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 게바라 부모’의 교육
순수한 어린 영혼 어린 시절, 게바라는 길거리에서 사귄 한 친구의 집에 놀러갔다가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친구는 부모와 다섯 형제자매들과 함께 침대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한 칸짜리 오두막에서 생활하고 있었는데 겨울에는 신문지나 넝마조각을 덮고 잔다고 했다. 어린 게바라는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에게 따지듯이 그 사실을 말했다. 아버지 에르네스토는 아들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그렇단다. 가난은 이 세상에 존재한다. 그러나 그에 대항하여 싸울 줄 알아야 한다.”(<체 게바라 평전>, 장 코르미에, 실천문학사, 47~48쪽) 이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친구를 보고 가슴 아파할 줄 알도록 부모가 게바라를 잘 키웠다는 것이다(당시 게바라의 집은 부유한 편에 속했다). 오늘 한국의 부모들 중에는 자기 아이가 가난한 집 아이와 어울리지 못하게 하는 사람들도 있다. 또 가난한 아이를 보면 가슴 아파 하기는커녕 깔보고 놀리는 아이들도 늘어나는 추세이다.이런 점에 비추어볼 때 게바라의 부모가 평소에 가난한 이웃들을 어떤 태도로 대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나중에 게바라의 집은 ‘비베 코모 키에라스(vive como quieras : 원하는 대로 지내는 곳)로 불렸는데, 그것은 그 집이 어린 게바라가 먹여주고 재워주기 위해 하루가 멀다 하고 데려오는 굶주린 친구들이나 광부의 아이들, 호텔 노동자들의 아이들로 들끓었기 때문이다(이것 또한 게바라 부모의 허락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앞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또한 게바라의 아버지가 아들의 정치도덕적 입장에 아주 건전한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이다. 게바라의 아버지는 1937년에 스페인 공화군(프랑코 독재를 반대하는 조직)을 지지하는 후원회를 조직하기도 했고 반나치운동을 전개했던 아르헨티나 행동대원이기도 했다고 알려진다. 그래서 게바라는 어릴 때부터 도덕적이고 진보적인 입장을 가졌던 아버지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만약 게바라의 질문에 대해 아버지가 “그런 구질구질한 곳엔 왜 갔냐! 다시는 그런 놈들과 어울리면 안 돼!”라고 대답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게바라는 아버지를 본받아 가난한 친구들을 무시하는 못된 아이가 되었거나, 속물 같은 아버지를 증오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것이든 어린 게바라에게는 몹시 해로운 영향을 주게 된다. 아버지에 대해 화가 난 아들은 나중에 사회생활을 할 때 지나친 증오심을 발산하고 남성들과 감정적으로 잘 못 지내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게바라는 바르고 정직한 부모 밑에서 제대로 사랑을 받으며 자란 것 같다. 천식에 좋은 마테차를 게바라에게 공급하기 위해 노력했던 아버지의 모습은 이를 잘 보여준다(아버지의 정성 덕분에 게바라는 쿠바의 산악지대에서 게릴라전을 할 때에도 마테차를 마실 수 있었다). 체가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떠나올 무렵부터, 체의 아버지는 마테 잎을 정기적으로 2~3kg씩 사들였다. 그래서 그는 항공기 조종사나 여행객, 또는 기자 등에게 부탁하여 페루의 리마로, 멕시코로, 심지어 마이애미까지 보냈다. 그것은 아바나까지 도착하여 시에라에 있는 체에게까지 전달되었다.(<체 게바라 평전>, 장 코르미에, 실천문학사, 329쪽) 게바라가 부모님에게 보냈던 편지들을 보면 부모-자식 간의 ‘의사소통’도 매우 원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게바라는 눈치를 보지 않고 자기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거의 다 편지에 쓰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게바라의 부모가 아이를 무원칙적으로 사랑(과잉보호)한 것은 아니었다. 게바라는 아주 어릴 때부터 천식을 달고 살았다. 이때 부모가 안타까운 마음 때문에 어린 게바라의 응석을 지나치게 받아주었다면 게바라는 버릇이 없고 자기중심적이며 의존적인 아이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게바라는 젊은 시절부터 부모가 주는 용돈을 받지 않으려고 했으며, 해외에 나가 있을 때 극도로 생활이 어려워져도 부모에게는 손을 벌리지 않았다. 이런 점을 고려해보면, 게바라의 부모는 어린 게바라를 아주 원칙적으로 대했기 때문에 그의 독립심을 훼손시키지 않았던 것 같다(게바라가 천식을 이겨낸 것도 독립심 때문일 것이다). 