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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5.15 17:14 수정 : 2007.05.15 17:14

고 최명희의 대하소설 '혼불' 배경지

"건강이 허락하는 한 종가(宗家)를 지킨다며 서울로 모신다는 제의도 거절하셨어요. 최씨 집안의 구심점이셨는데..."

15일 새벽 전북 남원에서 발생한 화재로 숨진 삭녕(朔寧) 최씨 12대 종부(宗婦) 박증순(93.여)씨의 빈소가 마련된 남원 의료원에는 박씨의 큰딸 최강희(70)씨를 비롯한 유족들이 빈소를 지키고 있었다.

이날 화재로 불에 탄 남원시 사매면 서도리 노봉마을 삭녕 최씨 종가는 조선시대 남원지역 양반가의 몰락 과정과 3대째 종가를 지켜온 며느리의 애환을 그린 작가 고(故) 최명희의 대하소설 '혼불'의 배경이 된 곳이다.

최씨는 숨진 어머니에 대해 "보통 사람과는 확실히 다른 분"이라고 설명했다.

20살의 꽃다운 나이에 최씨 집안으로 시집 온 어머니는 한국 전쟁을 겪으며 남편을 잃고 수십년간 6남매를 홀로 키우며 최씨 종가를 지켰다.

일하는 사람도 서너 명이 있었지만 매일 새벽 4∼5시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머리를 깔끔하게 빗어 넘긴 뒤 앞치마를 두르고 부엌문을 여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고 한다.


딸 최씨는 "잠시 외가에서 생활할 때 어머니가 하던 대로 아침에 일어나 씻고 물을 길러다 날랐더니 친척들이 놀라더라. 어머니가 늘 하던 모습이어서 모든 사람이 그런 줄 알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남원 혼불 문학관 직원인 황영순(58.여)씨도 연합뉴스와 전화 통화에서 "(박씨는) 양반집 마나님의 기품을 지니고 있었다. 몸이 불편해 거의 방에서만 생활했지만 손님이 오면 옷매무새부터 가다듬을 정도로 깔끔하고 학식이 풍부해서 얘깃거리가 무궁무진했다"고 전했다.

자녀들에게는 냉정하리만큼 엄격한 박씨였지만 남들에게는 집안의 대소사도 일일이 챙겨줄 정도로 한없이 자상하고 따뜻한 종부였다.

최씨 집안은 "하인까지 포함해 10명이 넘는 대가족이었지만 한번도 식구끼리만 밥을 먹은 적이 없다. 늘 가난한 이웃과 지나가는 사람들까지 불러다 함께 식사를 했다"고 전했다.

'혼불'의 작가인 최명희씨와는 먼 친척뻘이기도 해 최씨가 종가에 자주 놀러 왔고 박씨와 많은 얘기를 나누며 '혼불'을 집필하는데 도움을 얻었다고 한다.

실제로 소설 속에서 종손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끝없이 겉도는 남편 '강모' 대신 시댁을 다시 일으키는 '효원'이라는 인물의 모델이 박씨라는 얘기도 있다.

"소설은 어머니 뿐만 아니라 동시대를 산 모든 어머니의 얘기"라던 딸 최씨는 "지은 지 100년이 넘은 집이라 자주 수리를 해야했다. 아마 어머니가 계시지 않았다면 집을 헐었을텐데... 어머니 덕분에 조상이 물려준 집을 지켜왔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박씨의 빈소는 남원의료원과 서울대병원에 마련됐으며 유족으로는 최강원 서울대 의대 교수와 최영희 전 국회의원 등이 있다.

장하나 기자 hanajjang@yna.co.kr (남원=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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