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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6.04 20:41 수정 : 2007.06.04 20:41

고려대학교 박물관 기록자료실 김상덕(41·왼쪽 두번째) 과장과 연구원들이 4일 자료실에서 지금까지 모아온 1985~87년 당시 학생운동 관련 유인물들을 들어 보이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고려대 박물관, 민주화운동 자료 3천여점 보관
“민주주의 위한 싸움의 기록 없어진다면 큰 손실”

‘연세대 학우, 최루탄에 맞아 절명위기!’ ‘불심검문·연행을 떳떳이 거부하고, 연행 시에는 묵비권 행사와 함께 단식에 들어간다.’

양 귀퉁이에 유리테이프가 붙은 채 아직도 날이 선 대자보. 등사로 밀어 인쇄된 희미한 글씨의 유인물. 떨리는 손을 붙들고 숨죽이며 남몰래 써야 했던, 달리는 버스 지붕 위에 몰래 올려져 바람을 타고 전해지던 ‘민주주의’의 산 증언. 87년 6월항쟁 20돌, ‘불온했던 과거’가 고려대 박물관에서 살아나고 있다.

이곳 기록자료실에는 1970년대 말부터 90년대까지 학생 민주화운동을 증거하는 자료 3천여점이 보관돼 있다. 13년 넘게 이어진 수집의 결과다. 이 대학 역사교육과 84학번인 김상덕(41) 기록자료실 과장의 ‘민주주의를 기억하려는 고집’이 그 밑절미(일의 바탕)를 채웠다. 김 과장은 “80년대 한국의 민주화운동은 세계사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며 “민주주의를 위한 싸움의 기록들이 없어진다면 큰 손실”이라고 말했다.

기록된 역사보다 그 뒤에 숨은 ‘비공식 자료’가 시대를 더 잘 보여줄 때가 있다. 그래서 김 과장은 “당시를 보여주는 현장성의 힘”을 믿는다. 기록실 한편에서 4일 그가 펼쳐 든, “안보논리 강요하는 전방입소 반대한다”라고 스프레이로 뿌려 쓴 펼침막은 백마디 말보다 강했다. 기록실 막내인 김선미(23)씨는 “내가 두 살 때 자료네요. 딴 나라 얘기 같아서 실감이 안 나요”라고 말했다.

비공식 자료들은 우연히 발견되는 경우가 잦다. 김 과장은 “자료를 찾아 학교를 헤매다가 학생처 캐비닛에서 80년대 학생운동 문건, 대자보 등을 상자째로 발견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당시 학생운동 ‘감시’는 학생처의 ‘고유 업무’였다. 학생처 캐비닛에서 나온 자료는 수거 장소와 날짜까지 꼼꼼하게 기록된 ‘보물’이었다.

개인들의 기록에서도 시대의 숨결을 읽을 수 있다. 이문영 고려대 명예교수가 기증한 일기 87년 6월11일치에는 “연대병원에 이한열군의 병을 물어 전화를 건다. 불통이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87년 6월18일 열린 최루탄 추방대회를 알리는 등사 유인물에는 피흘리는 이한열의 걸개그림 축소판이 남아 있다.

김 과장이 채워가는 미시적 역사의 재구성은 진행형이다. 기록자료실 식구 9명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자료집부터 총학생회 선거자료, 행사 포스터 등을 일일이 수집한다. 김유만(30) 연구원은 “요즘 대자보에는 ‘안습’, ‘낚였다’ 등 인터넷 용어가 나온다”고 말했다. 이 자료들도 20년 뒤에는 2007년 오늘을 읽어내는 또 하나의 문법을 제공할 것이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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