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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5.28 19:25 수정 : 2007.05.28 19:25

결혼 10년차 이상 부부들의 ‘쑥스런 사랑고백’

결혼 10년차 이상 부부들의 ‘쑥스런 사랑고백’

삶의 동반자 돼줘서 고맙고 사랑한다 한적없어 미안하고…
드르렁 코고는 소리마저 익숙해지는게 사랑 같아요

38년 만에 다시 입어 본 하얀 웨딩드레스. 남편 방창석(64)씨의 손을 잡고 사뿐사뿐 행진하는 ‘미스 강’ 순금(60)씨의 얼굴에 웃음꽃이 만발한다. 세월이 흘러 새색시의 눈가에는 주름이 가득하고 당시 주례사처럼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된 지 오래지만, 설레는 마음만은 그대로다. “하루 두 차례씩 집안일을 돕겠습니다. 결혼기념일에 같이 여행을 가겠습니다. 대화를 자주 하겠습니다.” 방씨는 우렁찬 목소리로 ‘결혼 공약’을 발표했다.

서울 송파구청이 올해 제정된 부부의 날(21일)을 기념해 28일 결혼 10년 이상 된 부부 21쌍을 송파건강가정지원센터 강당으로 초대해 연 ‘매니페스토 리(Re) 프러포즈’ 행사. 가장 가까운 삶의 동반자이면서도 “사랑한다”는 말은커녕, 대화를 나눌 시간도 갖지 못한 채 살아가는 부부들에게 맘껏 애정 공세를 펼 기회를 준 자리였다.

‘미스 강’의 신청으로 어쩔 수 없이 끌려나온 고지식한 방씨도 38년 전 스물여섯 청년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농산물 유통사업으로 매일 새벽일을 나가야 했는데, 집사람은 항상 나보다 일찍 일어나 우유에 꿀을 타서 줬어요. 빈속에 나가면 힘들까봐….” 그럼에도 “고맙다, 사랑한다”는 말은 목구멍에서만 맴돌 뿐, 충청도 사내는 한 번도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다. 방씨의 침묵은 이내 습관이 되어버렸고, ‘미스 강’의 마음은 섭섭함으로 가득 찼다. 이제야 방씨는 “그동안 고맙다는 말을 못해서 미안해”라며 강씨의 볼에 어색한 뽀뽀를 했다. 강씨의 얼굴은 활짝 핀 해바라기가 된다.

결혼서약을 되새기고 새 마음으로 다시 청혼하는 ‘매니페스토 리프러포즈’ 행사가 열린 28일 오전 서울 송파구 아이코리아 다목적홀에서 서약식을 마친 부부들이 볼에 입맞추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1980년 5월18일, 광주민주항쟁으로 온 나라가 뒤숭숭했던 때 결혼한 정문수(57)·이기순(52)씨 부부는 당시 결혼식을 떠올리면 아직도 아찔하다. “일요일이고, 비까지 왔어요. 모든 집회가 금지됐는데, 결혼식도 사람이 모이는 거니까 금지될 뻔했죠. 동사무소에 신고하고 결혼을 했어요. 하객이 예상보다 반도 안 왔습니다.” 정씨 부부는 고속버스를 타고 경주로 신혼여행을 가면서도 ‘폭도’, ‘계엄’ 등의 살벌한 뉴스 때문에 불안에 떨어야 했다고 한다. 벌써 27년이 흘렀다. 정씨가 부인 이씨의 손을 가만히 잡는다.

“항상 옆에 있어주는 것이 아닐까요?”(일본인 여성과 결혼한 권병대씨) “표현하는 겁니다.”(강순금씨) “약속을 지키는 거죠.”(주례를 맡은 강지원 변호사) “쩝쩝거리며 먹는 소리, 드르렁 코 고는 소리마저 익숙해지고, 감사해지는 것이 부부 사이의 사랑인 것 같아요.”(축하곡 부른 가수 ‘부부’)

10년 이상 살과 정을 맞비비며 살아온 사람들이 말하는 사랑이다.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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