이외에도 게바라는 어릴 때부터 거짓말을 극도로 싫어했는데, 이 또한 부모의 영향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부모-자식 간의 관계가 좋았고 그 정치적 입장 또한 비슷했기에, 게바라에게 있어서는 혁명운동에 흔히 동반되는 가족과의 갈등은 특별히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게바라에게 있어서 혁명은 ‘가난에 대항하여 싸울 줄 알아야 한다’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었으리라. 좋은 부모 덕분에 게바라는 ‘민중을 사랑하는 것이 곧 부모를 사랑하는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혁명운동에 전념할 수 있었을 것이다(운동 때문에 부모-자식 간에 심각한 대립과 갈등을 겪는 경우 이는 정확하게 해결되지 않으면 운동에 반드시 나쁜 영향을 준다). 부모와의 관계가 좋았기 때문에 게바라는 자기의 자식들도 극진히 그리고 원칙적으로 사랑할 수 있었다. 게릴라 투쟁을 할 때에도 유난히 별이 총총한 밤이면 그는 딸에게 주는 시들을 가만히 속삭였다.(<체 게바라 평전>, 장 코르미에, 실천문학사, 235쪽) 게바라가 딸에게 썼던 최후의 편지에 그가 자식들을 얼마나, 어떻게 사랑했는지 잘 나타나 있다. 너희들이 이 편지를 읽게 될 즈음엔 나는 더 이상 너희들과 함께 있지 못할 게다. 너희들은 더 이상 나를 기억하지 못할 거고 어린 꼬마들은 이내 나를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너희들의 아빠는 자신의 생각대로 행동했으며 자신의 신념에 충실했던 사람이었단다. 아빠는 너희가 훌륭한 혁명가로 자라기를 바란다. ··· 특히 이 세계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행해질 모든 불의를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을 키웠으면 좋겠구나.(<체 게바라 평전>, 장 코르미에, 실천문학사, 518~519쪽) 부모관계가 나쁜 사람은 적어도 사회에서라도 부모를 대신할 사람을 만나야 한다. 이 세상에서 단 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정말로 자신을 사랑하고 믿어줄 사람이 있다고 느끼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하늘과 땅 만큼이나 크다(자살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것이 심각하게 결핍되어 있다). 물론 부모관계가 좋고 사회에서도 부모를 넘어설 수 있는 스승 혹은 동료를 만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인데, 체 게바라는 카스트로를 만남으로써 두 가지를 모두 가지게 된다. 쿠바혁명의 지도자였던 카스트로는 게바라의 부모보다도 더 큰 사랑을 베풀어주고 뜨거운 신뢰를 보내주었기 때문이다. 카스트로가 체 게바라를 얼마나 아끼고 신뢰했는지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이방인’이었던 그를 자신의 동생인 라울이나, 알메이다나 몬카다(쿠바의 유명한 혁명가)보다도 먼저 대장으로 임명한 사실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카스트로는 조직의 무기제작자에게 비밀명령을 내려 체 게바라의 대장임명식에 사용할 ‘별’까지 미리 만들게 하는 세심함을 보인다). 체 게바라는 이러한 카스트로의 사랑과 신뢰에 크게 고무되었다. “누구에게나 내재해있는 자신감은 제때를 만났을 때 완전히 발효된다. 이 일로 인해 나는 세상에서 가장 잘난 인간이라는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체 게바라 평전>, 장 코르미에, 실천문학사, 266쪽) 부모의 사랑과 신뢰를 듬뿍 받은 사람은 높은 자존감과 자부심을 갖게 된다. 이에 더해 쿠바 최고지도자의 사랑과 신뢰까지 더해졌으니 게바라의 자존감과 자부심이 어떠했을지는 상상이 될 것이다. 아버지와의 관계가 좋았던 게바라였기에 당연히 남자들과의 관계는 원만했을 것이고 카스트로와도 순도 높은 동지관계를 맺을 수 있었을 것이다. 게바라와 카스트로가 어떤 관계였는지는 그가 유언장처럼 남긴 마지막 편지에 잘 나타나 있다. 그 편지는 1965년 10월 3일 쿠바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공개적으로 읽혀졌다. “당신과 헤어질 생각을 하니 희열과 고통이 어지럽게 내 마음을 휘젓는군요. ··· 혹시 또 다른 하늘 아래서 최후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면 나는 마지막으로 바로 쿠바 국민, 특히 당신에게 향할 것입니다.”(<체 게바라 평전>, 장 코르미에, 실천문학사, 516~517쪽) 비록 천수를 누리지는 못했지만 체 게바라는 정말로 행복한 사람이었다. 부모와 동지의 사랑 속에 살다가 죽을 수 있었으니까.
생의 최후에 뜨겁게 회고하며 바라볼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복일까?
체 게바라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결코 외롭지 않았다.
새뜰심리상담소출판사 대표 김태형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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