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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원 전 서울 남대문경찰서 수사과장이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 수사에서 상부의 외압이 있었다고 말한 사실이 알려진 24일 남대문경찰서 들머리에 세워진 민원인 안내판 곁으로 한 경찰관이 곧은 자세로 서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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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 만난 강과장, 수사라인 유지도 석연찮아
강대원 전 남대문경찰서 수사과장이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을 덮는 대가로 한화 쪽으로부터 ‘검은 돈’ 제의를 받았다고 밝히면서, 한화 쪽에서 사건 초기부터 경찰 윗선에까지 사건 무마를 시도했을 것이라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남대문경찰서가 사건이 일어난 3월9일부터 곧바로 ‘조사’에 나섰으나 결과물이 없다가 결국 17일 만에 광역수사대가 첩보보고를 하고, 이를 다시 남대문서가 광수대와 함께 수사한 것도 강 전 과장이 말한 ‘외압’과 관련해 주목되는 부분이다.
사건 초기부터 외압?=보복폭행 사건이 일어난 지난 3월9일 새벽, 경찰 112신고센터는 신고 내용을 관할 태평로지구대와 남대문경찰서 지령실에 무선으로 전달한 뒤, 경찰 전용회선으로 남대문서 상황실에 자세한 내용을 또 다시 전달했다. 남승기 광역수사대장은 24일 “남대문서는 서울경찰청에서 첩보가 내려가기 전부터 우리보다 더 많이 알고 있었을 것이다. 112지령을 받고 출동했다면 현장처리를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처리가 안됐더라도 이 정도 사건이면 바로 다음날 남대문서에서 조사에 들어갔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실제 폭행 피해자인 서울 북창동 ㅅ클럽 종업원들은 “태평로지구대 쪽에서 이튿날 신고자를 통해 사건 내용을 자세히 조사했다”고 말했다. ‘남대문서가 사건 다음날부터 조사에 나섰다’는 경찰 관계자의 말은 이런 말과 사실에 들어맞는다.
그러나 장희곤 남대문경찰서장은 “사건을 보고받지 못했고, 수사 계획도 없었다”며 “나중에 사건 초기 여러 형사들이 확인을 위해 북창동에 다녔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남대문서 형사들도 있었는지는 모른다”고 말했다.
사건 누가 넘겼나?=경찰청 관계자는 “남대문경찰서와 광역수사대는 사건 이첩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남 대장은 “사건 초기 이 사건 첩보를 작성한 오영승 반장으로부터 내용을 보고받고 ‘재벌 회장이 그런 행동을 했다는 게 믿기지 않으니 다시 잘 알아보라’고 구두 지시했다”고 말했다. 이어 “서울경찰청 쪽에서 첩보를 올리라는 지시도 없었으며, 우리가 알아서 첩보를 올렸다”고 말했다.
이름 밝히기를 꺼린 광역수사대 관계자는 “첩보를 작성한 사람의 수사 의지가 있으면 대부분 수사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광역수사대 관계자는 “같은 사건을 둘이 함께 인지했더라도, 한쪽이 더 수사를 잘 해놨다면 그쪽으로 이첩시키는 경우가 있다”면서도 “이번 사건은 높은 사람 쪽에서 (이첩 결정을) 잘못한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규정상 이첩 결정권자는 한기민 서울경찰청 형사과장이다. 한 과장은 이첩 경위에 대해 “감찰 중이라 말할 처지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강 과장 수사라인 유지 왜?=서울경찰청과 남대문경찰서는 강대원 전 남대문경찰서 수사과장이 보복폭행 사건 핵심 관계자인 조직폭력배 오아무개(54)씨를 만난 사실을 지난 7일께부터 알고 있었다. 장 서장은 “당시 강 과장이 오씨를 만났다는 사실을 보고받고 놀라서, 김학배 서울경찰청 수사부장에게 ‘우리가 정보원으로 쓰던 사람인데 강 과장 등을 만난 적이 있다’고 보고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사실을 보고받은 서울경찰청은 그로부터 2주가 지난 22일 언론이 취재에 들어가자 “의혹이 있는 강 과장을 수사선상에 둘 수 없다”며 뒤늦게 대기발령 조처했다. 강 과장은 사건이 남대문경찰서로 이첩된 지난 3월28일부터 수사를 맡았으며, 지난달 27일 남대문경찰서와 광역수사대, 서울경찰청 인원들로 수사팀이 다시 꾸려진 뒤에도 관련 수사를 총괄하는 역할을 해왔다. 경찰 수뇌부가 그 동안 강 과장을 수사팀에 그대로 둔 이유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김남일 최원형 노현웅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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