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5.25 21:19
수정 : 2007.05.25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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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문 전 경찰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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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현 한화그룹 회장 보복폭행 사건 수사에 대한 경찰청의 감찰조사 결과는 올해 초 한화그룹 고문으로 영입된 최기문(55) 전 경찰청장이 사실상 한화 쪽의 ‘핵심 로비스트’였음을 여실히 드러냈다. 최 전 청장은 김 회장이 서울 북창동 ㅅ클럽 종업원들을 폭행한 지 나흘이 지난 3월12일 홍영기 서울경찰청장에게 “저녁을 먹자”고 제안했다. 같은날 고교 후배인 장희곤 남대문경찰서장에게도 전화를 걸어 수사 여부를 문의했다. 또 이튿날 홍 청장과 통화를 하고, 이틀 뒤인 15일 서울 강남의 일식집에서 홍 청장과 일선 경찰서장 등 5명과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홍 청장은 김 회장 사건과 관련해 최 전 청장과 논의한 적이 없다고 감찰에 밝혔다.
하지만 최 전 청장과 식사를 함께 한 15일 홍 청장이 한기민 형사과장에게 “한화 회장이 룸살롱에서 종업원을 때렸다는데 그런 내용을 알고 있느냐”고 물어본 것으로 확인됐다. 홍 청장이 이 사건을 누군가로부터 들었음을 뜻한다.
최 전 청장은 한 과장에게도 직접 두차례 전화해 “사건이 접수되면 잘 처리해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대해 한 과장은 “내 권한 밖이니 서울경찰청 수사부장이나 서울경찰청장에게 전화하라. 폭력사건은 피해자와 빨리 합의하는 것이 우선이며, 남대문경찰서와 빨리 협조해 처리하라”고 답변했다는 게 감찰조사 결과다.
한마디로 경찰 총수를 지낸 최 전 청장이 재벌기업 고문으로 영입된 뒤 재벌 총수에 대한 경찰 수사를 무마하려 후배 경찰 간부들을 상대로 전방위 청탁을 한 것이다.
최 전 청장은 서울경찰청 정보관리부장, 경찰청 기획정보심의관 등 경찰 정보 분야를 두루 거쳤고, 2003년 노무현 정부의 첫 경찰청장으로 임명됐다. 최 전 청장은 지난해 <경찰의 길을 묻는다(험블리스 오블리주)>라는 제목의 책을 내기도 했다. 그는 “다만 몇㎝만이라도 우리 경찰을 진전시키자”는 생각에 책을 냈다고 밝혔지만, 김 회장을 위해 후배들에게 로비를 벌인 그의 행적은 경찰을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최 전 청장은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뒤로 집에도 잘 나타나지 않는 등 언론 접촉을 극도로 피하고 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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