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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에버랜드 항소심 판결에 따른 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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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항소심 판결
이회장 수사·지배구조 변화 ‘분수령’
“구조본 개입” 추가증언 잇따라 주목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 사건의 항소심 선고가 29일 내려진다. 에버랜드가 1996년 12월 전환사채를 이재용씨에게 배정한 지 약 11년, 2000년 6월 법학교수 43명이 이건희 회장 등을 고발한 지 7년, 항소심 재판이 시작된 지 1년6개월 만이다. 재판부가 1심과 마찬가지로 에버랜드의 전·현직 대표이사들에게 유죄를 선고하면, 이 회장 일가와 삼성그룹은 큰 상처를 입을 것으로 보인다. 경우에 따라서는 검찰이 이 회장에 대한 수사를 재개할 수도 있다.
그룹 차원의 공모 여부가 쟁점=검찰과 변호인단은 1·2심 내내 에버랜드의 이사들이 재용씨한테 삼성의 지배권을 넘겨주기 위해 전환사채를 헐값에 발행했는지와, 다른 주주들도 이를 도왔는지, 전환사채의 적정 전환가격은 얼마인지를 놓고 공방을 벌였다. 에버랜드는 전환사채를 발행할 때 주식전환 기준가격을 장외시장 시세보다 10분의 1도 안 되게 정했고, 당시 에버랜드 대주주였던 삼성 계열사들은 무더기로 전환사채 인수권리를 포기하면서, 결국 재용씨에게 헐값으로 전환사채가 배정될 수 있게 했다. 이로 인해 재용씨는 일약 에버랜드의 최대 주주가 됐다.
변호인단은 “에버랜드 주식이 비상장이어서 전환사채를 헐값에 발행했다는 증거가 없고, 설령 싼값에 발행했더라도 피고인들이 회사에 손해를 끼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2005년 10월 허태학, 박노빈 전·현직 사장의 배임 혐의를 인정해 유죄를 선고했다. 특히,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전환사채를 주주 우선배정 형식을 가장해 재용씨 등에게 지배권을 전환할 목적으로 제3자 배정 방식으로 넘긴 것으로 보인다”고 밝혀,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인수가 그룹 차원의 공모로 이뤄졌음을 인정했다.
항소심에서 변호인단은 그룹 차원의 공모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다. 변호인단은 그룹 차원의 공모에 대한 공소사실이 명확하게 기재돼 있지 않다며 검찰을 공격했다. 재판부도 공소장 변경을 검찰에 요청했으나 검찰은 이를 거부했다.
수사대상 확대될까?=항소심에서 1심 판결의 취지가 인정된다면 검찰 수사 대상은 이 회장을 포함한 삼성그룹 핵심 경영진들로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전환사채 발행 당시 그룹의 사령탑은 회장 비서실이며, 실장은 현명관 전 전경련 부회장이다. 현 전략기획실(옛 구조조정본부) 실장인 이학수 부회장과 차장 김인주 사장도, 당시 회장 일가의 재산을 관리하는 비서실 재무라인의 핵심 당사자들이어서 수사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
이와 관련해 이름 밝히지 말 것을 요구한 삼성의 전직 고위임원은 “90년대 말 삼성이 한창 ‘그룹 지배권 승계작업’을 벌일 당시, 이 회장의 가족회의에서 ‘(재용이가) 나중에 괜찮겠느냐’는 말이 나왔다는 것을 전해 들었다”며 “그룹 지배권이 걸린 일을 이 회장 가족이나 그룹의 사령탑인 비서실에서 몰랐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는 이 부회장이 2000년 말 내부회의에서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을 구조본(당시 비서실)이 주도했음을 사실상 인정했다는 증언과 함께, 삼성의 핵심부가 지배권의 세습 작업에 깊숙하게 관여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재판 이후의 파장 및 전망=재판부가 1심과 마찬가지 논리로 유죄를 선고한다면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 과정의 법적 부당성이 인정돼, 이 회장의 삼성 지배체제와 이를 외아들 재용씨로 승계할 수 있는 핵심고리가 약해질 수밖에 없다. 재용씨가 애버랜드의 최대 주주가 된 뒤 에버랜드는 삼성생명 주식 확보에 들어가 이재용→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항소심의 판결에 관계없이 최종 판결은 대법원까지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 헐값 발행과 그룹 차원의 공모 여부를 둘러싸고 검찰과 삼성 쪽은 서로 양보할 수 없는 공방을 벌이고 있다. 곽정수 대기업전문기자, 고나무 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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