회보장번호처럼 무의미한 번호의 조합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박원석 참여연대 사회인권국장은 “과도기적으로 개인의 요구에 따라 새로운 번호를 발급하고, 기존 번호 체계와 병행해 사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준우 함께하는시민행동 정책팀장은 “전세계 최고 수준인 정보통신 기술을 이용해, 전산 시스템을 약간만 수정해 주소나 전화번호 등을 검색 인자로 지정하면, 주민등록번호 없이도 개인인증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우리는 주민등록번호를 너무 믿은 나머지 다양한 개인 인증 제도 개발을 소홀히 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진보네트워크센터는 납세자번호, 의료보험증번호 등 각각의 목적에 맞는 번호를 따로 사용하고, 민간 분야에서는 주민등록번호를 수집해 사용하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단체 활동가 지음씨는 “공공, 민간 가릴 것 없이 모든 데이터베이스에 주민등록번호가 쓰이는 현실이 가장 큰 문제”라며 “주민등록번호 같은 체계가 있는 국가라고 해도 이를 사용할 수 있는 국가 기관이나 법적 영역을 분명히 규정해 제한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민등록번호의 발급 주체를 중앙정부에서 지방자치단체로 이관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윤현식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원은 “주민등록 관련 업무를 중앙정부가 관리하다 보니 지방정부는 책임성이 떨어지고, 중앙정부는 행정 효율을 위해 더 많은 정보를 요구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며 “주민행정 사무 전체를 자치단체가 전담하는 관련 법안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도 주민등록번호 관련 논의가 탄력을 받고 있다. 열린우리당 유인태 의원실 유정곤 보좌관은 “주민등록번호의 오남용을 방지하고, 재발급을 손쉽게 한 개선안과 폐기 가능성 등을 다 열어놓고 대안을 모색중”이라고 밝혔다.
민주노동당도 주민등록증 강제발급 등 인권침해 요소를 제거하고, 관련 업무를 중앙정부에서 지방자치단체로 이관하는 내용 등을 뼈대로 하는 법안을 모색하고 있다. 서수민 기자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