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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5.26 17:13 수정 : 2007.05.26 17:13

조정래 ‘허풍 만연한 사회의 사표였던 분’
각계 인사들 피천득 타계 애도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된 수필가 피천득 서울대 명예교수의 빈소에는 26일 오전부터 선생을 기리는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차분한 분위기의 빈소에는 해맑게 웃고 있는 고인의 생전 모습을 담은 영정과 남기고 간 수필집 '인연', 시집 '생명', 번역시집 '내가 사랑하는 시' 등으로 구성된 전집이 놓였다.

가톨릭 신자였던 고인의 영정 바로 아래에는 "주님 그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별을 그에게 비추소서"라는 문구와 '프란치스코'라는 세례명이 적힌 위패도 마련됐다.

오전 일찍 빈소를 찾은 김재순 샘터 고문은 "피 선생은 한 번도 시간 약속을 어긴 적이 없을 정도로 자기 자신에게 철저한 사람이었다"며 "문학 뿐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우리 사회에 커다란 업적을 남기고 갔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부인 김초혜씨와 함께 빈소를 찾은 소설가 조정래씨는 "정말 깨끗하고 고결하게 한 평생을 살다 가신 분"이라고 애도했다.

조씨는 "피 선생님은 부자로 사는 것 보다 과장되지 않고 남을 속이지 않으면서도 약간 모자라게 사는 것을 원했고 실천했던 분"이라며 "허풍과 거짓이 만연한 사회 속에서 사표와 같은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또 "글을 쓰는 문인이라면 절대로 이전보다 못한 작품을 내지 않아야한다는 것을 철칙으로 삼았고 절필로서 실천했던 분"이라며 "그럼에도 그가 펴낸 단 한 권의 수필집에는 훌륭하지 않은 작품이 없다"고 덧붙였다.

김초혜씨는 오래 전 고인의 자택 거실 벽에 걸려있었다는 "오동은 천년 살아도 가락을 잃지 않고, 매화는 평생 추위에 떨어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내용의 시구절을 떠올렸다.


김씨는 "고인은 집안에 소파도 없이 밥상 하나만 놓고 생활해왔을 정도로 지극히 검소한 삶을 살았다"고 회고했다.

김재순 고문과 조정래씨는 29일 오전 서울아산병원에서 열리는 장례미사에서 대표 조사를 낭독한다.

이준삼 기자 jslee@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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