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블로그 내가 만드는 미디어 세상
|
[블로그] 내 몸과 정신은 국가의 것이 아니다 |
"나는 자랑스런 태국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한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무려 12년 간 태극기 앞에 '엄숙'히 서서 가슴에 손을 얻고 외워왔던 이 한 문장은 아마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시키는 대로 공부하고, 시키는 대로 책상 밑에 들어가 예비군 훈련을 받고, 시키는 대로 매주 월요일이면 운동장에 나가 애국가를 부르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며 언제 끝나나 싶은 교장선생님의 뻔한 훈화를 들어야 했던 그 시절에는 한 번도 이 문장에 대해 의심해보지 못했다. 아니, 시키는 대로 하지 않는 것이 곧 선생님에 대한 '반항'이었고, 버릇없고 예의없는 학생으로 낙인찍히는 상황에서 어쩌면 의심이라는 것 자체가 봉쇄당해왔던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정기적인 애국가나 국기에 대한 경례의 강요는 어쩌면 국가가 가해왔던 폭력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아직 가치관도, 세계관도 그 기틀을 잡지 못하고 있을 때 "몸과 마음을 바쳐 국가에 충성을 다하겠다"는 고백의 반복이 우리의 가치관과 세계관 형성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국가가 무엇을 시키든, 국가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해야 한다고 세뇌되어온 이들에게서 어떻게 국가에 대한 자유와 국가로 부터의 폭력에의 저항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한다는 것은 또 무엇을 의미하는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대한민국의 정부/대한민국의 체제와 정당성에 위협이 될 만한 일이 생긴다면 우리는 몸을 던져서 (즉, 군대에 들어가서 총을 잡거나 혹은 신변의 위협(고문)에 굴하지 않고) 이 나라를 지켜야 하고, 동시에 몸 뿐 아니라 마음(사상)으로도 전심을 다해 이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국가(정부)가 원한다면 나는 내 몸을 언제든 국가의 자원으로 전환시켜야 한다는 논리이다. 그것이 군대에 들어가서 2년이란 시간을 의무적으로 보내야 하는 징병제와 국가의 이익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파병에 대한 의문을 막아왔고, 뿐만아니라 그 나라에 속한 이들을 국가 발전(?)에 쓰일 '국가의 인적 자원'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을 정당화하였다. 더 큰 문제는 국가는 우리의 신체 뿐 아니라 정신까지도 장악하려 한다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에서 규정한 "반 정부, 반 체제"적 생각(어떤 생각이 반 정부, 반 체제인지는 국가만이 안다)은 해서도 안 될 생각이기에 우리는 국가가 규정하는 '불순한 사상'을 가지지 않도록 늘 자기 검열을 해야 한다.
정부가 대한민국 국기법에 국기에 대한 맹세 조항을 삽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언제까지 이 국가는 그 국민들의 몸과 정신을 온전히 지배하려 하는가. 그것을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치장하면서 말이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