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5.16 18:54
수정 : 2007.05.16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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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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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슬러 이왕표씨등 ‘박치기왕’ 김일 기리며 경기
맥주 3만cc 고기 50인분 한끼에 ‘꿀꺽’
국민들 좋아하니 고통 참으며 박치기
‘땡땡땡’ 소리에 심장 뛴다 하셨는데…
“영웅은 아직도 내 맘속에 계십니다”
챔피언 벨트를 두른 ‘박치기왕’ 김일 사진이 천장에 걸렸다. 링에 오른 제자들은 사진 밑에 꽃 한 송이씩 바쳤다. 후배 안재홍은 “영혼이라도 오늘 다녀가시라”고 편지를 읽었다. 이윽고 ‘땡땡땡’ 종이 울렸다.
지난해 10월26일 숨진 ‘박치기왕’에게 바치는 제자들의 추모경기가 열렸다. 스승의 날인 지난 15일 밤 서울 장충체육관. ‘날으는 표범’ 이왕표(52·선문대 무도학과 겸임교수)는 “영웅은 아직도 내 마음속에 살아계시다”고 했다. 그의 말을 편지체로 엮었다.
그래도 지난해 스승의 날엔 찾아뵐 수 있었던 선생님이 계셔 좋았습니다. “이 관장, 술 한잔하세” 하시더니 소주 반잔을 드셨죠. 고기는 얼마 드시지 못했고. 한때 앉은자리에서 맥주 3만㏄, 생선 90마리, 고기 40~50인분을 한끼로 드셨던 선생님이 아니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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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표(왼쪽)와 노지심이 15일 밤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추모경기에 앞서 전 고 김일씨를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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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년 전 ‘김일 도장 1기생’에 지원했을 때 “네 눈빛이 살아 있다”며 기준 체중에 모자랐던 절 뽑아주셨죠. 영웅의 제자가 되다니. 지금 생각해도 가슴 벅찬 일입니다. 1994년. 10여년 만에 뵌 선생님은 휠체어를 밀며 우리를 맞으셨습니다. 일본에서 그렇게 지내시는 줄 알았다면 한걸음에 달려가 진작 모셔왔을 것을. 역도산 선생께서 방망이와 골프채로 머리를 쳐 단련시켰다는 선생님의 박치기는 대단했습니다. 사흘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한 선수가 나오기도 했으니까요. 나중에 선생님이 말씀하셨죠. “이 관장, 난 박치기가 싫어. 그런데 국민들이 너무 좋아하니 안할 수가 없었네.” 박치기를 하느라 뒷목이 심하게 눌리는 그 고통을 어떻게 참으셨습니까?
선생님 보셨습니까? (노)지심이의 백드롭을, (안)재홍이의 플라잉 기술을. 제가 링에서 날린 ‘파워킥’을. 제 양발차기에 두 선수가 뒤로 쓰러질 때 터진 팬들 환호성이 그곳까지 가 닿았는지요. 선생님과 같은 조로 마지막 태그 경기를 했던 84년 기억나십니까? 태권도 6단이던 제가 공중차기하면, 선생님은 박치기로 상대를 눕히셨죠.
저도 어느새 50대가 됐습니다. 머리도, 턱수염도 희끗희끗해졌습니다. 그런데도 35살인 마이크 휴(캐나다)의 도전을 받아 세계프로레슬링 헤비급 경기를 치르지 않았습니까? “자네만 믿네. 이 관장, 부탁하네” 하시던 선생님 말씀이 저를 다시 링에 오르게 합니다.
승리를 알리는 ‘땡땡땡’ 소리를 들으면 심장이 뛴다고 하셨죠? 호랑이가 그려진 가운을 입고 선생님께서 사각 링으로 돌아올 것만 같은 그런 날입니다. 그립습니다.
제자 왕표 올림
추신: 선생님이 계시다면 스승의 날에 원없이 고기를 대접해 드릴텐데. 못내 아쉽고 원통합니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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