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씨나 진중권씨가 놓친 대목은 농경사회 전통을 이어받은 한국인만이 범주화에 능한 것이 아니라 산업사회를 거쳐 개인화된 미국인들도 범주화에 능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정상인과 비정상인의 이분법적인 대립을 놓고 범죄를 저지르기 쉬운 집단으로 정신장애인을 옭아매는 편리한 범주화이다. 만약 어떤 잔인하고 끔직한 사건이 벌어졌다면 뉴스나 지식인들은 그 사람의 병력이나 정신감정에 의존한다. 특히 지식인들은 정신병에 대한 은유와 직유를 즐겨 쓰고 있는데 이는 정신병에 대한 올바른 지식 없이 함부로 남용되고 있다. 진중권씨 또한 한국인이 외국인에게는 가해자가 되고 미국인에게는 피해자가 되는 논리적 일관성이 없다는 이유로 ‘정신분열’과 같다고 말했는데 정신분열증은 논리적 일관성이 없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언론이나 지식인들이 정신장애에 대한 진정한 이해와 관심 없이 무분별하게 비논리적이고 비상식적인 것 모두를 비정상인들의 몫으로 돌리고, 이렇게 이해가 불가능하고 일관성 없는 행동은 소위 ‘또라이, 미친 놈’들 밖에 할 사람들이 없다고 공격한다. 뉴스에 조승희씨 사건이나 지난 대구지하철 방화사건 같은 것이 정신장애인의 소행으로 보도될 때마다 나와 같은 정신 장애인 당사자들은 억울함과 위축감을 느낀다. 비장애인들은 평소에 정신장애인에 대한 이해나 관심 없이 정신장애인들을 배척하고 소외시키고 있다. 그런데 커다란 사건만 나기만 하면 마치 다 알고 있었다는 듯이 정신장애인의 폭력성을 확대 해석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정신장애인들은 ‘정상이며 동시에 비정상이다’ 여기서 정상임이라 함은 정신장애인들도 다른 비장애인들과 같은 의사소통 능력과 노동 능력 그리고 사랑과 같은 감정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비정상이라고 하는 것은 정신장애인들이 증상이 있을 때 갖는 음성증상과 양성증상을 가리킨다. 분명히 해둘 것은 음성증상(말 수가 적어지고 행동이 둔해지는 것)은 정신장애인 당사자에게는 많은 고통이 되지만 사회적 폭력성을 두고 얘기할 때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양성증상(환청이나 망상)같은 것은 정신과 치료와 약물 그리고 지역 사회의 정신 보건 센타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정신장애에 대한 별다른 지식 없이 편견으로 가득 찬 언론과 지식인들의 발언들은 다른 정신장애인들을 폭력성 있는 위험한 인물로 낙인찍고 있다. 정신장애인들의 피해망상 중에 남들이 자기를 욕하는 것처럼 환청이 들리고 남들이 자신을 해치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있다. 정신과에서는 만약 당신이 정상인이라면 아무도 당신을 욕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근거 없는 피해망상을 두고 정신과적인 증상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만약 당신이 비정상인이 되면 당신의 피해망상은 사실로 된다는 것이다. 이제는 정신장애인들의 피해망상은 비장애인들의 무언의 욕설과 폄하 속에 사실로 확인된다. 이제 정신장애인들은 총기도 난사할 수 있고 자기 부모를 죽일 수도 있기에 환청과 망상으로 들리는 주변의 욕이 비장애인들의 비난과 배타주의로 바뀌어 정신장애인들을 사회적으로 불온한 세력으로 몰아세운다. 이는 나치즘 당시의 유태인이나 집시, 조선시대의 남사당패를 대하는 듯한 파시즘과 비슷하다. 우리 안의 파시즘은 민족주의나 국가주의에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정상과 비정상의 이분법 구도에서 모든 잘못과 원죄를 비정상인들에게 지우는 태도에서 발견할 수 있다. 정신장애인의 피해망상이 현실화되는 것은 이러한 배타적이고 전체주의적인 다수의 소수에 대한 편견과 무언의 폭력에서 시작한다. 아마도 조승희씨 사건을 계기로 정신과나 보건센타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늘어나리라고 본다. 그리고 대학 내에서도 정신 상담을 활성화 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기존의 시스템에 정부 예산이 늘어난다고 할지라도 정신장애인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전환과 복지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이 또한 공염불이다. 누가 잠재적 범죄자의 누명을 쓰고 커밍아웃하고 정신과 치료를 받겠는가? 문제는 돈이 아니라 정신장애인과 비장애인과의 대화이다. 우리는 얼마나 서로 대화를 할 수 있는 이벤트를 가졌는가? 우리 안의 파시즘을 되돌아 볼 기회를 가졌는가? 정상인의, 비장애인의 울타리주의를 통해서 사회안전망이 구축될 거라고 기대하면 안 된다. 사회안전망이 바로 소위 비정상인, 정신장애인을 포함한 인간적인 복지정책이라고 할 때, 아웃사이더를 아우르는 의사소통 구조를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의사소통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으나 이는 기우에 불과하다. 많은 정신과 환우들이 인터넷 카페활동을 통해서 자신의 얘기를 하고 있다. 이제 비장애인들이 이러한 정신장애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진정한 의사소통을 해야겠다. 폭력의 시발점을 비정상에서 찾기 보다는 우리 안의 파시즘 속의 배타주의와 폭력에서 찾아야겠다. 비장애인과 장애인과의 의사소통이야말로 폭력을 예방할 수 있고 인류의 평화를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다. 사족: 진중권씨의 조승희 사건에 대한 코멘트는 곰tv에서 곰스쿨의 한겨레 21 ‘시사 논술’에서 볼 수 있다. 비장애인인 진중권씨가 할 수 있는 말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내 글은 진중권씨의 발언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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