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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5.08 11:54 수정 : 2007.05.08 11:54

요즘 일일 연속극 <나쁜 여자, 착한 여자>를 가끔 본다. 연속극을 잘 보는 편은 아닌데 어쩌다 그 연속극을 보게 되었다. 겨우 20여분 하는 극인데도 보고나면 짠하다. 평범한 이야기 같은데 전혀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현실 속에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이야기라 생각하면 참 맥 빠지는 일이다. 애인 없는 사람은 6급 장애인이라는 말이 흔하게 회자되는 세상에서 문란한 성이나 가치가 없어진 윤리도덕을 들먹인다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일까. 남편 따로, 아내 따로, 한 지붕 밑에서 두 가족으로 산다면 그들은 무엇을 삶의 잣대로 삼아 살아가야 할까.

어떤 친구가 그랬다. 집에 들어오면 내 남자고, 밖에 나가면 남의 남자라 생각하고 살아야 내 속이 편한 것이 현실이라고. 그렇다면 남자도 그렇게 생각할까. 아닐 것이다. 자신이 바람을 피우니 내 여자도 바람을 피울 것이란 생각은 추호도 않을 것이다. 남자라면 딴 여자 보는 것이 당연하고, 여자라면 정숙한 현모양처로 남편만 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보통 남자의 통념이기 때문이다.

어떤 여자가 있었다. 이웃 남자를 사랑했다. 남편이 타인 같고 애인이 남편 같다는 여자였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결국 그들의 불륜 행각은 호텔에서 나오다 애인의 여자에게 덜미를 잡혔다. 양쪽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남자는 이혼을 했다. 여자는 이혼 하지 않았다. 왜냐면 여자는 이혼하고 그 남자랑 부부로 살 생각은 애초에 없었기 때문이다. 남편 따로 애인 따로 양손에 쥐고 사는 것이 좋았기 때문일까. 아니, 남편이 불쌍해서 버릴 수가 없다는 변이었다.

그녀의 남편 역시 같이 죽자는 말은 하면서도 이혼하자는 말은 못했던 것이다. 그런 사랑을 무슨 사랑이라 해야 할까. 그녀는 남편에게 이해해 달라고 했다.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어 있더라고 남자가 있어서 당신에게 더 잘하고, 시댁 식구들과 아이들에게 더 헌신적이었다고. 남편은 아내를 받아들였다. 남편의 변은 그 아내를 버리면 아내 같은 여자를 다시는 만날 자신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왜 그녀를 보면 애잔할까. 빗나간 사랑이 얼마나 아프고 힘들까 싶어서다. 애정의 대상이 남편이어야 할 사람이 남편 아닌 딴 여자의 남편을 사랑한다니 그 속내가 얼마나 아릴 것인가. 양심의 가책은 넘고 또 넘어도 산일 것이다. 아니 어느 선에 가면 자포자기 심정이 된다고도 하고, 일상처럼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진다는 말도 한다. 과연 그럴까. 아내라면, 엄마라면 절대로 그럴 수가 없을 것이라 생각하는 내가 고지식한 것일까. 나 자신만 생각하면 꺼리 낄 것이 없지만 남편과 자식을 생각하면 아무리 비양심적인 여자라도 마음까지 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게 인간이니까. 바람피우는 남자가 아내에게 더 잘한다는 말이 있다. 아내와 헤어질 생각이 없는 남자일 경우란다.

어떤 여자는 세상 모든 남자가 바람을 피워도 내 남편만은 바람 안 피울 것이라 장담했다. 잠자리도 끝내주고, 퇴근하면 시계처럼 정확하게 집에 들어오고 주말이면 아이들과 놀아주고, 아내와 여행 다니기 즐기기 때문에 지극히 가정적인 남자라 가끔은 지겨울 때도 있다고 은근히 자랑했다.

그런데 정말 우연히 남편의 외도를 목격했다. <나쁜 여자, 착한 여자>속의 불륜 남녀처럼 아파트를 구해 놓고 주말 부부 행세를 하며 이중생활을 즐겼던 것이다. 아내는 남편에게 겁을 주기 위해서, 그 여자와 헤어지게 할 욕심으로 이혼을 요구했다. 남편은 아예 이혼장을 만들어 들고 와서 도장을 찍으라 하더란다. 더럽고 치사해서 도장 찍어주고 위자료 몽땅 받아 챙겼다지만 믿던 도끼에 발등 찍힌 그녀는 세상의 어떤 남자도 믿을 수 없게 되었다고 한탄 했다.

연속극을 보면 불륜과 삼각관계가 빠지면 극이 안 되는 것 같다.

며칠 전 텔레비전을 켜니 <내 남자의 여자>라는 연속극을 하고 있었다. 가장 친한 친구에게 내 남자를 뺏긴 여자 이야기였다. 두 여자의 연기가 참 볼만했다. 연속극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비일비재한 일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몰입해 있는데 대뜸.

“연속극이 여자들 다 벼린다. 저런 거는 보지마라.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이약이다.”

그가 채널을 자연 다큐멘터리로 돌려버린다. 그는 현실에서 떠도는 소문 중 하나를 극으로 꾸민 것이 연속극인 줄 모르는 것일까. 내 남자의 여자는 없을까.

“나도 저런 사랑 좀 해 보고 싶은데.”

눈에 쌍심지가 들어가는 것을 보고 슬며시 딴청을 피웠다.

성경에 보면 <간음하지 말라>는 십계명이 나온다. 법구경에 보면 <애욕으로부터 걱정이 생기고, 애욕으로부터 두려움이 생긴다.>고 했다.

<나쁜 여자, 착한 여자>연속극은 어떻게 마무리가 될까. 현실에서도 본처는 이혼을 해 주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극에서는 고아에 자식도 없는 설정이니 이혼이 쉬울 것 같은데. 끈끈한 가족애로 묶어놓고, 지금은 원하던 아이를 임신한 걸로 설정해 놨지만 만약 아이가 떨어지면 여자는 그 충격으로 어떤 복수를 할까. 복수는 복수를 낳으니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끼리, 불쌍한 사람은 불쌍한 사람끼리 부부를 바꾸어서 새 출발하게 만드는 것은 어떨까. 짝사랑하는 그 여자 역시 멋진 남자를 붙여주는 설정도 괜찮겠지. 통속적인 이야기는 지극히 통속적인데 의미가 있는 것이니까.

그러나 소중한 것은 내 남자의 여자나 내 여자의 남자가 아니라 내 남자와 내 여자가 아닐까.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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