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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5.16 19:12 수정 : 2007.05.16 23:11

홍종미(37)·김용찬(39)씨 부부가 2005년 네 살 때 입양한 아들 연호와 함께 지난해 6월 태국 여행을 하며 코끼리 타기 체험을 하고 있다. 연호는 처음에는 홍씨의 손길을 싫어하고 부모의 얼굴에 침을 뱉는 등 거부 반응이 심했지만, 요즘에는 홍씨 부부에게서 한시도 떨어져 있으려 하지 않는다. 홍종미씨 제공

입양 사각지대 ‘2~3살이상 연장아’

‘미운 일곱살’ 선재는 3년 전 하선희(44)씨의 품으로 왔다. 선재는 갓난아이 때부터 보육원에서 자랐다. 19살 선재 엄마는 2000년 초 아이를 낳고 병원에서 사라졌다. 뒤늦게 나타난 20살 아빠는 선재를 입양기관에 맡겼다. 4살 때인 2004년 하씨 부부의 아들이 된 선재는 그해 국내로 입양된 1641명 가운데 단 62명뿐인 3살 이상 입양 사례에 속한다.

16일 보건복지부 자료를 보면, 2000~2006년 국내 입양에서 3살 이상 아이 입양은 1만1148건 가운데 384건으로 3.4%에 지나지 않는다. 같은 기간 1만5706건이 이뤄진 국외 입양은 미혼모의 갓난아이가 99.7%를 차지했다. 나라 밖으로든 안에서든 이른바 ‘연장아’가 가정을 찾는 일은 ‘하늘의 별 따기’인 셈이다. ‘연장아’는 발달 단계상 넓게는 2살, 좁게는 3살이 지난 아이들로, ‘애착관계 형성시기’를 지나친 아이들이다.

입양 정책이 연장아 입양을 촉진하는 쪽으로 돌아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국내외 입양 3231건 가운데 미혼모 갓난아이의 비중이 2901건으로 89.8%에 이르렀다. 정부가 아동복지법에 따라 ‘보호를 필요로 하는 어린이’로 보는 사례는 지난해 9034명이었지만, 입양 기회는 미혼모의 갓난아이에게만 몰린 셈이다. 반면 사회 양극화로 늘어난 빈곤·학대 어린이들은 좀처럼 새 가정을 가질 기회를 얻지 못했다. 이처럼 ‘입양의 사각지대’로 남아 있는 시설보호 어린이는 2만여명에 이른다.

한편, 힘들게 ‘3%의 선택’을 한 연장아 입양 가정 대다수는 아이의 정서장애로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 사단법인 한국입양홍보회의 ‘연장아 입양부모 모임’ 대표인 김외선(48)씨는 최근 직접 ‘미술 치료’를 배우러 나섰다. 2000년과 2003년에 각각 세살배기와 네살배기를 차례로 입양했는데, 아이들이 모두 정서장애가 있었기 때문이다. 연장아들은 입양 부모에게 침을 뱉고 분노를 쏟아붓거나, 비정상적인 불안으로 양육자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경향이 있다.

김씨는 “연장아 입양 회원이 100가구 정도 되는데, 대다수가 아이들의 불안,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등으로 고통받고 있다”며 “소아정신과에 가서 심리검사를 받는 데 몇십만원이 들고, 몇년씩 받아야 하는 놀이치료 등 경제적 부담이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현재 정부는 입양기관에 내야 하는 200만원의 입양 수수료에 더해 올해 초부터 매달 10만원씩의 양육비를 지원한다. 또 아이의 의료급여도 지원한다. 하지만 미술·음악 치료 등 각종 특수 심리치료들은 고스란히 입양 부모의 몫이다. 연장아 입양 부모들은 아이의 정서장애로 가슴앓이를 하는 현실을 고려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요구하고 있다. 연장아 입양 특성을 이해하는 전문가로부터 부모와 아이가 함께 심리치료를 받도록 제도적·경제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부모들에게 연장아 적응 과정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이 이뤄져야 ‘파양’ 같은 비극적 사태를 막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들은 17일 경기도 과천시 한국입양홍보회 사무실에서 ‘특수욕구를 가진 아동의 입양설명회’를 열어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할 계획이다.

지난 11일 ‘제2회 입양의 날’ 대통령 표창을 받은 유두한씨의 부인 김정화(50)씨는 “연장아가 시설에서 5년 자랐으면 그 시간의 두 배인 10년이 지나야 적응이 된다”며 “현 제도 아래서는 정신적·경제적 부담이 입양 부모에게만 돌아가 기쁨만큼 고통스러운 ‘전쟁 같은 삶’을 살게 된다”고 말했다.

국내 입양 어린이 나이별 현황/ 국내외 입양 어린이 출신별 현황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미국·영국의 경우
친부모 아동 방임·학대 심할땐 친권 심사

보호를 필요로 하는 어린이 발생과 보호 현황
우리나라에서는 부모가 아이를 돌보지 않아도 정부가 ‘친권’에 개입하는 일이 거의 없다. 보육원 등 아동보호시설에서 자라는 2만여명의 아이들 대부분은 이런 이유로 ‘입양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하지만 미국이나 영국 등에서는 정부가 친권에 적극 개입하는 시스템이 발달해 있다. 우리와 달리 친권 개입의 책임자와 시한이 명확한 점이 특징이다.

