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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3.16 18:49 수정 : 2005.03.16 18:49

(왼쪽부터) 정세영/서울 전농중학교 교사, 곽금주/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신순갑/청소년폭력예방재단 정책위원장



“학교-지역사회, 일진 아이들 ‘인격’ 일깨워 ‘폭력’ 그치게”

지난주 현직 교사가 초중고교 내 ‘일진회’ 조직의 충격적 실태를 폭로한 이후 학교폭력의 심각성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뒤늦게 교육인적자원부는 예방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하고, 경찰도 일진회 해체작업에 착수하겠다며 수사에 들어갔다. 학교 안에 퇴직 경찰이 상주하는 ‘학교경찰제’도 관심을 끌고 있다. 그러나 자녀를 학교에 보내는 부모들의 걱정은 수그러들지 않는 것 같다. 일진회 실태를 고발한 정세영(51·서울 전농중) 교사와 청소년 심리를 연구해 온 곽금주(45·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신순갑(41) 청소년폭력예방재단 정책위원장이 15일 저녁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나 대안을 찾아봤다.

정세영/ “교사의 폭력신고제 현실성 없어
학교는 일진 아이들 이미 파악
또래집단 깨지말고 잘못 인정케”

곽금주/ “왕따행태 비디오 찍어 보여주니
재밌어 하던 가해 아이들 눈물
정부 의지에 시민사회 힙합쳐야

신순갑/ “OECD 국가들 인권교육 의무화
교내경찰은 ‘학교폭력’ 이해 필요
70년대식 권위주의 청산도 시급”

정세영 교사=청소년 폭력 문제는 더 방치하면 통제가 불가능해진다. 또 이를 모른 체 넘어가는 것은 교사로서 부도덕하고 무책임하다는 생각에 이번에 일진회 일탈행위를 폭로했다. 내가 1999년에 맡았던 중학교 1학년 학급은 5명이나 초등학교 때부터 일진회 활동을 했다. 보통 1개 반에 1명, 남녀 합반일 경우는 2명이 이른바 ‘일진’이다. 어느 학교든 비슷한데, 전국적으로 40만명이 일진회 회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신순갑 위원장=사람들은 보통 ‘일진회’라고 하면, 이런 이름을 가진 폭력조직이 뚜렷이 존재하고 그 하부에 성인 폭력조직처럼 계보를 줄줄이 갖추고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학교 안에 폭력조직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일진회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곽금주 교수=교육부가 벌인 실태조사를 보면 학교 내 폭력조직의 수를 애써 축소하려는 방향에 맞춰져 있는 것 같다. 단체나 기관마다 조사 결과도 달라 정확한 규모나 실태 파악도 안 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일진회원이 몇명인가가 아니라, 그 안에서 괴로워하는 아이들이 아주 많고, 가해 학생은 학교 안에서 폭력을 배운다는 사실이다. 학교가 폭력을 학습하는 곳이어서는 안 된다.

=예전 일진회와 지금 일진회는 다르다. 지금은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많이 가입해 있다. 이것은 우선, 2000년 정부가 추진한 교육정보화 사업과 관련이 있다. 그때 전후로 일진회원 수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학교 안에 인터넷이 깔리자 이를 통해 자기들끼리 정보 교환하는 게 늘었다. 그러니까 어른들을 속이기도 쉬워졌고, 오프라인에서 굳이 만나지 않아도 조직원들을 만날 수 있게 됐다. 그 다음은 선행학습이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학원에서 다 배우고 오기 때문에 학교에 오면 놀고 싶어진다. 노는 게 바로 일진회 활동하는 것이다.

=교육부에서 학교 내 폭력을 자진 신고하면 교사에게 인센티브를 주겠다고 발표했는데, 교사로서 어떻게 보나?

=아마 아무도 신고 안 할 것이다. 처벌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일진회를 가장 잘 아는 생활지도 교사는 대개 교장의 심복이나 다름없는데 이걸 어떻게 신고하겠나? 인센티브 받으려다 학교에서 손가락질이나 받고 매장당한다. 평교사들도 자기 학생이 처벌받을 텐데 신고하겠나? 경찰의 일벌백계 방침은 아이들한테는 안 통한다. 애들은 굉장히 나약하다. 집단적으로 움직이니까 범죄까지 저지르는 것이다. 집단 안에서는 자기가 정말 잘못한 것인지도 잘 모른다. ‘남들 다 하는데 내가 좀 잘못하는 게 어때 …’ 이런 식이다. 국회의원들 수십억원씩 착복하고, 어떤 선생님이 학부모에게 돈 받아먹고, 부모가 교사에게 돈 준 어떤 친구는 잘못했는데도 용서받더라 … 이런 얘기가 인터넷으로 금세 아이들에게 퍼진다. ‘잘못해도 꼭 벌받을 필요 없다, 거짓말해서 빠져나가면 그만’이라는 것을 어른들한테서 배우고 있다.

=청소년들이 집단으로 모이면 그 안에 규범이 생긴다. 어른들 말보다 자기 또래집단의 규범은, 그것이 잘못된 것일지라도, 쫓아가는 경향이 강해진다. 여러 명이 모여서 나쁜 짓을 해도 책임이 분산된다. 나한테만 처벌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 극단적인 행동을 저지르면서도 죄의식은 별로 느끼지 못한다.

=일진회는 성인 문화를 그대로 본뜨고 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우리 사회의 지도자층을 따라한다. 여기에 대중매체와 일본 문화의 영향이 더해졌다. 일진회란 이름이 처음 나온 일본 만화를 보면 지금 우리 아이들이 하는 행동과 아주 똑같다. 그동안 조폭을 우상시하는 영화·드라마도 책임이 있다.

