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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시철도공사 소속의 한 역의 매점에서 상인이 물건을 팔고 있다. (사진 이정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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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역내 편의점 유치”공고에 승강장내 영세상인 ‘눈물’
서울시 도시철도공사가 지하철 5·6·7·8호선 역내에 편의점을 설치하기로 해 기초생활수급대상자인 기존 상인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도시철도공사는 지난달 18일 ‘역 구내 편의점 운영사업자 선정 현장입찰’ 공고를 냈다. 공사는 올 9월부터 141개 역 가운데 138개 역에 편의점을 설치·운영할 방침이다. 편의점이 들어오면 기존의 승강장내 매점과 파는 물품이 겹친다. 기존의 구내매점 상인들은 ‘서울시 공공시설 내의 신문·복권판매대, 매점 및 식음료용 자동판매기 설치 계약 조례’에 의해 혜택을 받던 저소득층이다. 조례는 지하철 역내에서 해당 시설을 운영할 수 있는 자격을 기초생활수급대상자이면서, 장애인(1~2급), 65살 이상, 모·부자가정, 독립유공자 가정으로 한정했다. 공사의 지하철 역사내 편의점 설치에 대해 상인들은 그렇지 않아도 무가지 등으로 피해를 입고 있는데 ‘우는 아이 뺨 때리는 격’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올해만 해도 14개의 매점이 영업이 안돼 문을 닫았다. 지하철 8호선의 한 역에서 매점을 운영하고 있는 김 아무개씨(50·여·지체장애 2급)는 “어려운 사람 도와준다고 하면서 공사가 한쪽으로는 편의점을 설치하느냐”며 “눈가리고 아웅이라는 말이 딱 맞다”고 말했다. 장애인 단체의 반발도 거세다. 사실상 3년 단위로 계약이 갱신되는 상태에서 장애인들은 잠재적 혜택 대상자이기 때문이다. 현재 운영중인 도시철도공사 내 매점 91개 가운데 36개를 장애인들이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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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 매점에서 팔고 있는 품목들. 편의점이 들어설 경우 많은 품목들이 겹칠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 이정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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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설치 입찰공고가 나가자 장애인 단체들은 지난 4일 도시철도공사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한국지체장애인협회 양태경 부협회장은 “만약 편의점 설치가 된다면 지하철내 상인들은 전멸이다”며 “공사쪽에 계획 전면백지화를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도시철도공사쪽은 수익 차원에서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공사 시설관리팀 김일환 팀장은 “한 해 적자가 2500억에 이르는 공사 입장에서 편의점 유치는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판매하는 물품이 겹치지 않게 해 기존 상인 피해를 최소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 팀장은 “다른 수익사업도 있는데 왜 하필 편의점이냐”는 질문에는 “동네에 가게가 하나만 있느냐”고 되물었다. 기존 상인들의 반발을 사는 가운데 도시철도공사는 소송까지 당했다. 편의점 지에스25를 운영하는 지에스리테일은 지난 2일 서울 동부지방법원에 도시철도공사를 상대로 우선협상대상자 지위 확인과 재공모 추진 금지 등에 대해 가처분신청을 냈다. 지에스리테일은 2006년 도시철도공사가 역내시설 임대 사용권을 민간에게 넘기는 ‘에스비즈사업’의 업체로 선정되었으나 특혜 의혹이 일자 공사가 사업 자체를 취소해 사업이 백지화된 바 있다.