미국은 부모가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않거나 학대 위험이 있으면, 가정법원이 일단 아이를 부모에게서 떼어낸다. 이때부터는 주정부가 법적인 후견인이 되는데, 아이들은 친인척이나 위탁 가정에서 지내게 된다. 가정법원은 일년이 지나도 부모의 양육 의지나 능력이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친권 박탈의 절차를 밟는다. 미국의 아동보호시설은 아이가 한 해 이상 머무는 곳이 아니다. 아이는 가정 위탁을 거쳐 새로운 가정에 입양되는 것이 원칙이다.

영국은 지역마다 설치된 아동복지심의위원회가 아이의 방치·학대 가능성이 의심되면, 지방정부를 통해 법원에 아이의 보호를 신청한다. 지방정부는 법원 명령에 따라 장단기 가정 위탁이나 입양, 시설보호의 길을 택한다. 영국에서도 시설보호는 주로 특수장애 어린이 등을 위한 ‘최후의 선택’이다.

일본은 아동상담소가 중요한 구실을 한다. 아동상담소는 부모가 개입을 거부할 때 경찰서장의 협조를 받을 수 있다. 또 가정재판소에 시설 입소나 가정위탁 승인을 신청하거나 친권 상실을 청구할 수도 있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수년간 아이 방치한 부모라도 동의 안해주면 입양 불가능해 문제”
10살 영진이 힘들게 아들로 맞은 최재형 부장판사

최재형(51) 판사와 부인 이수연(47)씨가 지난해 4월 입양 절차를 밟고 있던 영진이와 이미 입양된 진호를 데리고 경주로 봄나들이에 나섰다. 이수연씨 제공
서울고법 최재형 부장판사는 지난해 7월 10살짜리 아들 영진이를 새로 얻었다. ‘보육원 어린이 4박5일 가정체험 행사’로 인연을 맺은 영진이를 아들로 맞은 것이다. 갓난아이였던 진호(7)를 6년 전 입양한 터라 주변에선 말리는 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영진이가 ‘입양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는 얘기를 듣자 가슴이 저렸다.

최 판사 부부가 입양을 결심했지만 절차는 쉽지 않았다. 2000년 당시 생후 10개월이었던 진호는 미혼모였던 어머니에게 입양 동의를 얻었다. 하지만 영진이는 친권자인 어머니의 행방을 알 수가 없었다. 아이는 태어난 지 일년 만에 시설에 맡겨졌고, 10년을 홀로 컸다. 우리나라에는 지난해 말을 기준으로 1만8817명의 아이들이 보육원 등 아동복지시설에서 자라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이런 ‘친권의 족쇄’ 때문에 입양 기회가 아예 차단돼 있다.

물론, 현행 아동복지법은 자치단체장이 필요에 따라 친권의 제한·상실을 법원에 청구하도록 하고 있다. 또 민법에도 친권 상실을 청구할 근거가 있다. 그렇지만 국내에선 지금까지 보육원에 아이를 맡기고 돌보지 않았다고 해서 부모의 친권을 제한한 사례가 단 한 건도 없다.

최 판사는 “아동복지법에 근거 조항은 있지만, 시행령이나 세칙 등이 전혀 없어 사실상 친권 제한 시스템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부모가 아이를 보호시설에 맡긴 뒤 몇 년 동안 찾아보지 않은 방임도 친권 제한의 중대한 사유”라며 “지자체가 아이에게 입양 기회를 열어주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최 판사는 경찰 등의 도움을 받아 영진이 어머니 찾기에 나섰다. 어렵게 영진이 어머니와 연락이 닿았다. 영진이 어머니는 망설였지만, 입양에 동의했다. 이런 과정에서 입양 부모가 법조계 인사였던 점도 큰 도움이 됐다.

최 판사는 “만약 영진이 어머니를 찾지 못하면 법원에 친권 상실을 청구하는 절차를 시도하려고 했다”며 “아이들이 ‘친권의 족쇄’에 묶여 있고, 아동보호시설은 조직 생리상 입양에 적극적이지 않아 입양 기회가 줄어든다”고 말했다.

보육원 등 아동보호시설의 아이들은 ‘잠시’를 전제로 맡겨졌다가 대부분 그대로 시설에서 자라게 된다. 이런 아이들은 19살 이후 300만원의 정착금을 받아서 사회에 홀로 서야 한다. 입양과 달리 ‘영원한 고아’로 남는다. 교육 수준과 경제적 자립심이 높지 않아서 가혹한 상황에 몰리는 일도 많다. 허남순 한림대 사회복지대학원장은 “아이를 위해서는 입양이나 위탁으로 가정에서 자라는 게 최선의 선택”이라며 “시설에 맡겨졌다가 원부모에게 돌아가는 비율은 30% 수준인데도 대부분이 친권 문제 등 때문에 입양 기회를 얻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정세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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