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 김경철씨의 딸 혜정(27·가운데)씨가 할머니 이금단(75)씨, 남자친구 유화성씨와 함께 17일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의 아버지 묘 앞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광주/김진수 기자 jsk@hani.co.kr
|
27년전 젖먹이 김혜정씨가 “아빠 저 결혼해요”
“언제나 제 마음 속에 계신 아빠, 사랑합니다”
“아빠, 저 혜정이예요. 가을에 결혼해요. 동갑내기 남자친구를 엄마에게 소개했어요. 인테리어를 전공한 남자친구도 엄마라고 부르며 잘해요. 남자친구와 함께 5·18민주묘지에 가서 아빠에게 인사드린 것 아시죠? 아빠, 그런데 걱정이예요. 엄마와 떨어져 살 것을 생각하니…. 그래도 염려마세요. 엄마 가까운 곳에 집을 얻어 자주 들를께요. 아빠, 언제나 아빠는 제 마음 속에 계실거라 생각해요. 하늘나라에서 항상 우리를 보살펴주시고 지켜봐주세요. 사랑해요.”
공수대원 몽둥이에 비명 횡사
청각장애인 김경철씨는 1980년 5월18일 딸 백일잔치를 했다. 김씨의 당시 나이는 29살. 세살 때 뇌막염을 앓고 소리를 잃어버린 그는 일류 제화 기술자로 같은 처지의 부인을 만나 결혼했다. 그는 이날 광주 금남로의 한 식당에서 친구들과 점심식사를 하고 집으로 가던 길에 공수부대원들을 만났다. 김씨는 장애인 신분증을 제시했다. 그러나 공수부대원들은 이유없이 그를 마구 두들겨 팼다. 정신을 잃은 그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19일 끝내 세상을 떴다. 광주의 첫 희생자였다.
당시 백일 잔치상을 받았던 젖먹이 딸 혜정(27)씨가 17일 아빠에게 ‘결혼을 알리는 편지’를 썼다. 혜정씨 어머니는 남편이 숨진 것에 충격을 받아 이듬해 집을 나갔다. 혜정씨는 할머니 이금단(75)씨의 품에서 자랐다. 지금도 할머니를 ‘엄마’라고 부른다.
할머니와 떨어져 사는게 걱정
“전 할머니가 엄마인줄만 알았어요. 친구들이 ‘니 엄마는 늙었다’고 놀려도 무덤덤했어요. 그런데 초등학교 5, 6학년땐가 ‘내가 니 할무니(할머니)다’고 해 깜짝 놀랐어요. 전 할머니라고 부르기 싫다며 엉엉 울었어요. 내가 우니까 할머니도 울고…. 그때 할머니가 ‘니 부르고 자운대로(싶은대로) 해라 잉~’ 하셨어요.”
“아빠, 제 어렸을 적 꿈은 가수였어요. 5월이면 데모하러 가는 엄마를 많이 따라다녔어요. 엄마 말씀이 그땐 오른손을 쭉쭉 뻗으며 〈5월의 노래〉를 그렇게도 잘 불렀대요. 엄마가 정성껏 모은 돈으로 피아노를 사주셨는데 열심히 배우지 못한 게 후회돼요. 10여년 전쯤 진짜 엄마를 처음 만났는데 그냥 울면서 집밖으로 달려나가 버렸어요. 그 무렵엔 저 혼자만 남겨두고 떠난 부모님이 야속하기만 했거든요.”
“전 대학에 진학해 컴퓨터를 공부했어요. 엄마가 정성으로 보살펴준 덕분이예요. 학교를 졸업하고 전남 완도의 농협에 취직했는데, 엄마가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어요. 1년 정도 근무하다가 3년 전 광주의 큰 회사로 옮겼어요. 임원 부속실에서 맡은 일을 열심히 하고 있어요. 요즘 엄마도 제가 열심히 사니까 얼굴에 웃음을 보이세요. 세월이 약이라는 말이 맞는가 봐요.” 광주/정대하 기자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