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5.04 18:59
수정 : 2007.05.04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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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이든 농촌이든 대도시든 아이들의 맑은 눈은 다르지 않다. 맨위 사진부터, 하굣길에 간식으로 먹기 위해 진달래꽃을 따고 있는 강원 영월군 ㅈ분교 6학년 김두현군, 지난달 24일 심리검사 질문지에 답안을 적고 있는 전북 군산시 ㄷ초교 5학년 어린이들, 4일 서울 강북구민운동장에서 열린 ‘꿈나무 대잔치’에서 친구들의 노는 모습을 바라보는 한 아이의 맑은 눈.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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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4일 찾아간 경기 남양주시 ○○지구는 아파트들이 성채처럼 우뚝 솟아 있었다. 주거단지로 계획된 새도시이기 때문에 아파트 단지 안에서 소리를 치면 소리가 울릴 정도로 조용한 동네다. 하지만 오후 4시가 지나 아파트 단지 한가운데 있는 ㄴ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이 쏟아져나오자 온 동네에 활기가 돌았다. 수업을 마친 아이들의 발걸음은 여유로웠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학원으로 발길을 재촉하는 서울 강남의 아이들과는 대조적이었다.
학교에서 나오는 아이들의 가장 큰 고민은 ‘오늘은 어느 아파트 놀이터에 가서 놀 것인가’였다. 이 아파트 놀이터에는 요즘 중학생 누나·언니들이 많이 놀러와 좀 무섭고, 저 아파트 놀이터에는 할아버지들이 많아 시끄럽게 굴면 야단을 맞는다. 놀이터를 결정하면 군것질 거리를 살 차례다. 아이스크림이나 과자, 어묵 따위를 손에 쥔 아이들은 놀이터로 달려간다. 놀이터에는 유치원에 다니는 동생들과 아주머니들이 이미 나와 있었다. 아주머니들은 아이들을 반갑게 맞아줬다. 군것질을 하며 수다를 떠는 아이들에게 한 꼬마가 헐레벌떡 뛰어와 외쳤다.
“야, △△아파트 101동에 불 났대!”
“거기 민형이네 집인데. 빨리 가보자.”
놀이터에 모여 놀던 10여명의 꼬마들이 책가방을 둘러메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학교에서 멀어야 10분 거리에 모여 사는 이곳 아이들에게 학교 친구는 곧 동네 친구다. 부모들끼리도 잘 알고 지낸다. 학급 수가 적기 때문에 학년이 올라가면서 거의 모든 동네 아이들이 적어도 한 차례씩은 같은 반을 거치게 된다. 그러니 학교 밖 생활도 학교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이 학교 6학년 은숙(가명)이는 친구들 때문에 학교에 오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하루 중에 쉬는 시간하고 학교 끝난 직후가 제일 좋아요. 친구들하고 떠들고 놀 수 있으니까요. 학원에는 다른 학교나 다른 동네에서 온 애들이 많아서 별로 재미가 없어요.”
이 학교의 김현량 교사는 “이곳 학생들은 학교가 최근에 생겼으니까 다들 친구가 없는 상태에서 새로 친구를 만들기 시작한 아이들”이라며 “그래서인지 새로 전학을 오는 학생에게도 아이들이 먼저 다가가 챙겨주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학원친구’ 보다 ‘학교 친구들’ 과 가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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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 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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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남양주 ㄴ초등학교는 학습목표 성향(28.29점), 학업실패 내성(84.53점) 척도에서 서울의 사립 ㅁ초교와 함께 높은 점수를 받았다. 자아 효능감 척도와 자아 탄력성 척도에서도 각각 73.20점과 42.32점으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자아 효능감이란 어떤 결과를 이뤄낼 수 있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을 뜻하고, 자아탄력성은 환경에 따라 자기 긴장과 참을성을 강화시키거나 약화시키는 조절능력을 뜻한다. 자아 탄력성이 높을수록 낯선 상황에 성공적으로 적응할 수 있다. 학업스트레스는 12.44점으로 강남 ㄱ초교보다 낮았고, 우울(39.42점)과 불안(39.38점) 척도에서도 ㅁ초교와 함께 다른 모든 학교들보다 낮은 점수를 받았다.
이 학교는 지난 2004년 택지개발사업으로 조성된 아파트 단지에 자리잡은 학교이고, 아이들의 과외학습 부담이 강남 ㄱ초교나 사립 ㅁ초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었다.
이곳 아이들은 특히 또래 관계가 좋았다. 다른 지역 어린이들은 주로 함께 노는 친구들이 학원 친구나 동네 친구라고 답한 비율이 높았던 반면, 이곳 아이들은 같은 반 친구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
곽금주 서울대 교수(심리학)는 “학원이나 동네 친구들보다 학교 친구들과 가깝다는 것은 더 다양한 친구들과 풍부한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고, 아이들이 학교 생활을 즐거워한다는 것”이라며 “이런 면이 ㄴ초교 아이들의 심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ㄴ초교 아이들이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거나 시키는 수준이 전국 평균과 비교해 두드러지게 낮고,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처지를 이해하고 공유하는 ‘공감 능력’이 뛰어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또 ㄴ초교 어린이들은 부모와 일상생활이나 친구에 대한 대화를 많이 나누고 있고, 성적에 대한 대화는 서울 강남이나 사립 초등학교 아이들보다 적게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기획취재반=유신재 이완 노현웅 최원형 김지은 윤은숙 김외현 정유경 김명진 신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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