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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5.14 20:02 수정 : 2007.05.14 22:54

딸 민아(위), 민서(아래)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김현오씨. 정유경 기자

둘째 키우려 육아휴직했던 김현오씨

“애들을 봐야 하거든요. 집에서 만나는 게 좋겠네요.” 그는 취재 약속을 잡는 것부터 남달랐다. 민아(6)와 민서(3) 두 딸의 아버지인 회사원 김현오(37)씨. 그는 육아에 매우 적극적인 아빠다. 지난해에는 회사에 육아휴직을 신청해 7~8월 두 달 동안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기도 했다. 맞벌이를 하는 아내 최윤경(34)씨는 “설거지든 빨래든 나보다 더 잘한다”며 웃었다.

2005년 10월 민서가 태어났을 때, 최씨는 출산휴가 3개월에 육아휴직 2개월을 썼다. 휴직 기간이 끝나 직장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되면서 김씨 부부의 고민이 시작됐다.

“첫 딸을 낳았을 때는 장모님이 돌봐주셨어요. 하지만 장모님에게 둘째까지 맡아달라고 부탁하기에는 면목이 없더라고요. 또 둘째는 제가 직접 키워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고요.”

김씨는 살림에는 자신이 있었다. 어려서부터 맞벌이를 하는 어머니 밑에서 집안일을 스스로 하는 습관이 몸에 뱄다. 육아휴직 전에도 집에서 맨손으로 쓱쓱 설거지를 하고, 걸레질도 곧잘 했다. 친구들과 술을 마신 날에도 집에 오면 가장 먼저 민서의 천기저귀부터 빨았다.

하지만 막상 도전한 ‘아이 돌보기’는 생각보다 힘들었다. 우선 아이들을 돌본다는 것은 24시간 노동이었다. “보통 집에 돌아왔을 때 집이 어질러져 있으면 아내에게 ‘집에서 뭐하냐. 놀았냐.’고 물어본다잖아요. 그런데 첫날 아내가 직장에서 돌아왔을 때 집은 엉망이었죠. 그렇다고 내가 집에서 놀았던 것은 아니거든요. 그 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가사노동의 어려움을 실감했죠.”

두 달 동안의 육아휴직 때 집에서 책도 읽고, 자격증 공부도 하려던 ‘야심찬’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한시도 아이들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기어다니기 시작한 민서는 잠시 한눈을 팔라치면 어디론가 사라졌다. 보채다 잠이 든 듯한 민서를 아기침대에 눕혀 놓고는 한숨 돌려 텔레비전을 보는 동안, 소리가 나서 돌아보니 민서가 아기침대 난간을 잡고 일어났다가 한바퀴 돌며 막 떨어지고 있었다. 급한 김에 발을 뻗어 민서를 받아냈지만, 그의 심장도 함께 툭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밤이 되면 아내와 교대하고 동네 친구들과 술 한잔 하는 여유는 있을 줄 알았는데, 술마신 다음날 애들을 쫒아다니다보니 녹초가 됐다. 결국 좋아하는 술도 끊고 아이들을 돌본 지 두 달 만에 6㎏이 빠졌다.

몸은 녹초되고 집안 엉망이었지만
“딸과 이런 행복 언제 누리겠어요?
동료들에게 적극 권하고 싶어요”
아버지 육아 참여 사회도움 있어야

400여명이 근무하는 그의 일터에서 남성이 육아휴직을 신청한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 “시간을 과거로 되돌릴 수는 없잖아요. 지금이 아니면 언제 두 달 내내 어린 딸이 자라는 모습을 24시간 지켜보는 즐거움을 누리겠어요.” 그런 아버지 마음을 알아주기라도 하듯, 민서는 제일 먼저 “아빠”라는 말로 말문을 텄다. “아빠”라고 서툴게 부르는 민서의 목소리를 들을 때면, 지금도 모든 피로가 사라진다. 활달한 언니와 달리 수줍음 많은 민서지만, “아빠” 하고 달려와 안긴다. “남자들이 꼭 이런 즐거움을 알았으면 해요. 주변 동료들에게도 적극 추천하고 있습니다.”


그의 직장인 지하철공사가 단체협약에 따라 3개월의 유급 육아휴직을 보장하고 있는 것은 그가 육아휴직을 결심하는 데 큰 버팀목이 됐다. 지하철공사는 육아휴직 기간에 기본급을 지급하는데, 국민연금과 건강보험료 등 이것저것 떼고 나면 60만원 정도가 남는다. 그는 “물론 아내의 벌이와 미리 저축해 둔 돈이 없었다면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애들 옷값과 이유식값 등 이것저것 돈 들어갈 데가 많아요. 만약 저 혼자 60만원으로 딸 둘을 키웠다면 매우 빠듯했겠죠. 내년부터 복지부가 육아휴직수당을 40만원에서 50만원으로 올린다는데, 그걸로 출산율을 높이겠다는 건 말이 안돼요. 그걸로는 어림없거든요.”

육아휴직을 하면 직장 동료들에게 과중한 업무 부담을 지우게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육아휴직을 선뜻 결심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그도 생각같아서는 석 달을 채우고 싶었지만, 이런 이유로 두 달만 신청했다고 한다. “수당보다는 육아휴직을 쉽게 신청할 수 있도록 대체인력제도를 마련하거나 직장 놀이방을 마련해 주는 게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요?”

천준호 한국청년연합회 대표는 “아버지들이 육아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육아휴직 제도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청년연합회는 지난해부터 ‘파파쿼터제’(아버지 육아휴직 의무 할당제) 도입 운동을 벌여오고 있다. 청년연합회는 지난달에는 <아이 키우는 아버지 학교>를 처음으로 열기도 했다. 천 대표는 “아버지 학교에 참여한 젊은 아빠들은 ‘변하는 아버지상을 위해 기업과 사회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동료들의 업무가 많아질 것을 우려해 육아휴직 신청을 기피하는 현상을 막기 위해 부서원 모두에게 인사고과에서 가산점을 주는 방안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왔다”고 전했다. 여성정책연구원 안상수 연구위원은 “육아휴직을 비롯한 기업의 가족친화정책은 사원들의 직무만족을 높이고 이직을 줄이는 조절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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