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철 / 기획위원·변호사
|
김용철의 밥&법
얼마 전 지방에 문상하러 갔는데 한밤중에 노래연습장을 경영하는 지인한테서 다급한 목소리의 전화를 받았다. “어떤 술 취한 남자가 갑자기 들어와 다짜고짜 소방시설을 점검한다더니, 화재 비상벨을 누르지 뭐예요. 전기가 끊기고 경보가 울리는 바람에 노래하면서 놀던 손님들이 대피하느라 아수라장이 됐어요. 어떻게 해야죠?” “공무원증부터 보여달라고 해요.” “횡설수설하면서 안 보여주는데요.” “그럼 업무방해와 공무원 자격 사칭의 현행범인으로 체포해 버려요.” “네? 제가 체포하라고요?” “먼저 범죄사실과 진술거부권, 변호인 선임권을 알려주고 노끈으로 손목을 묶은 다음 112에 신고하면 돼요.” 그런데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은 “소방경찰도 동료인데 어떻게 인수하겠느냐”며 난색을 나타냈단다. 얼마 뒤 도착한 관할 소방서장은 “부임한 지 얼마 안 돼 앞으로 2년간 근무할 텐데 최선을 다하겠으니 부하 직원의 실수를 용서해 달라”고 애원했다고 한다. 문제의 남자는 실제로 소방공무원 신분인 모양이나, 정당한 공무집행이 아니니 범죄가 성립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어쨌든 상관의 애원으로 불문에 부치기로 했다는데, 체포된 현행범인의 인수를 거부한 출동 경찰관도 직무유기의 현행범인으로 체포 대상이 된다.우리 형사소송법은 현행범인은 누구든지 체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수사기관이 아닌 사인에 의한 현행범인 체포는 로마시대 이래 현대 대부분의 문명국가에서 인정되고 있다. 범행 중이거나 실행 직후인 경우 외에도 범인으로 불리며 쫓기는 사람, 피묻은 흉기를 갖고 있거나 옷에 많은 피가 묻어 있어 범행의 흔적이 뚜렷한 사람, 경찰관이 “누구냐”고 묻는데 도망하려 한 사람 등도 현행범인으로 간주된다. 그렇지만, 현행범인을 체포하려면 어느 정도 필요한 실력행사를 해야 하는데 그 와중에 누군가 다치기라도 하면 시비가 될 것이 분명하다. 또 범행 실행 또는 직후의 목격자이며 체포마저 한 사람이니 당연히 참고인으로 수사기관에 나가 진술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피할 길이 없다. 현행범인 체포는 범죄의 명백성과 체포의 긴급성 때문에 영장주의의 예외로서 시민에게 인정된 권리이지 의무사항은 아니니 온 국민이 범인 체포에 나설 필요는 없을 것이다. 또 이는 ‘체포’의 권리일 뿐이므로 이후 ‘응징’까지 자임해선 결코 안 될 일이다. 맞고 온 아들의 복수를 한다며 분연히 손수 나서 엉뚱한 사람을 끌고 가 때려 폭력사범으로 처벌받게 된, 처절하고 아름다운 부성애를 그린 드라마가 내내 화제가 되고 있다. 결코 아니리라 믿고 싶지만 혹시라도 국가의 사법체제를 무시하거나 경시할 뜻이었다면 정말 심각한 일이다. 또 그는 화려한 경력을 가진 사내 변호사를 참모로 둬 조언을 받고 나라에서 제일이라는 법률회사의 변호사들을 고용했다고 한다. 그런데 왜 계속 범행을 부인하다가 구속영장 실질심사에 이르러서야 폭력 현장인 산에까지 갔었다고 뒤늦게 잘못을 인정해 회사 코앞에 있는 경찰서 유치장에 구금되는 불행을 초래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 법률가들이 범행 뒤 죄를 인정하고 잘못을 뉘우치는 일이 중요하게 고려된다는 걸 모른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면 혹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 세상 사람들의 눈을 어둡게 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것은 아닌지. 만일 그렇다면 그들이야말로 달을 보라는데 가리키는 손가락만 바라본 사람들이다.기획위원·변호사 kyc0327@hani.co.kr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