=집단화하는 것은 요즘 아이들이 아주 나약해져 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약할수록 뭉친다. 또 예전에는 낙오자들이 주로 가해자 집단에 속했지만 지금은 ‘있는 집’ 아이들, 공부 잘하는 아이들까지 가세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친구를 때리고 괴롭히는 것을 단순히 재미있어한다. 그건 ‘놀이’다. 아이들 사이에는 ‘강간놀이’‘조폭놀이’라는 것도 있다. 일진회에 가입한 아이들은 나쁜 애들이라고만 하면 해결책을 찾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의외로 해결책은 아주 가까이 있고 생각보다 쉽다.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지면 된다. 교사가 시작하면 된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대우받으며 놀고 싶은데 교사가 학교에서 아이들을 무시하는 것이다. 인격적인 대우를 하면서 나쁜 짓 하는 것을 정확히 꼬집으면 된다. 친구 돈 뺏고 때리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하면 꼼짝 못한다.

집단뒤 숨어 죄의식 희석…인터넷 타고 활개
외국선 30년 전부터 ‘학교폭력’ 체계적 고민
예방교육 채비하되 당장의 피해학생 구해야



=우르르 폭력조직에 몰려갔다가 다시 쉽게 돌아올 수도 있다. 청소년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아이들의 왕따 행태를 조사하려고 여섯달 동안 교실에 비디오카메라를 설치한 적이 있었는데, 촬영된 내용을 나중에 아이들에게 보여주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비디오를 보던 아이들이 처음에는 재미있어하다가 나중에는 점점 숙연해지더니 남자 아이들이 눈물을 흘리더라. 자기가 친구를 저렇게 괴롭혔다는 것을 거꾸로 보여주니까 자기 잘못을 알게 된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교사가 가장 중요하다. 자꾸 감추려고 하지 말고 교사들이 문제를 인식하고 고민하면 학교 폭력은 줄어들게 되어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이 다 의무적으로 학교에서 인권교육을 시키도록 되어 있는데 우리나라는 그런 교육이 없다. 친구들과 학교에서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을 깨닫도록 가르쳐야 한다.

=외국에서는 이미 30년 전부터 학교폭력 문제로 고민해 왔다. 대부분 전국 규모의 실태조사를 정확히 하고 난 뒤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거쳐 예방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냈다. 우리도 우리 실정에 맞는 학교폭력 예방 프로그램을 만들어 이를 교과과정에 넣어야 한다. 어릴 때부터 이 교육을 시켜야 충동적인 청소년 시기에 폭력을 줄일 수 있다.

=예방교육은 장기 대책이다. 발등의 불부터 꺼야 하지 않겠나? 지금 이 순간 상처입고 멍드는 아이들을 구해야 한다. 일진회가 전부 나쁜 아이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해결이 안 된다. 학교에서는 일진회 아이들을 다 파악하고 있다. 이걸 감추고 덮으려 하지 말고 다 드러내야 한다. 우선 일진회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이 일진이라는 걸 밝히게 하고 자기 잘못을 인정하면 무조건 용서해 줘야 한다. 뭉쳐 있는 아이들을 깨려고만 하면 더 반발한다. 또래집단은 그대로 두고 폭력성을 지우는 쪽으로 스스로 바뀌도록 계도해야 한다.

=학교폭력 문제를 ‘교육적으로 해결하자’고 하는 데에 오해가 있다. ‘교육적 해결’이 학교와 학부모, 학교와 관련된 사람만 나서서 해결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학교가 문을 열어야 한다. 지역 법률가, 상담가들을 학교로 끌어들이고 지역사회와 통합적 공동네트워크를 만들어 접근해야 한다. 스쿨폴리스제(학교경찰 제도)에 반대하는 것만이 교육적 방법은 아니다. 하지만 이 제도는 신중히 시작해야 한다. 일본의 경우 비슷한 제도(스쿨서포터 제도)가 있는데, 퇴직 경찰이 학교의 특징, 학생들의 심리구조, 폭력 구조 등에 대해 엄청난 교육을 받고 지역사회와 학교의 동의를 받은 뒤에 들어간다. 경찰청·교육청의 합의 하에 무조건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퇴임 경찰이 학교에 들어가는 것은, 학교가 문을 연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무작정 들어가면 오히려 학교 내 폭력이 더 은폐되고 조직이 더 강화되는 등 음성적으로 변질될 우려가 크다.

=교사들조차 학교폭력의 실상이 어떤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교육부 차원에서 상담교사·책임교사에게 철저한 교육을 시킬 필요가 있다. 그런데 실제로는 교육부도 학교폭력에 관심이 없다. 역대 교육부 장관들은 하나같이 학교폭력 근절을 약속했지만 다 흐지부지됐다. 아예 예산도 없다. 어떤 광역 지자체는 학교폭력 예방에 쓰는 예산이 일년에 고작 400만원이다. 한심하다.

=어릴 때부터 예방교육을 하고, 당장은 가해 청소년들이 자신의 폭력적인 행동을 자각하게 하고 실태를 알리는 작업이 필요하다. 또 학교 안에 가해·피해집단의 아이들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 우선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보여야 한다. 여기에 교사·교육 전문가·시민단체 등이 힘을 합쳐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시작해야 한다.

=학교폭력 문제가 더이상 이벤트식이나 선정적으로 부각돼서는 곤란한다. 70년대식 권위주의적 학교문화가 개방적·평화적 문화로 바뀌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점점 조정과 합의를 이끌어내는 구조로 바뀌는 것에 발맞춰 학생들의 자치활동을 활성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정리 김성재 기자 seong68@hani.co.kr

사진 황석주 기자 stonepo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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