지하철 매점 통폐합…오히려 매상 줄고 환경 나빠져 편의점이 생긴다는 소식에 상인들은 불만을 토로하고 있지만, 발단은 지난해부터 시작됐다. 공사쪽은 지난해 10월부터 ‘상인들의 영업환경 개선’이라는 이름으로 기존 복권·신문·매점으로 나뉘어져 있던 시설들을 하나로 통합했다. 당시에는 상인들이 모두 반겼다. 수익이 늘어날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었다. 하지만 3개의 시설을 통합하면서 매점의 위치가 대합실에서 신문판매대가 있던 지하철 승강장으로 옮겨졌다. 장소가 옮겨진 후 매상이 오히려 떨어졌다는 것이 상인들의 주장이다. 일단 상행선과 하행선 두 곳 중 한 곳에만 매점이 있기 때문에 승객이 그만큼 분산된다는 것이다. 매상 문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하철 승강장으로 내려간 뒤 목의 통증, 소음 등에 시달리고 있어 환경 개선이 아닌 환경 개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매점 상인 김씨를 취재하는 1시간여 동안 지하철 소음 때문에 말소리가 들리지 않아 대화가 끊기는 것이 일쑤였고, 목이 칼칼해졌다. 이런 곳에서 하루에 14~15시간(보통 7시부터 밤 10시까지 매점을 운영한다) 앉아 있게 만드는 것이 결코 ‘상인들의 영업환경 개선’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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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호선 한 역에 비어있는 매점. 영업을 안돼 계약을 취소한 매점이 올해만 14곳이다. (사진 이정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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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승강장으로 내려온 뒤 화장실도 제대로 가기가 힘들다”며 “잘 때 지하철이 들어오는 환청까지 들린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김씨는 화장실을 갈 때 지하철 공익요원에게 음료수 하나 주며 잠깐 봐달라고 한 후 다녀오고 있었고, 도시락으로 점심·저녁 두 끼를 해결하고 있었다. 왜 하필 편의점?…백지화된 에스비즈사업 ‘무늬만 바꿔’ 재추진 의혹 도시철도공사가 수많은 수익사업을 두고 왜 하필 편의점 사업을 선정했을까? 양태경 회장은 “얼마든지 다른 특화사업을 통해 수익을 늘려나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편의점을 고집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공사쪽이 내건 입찰 자격은 현재 국내 100곳 이상의 직영 및 위탁운영(순수가맹점 제외)하는 편의점 사업 운영자다. 조건에 해당하는 곳은 지에스25, 패밀리마트, 세븐일레븐, 미니스톱, 바이더웨이뿐이다. 전부 국내 대기업들이 참여한 유통회사들이다. 이 때문에 상인들은 지난해 10월 기존 판매시설을 통합하여 승강장으로 옮긴 것이 대기업 편의점 유치를 마련하기 위한 ‘계획된 수순’ 아니냐는 의혹을 보내고 있다. 실제로 공사의 ‘편의점 설치 예정현황’ 자료를 보면 들어설 138개의 편의점은 대합실에 위치하게 된다. 서울지체장애인협회 중랑지구회 최종현 부회장은 “사실상 상인들을 대합실에서 내몰기 위한 공사쪽의 계획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공사 쪽에서 “편의점을 신사업으로 결정한 이유가 무엇이냐”에 대한 대답을 듣기란 쉽지 않았다. 사업안을 기획한 신사업단장은 5일, 휴가를 낸 상태였고, 여기저기 전화를 하는 부서마다 다른 부서로 전화를 돌리기 바빴다. 겨우 익명을 요구한 한 직원과 통화를 할 수 있었다. 그는 “편의점은 2006년 백지화됐던 에스비즈사업에 포함되어 있던 계획 중 하나였다”고 털어놨다. 사실상 도시철도공사가 이미 백지화된 에스비즈사업을 형태만 달리한 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이 담당자는 “편의점은 공사가 앞으로 추진할 물류사업과 온라인 사업의 기반시설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것말고도 공사 내부사정상 말 못할 이유가 있다”며 편의점 사업 추진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음을 밝혔다. 적자를 줄여 수익을 내려는 공사쪽의 경영 전략이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그 수익 창출의 수단이 문제다. 법률로 보호를 받고 있는 저소득층 상인들의 쥐꼬리만한 생계수단을 위협해가면서, 대기업의 편의점 사업에 힘을 보태주고 수익을 보전하려는 도시철도공사의 ‘사업계획’이 지나친 ‘꼼수’로 보인다. 글·사진〈한겨레〉온라인뉴스팀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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