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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도 공동묘지에서 진행된 유골 봉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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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고향을 그리워하며 중국 대륙을 동서로 부유하며 한많은 생을 살았던 박의준씨.
“내가 죽으면 화장해서 뼛가루를 압록강에 뿌려라. 그러면 언젠가 내고향 황도항에 도착하리라”고 유언을 한 박씨는 사망한지 12년만에 한 노교수의 지극한 정성과 집념으로 고향땅에 묻혔다.
서해 바다가 시원하게 보이는 충남 태안군 안면읍 황도리.
지난 8일 오후 조그만 어촌마을인 황도의 공동묘지에서는 ‘백년만의 귀향’으로 불리는 고 박의준(1910~1995)씨의 유골 봉환식이 열렸다.
아버지의 유골함을 가슴에 안고 한국에 온 아들 박생(36·중국명 푸부츠런)은 아버지의 유골함을 묘지에 넣으며 굵은 눈물을 흘렸다.
고향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무엇이 평생을 외지에서 떠돌며 자신의 출생지였던 한반도를 잊지 못한채 한을 품고 죽게 했을까?
아버지의 뼛가루를 담은 유골함을 10여년째 안방의 장롱에 태극기로 감싸 보관했던 자식들의 안타까움은 이제는 사라졌을까?
지난 10여년간 중국 정부를 상대로 유골 봉환 작업을 벌이며 서해안을 수십차례 답사하며 죽은이의 고향을 찾아 준 신근호 교수(63·영남이공대)는 무엇때문에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중국 동포를 위해 땀을 흘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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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 자녀들이 보관해 온 박씨의 유골함이 태극기에 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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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흘리개 어린아이였던 3살때인 1913년 부모의 손에 이끌려 만주로 갔다가 아홉살에 고아가 됐던 박씨는 만주벌판과 티베트에서 외롭고 거친 삶을 살다가 죽었으나, 자식들에게 항상 고향을 이야기 했다.
자신도 잘 모르는 고향.
그가 기억하는 고향은 ‘바닷가, 사철 쌀밥을 먹을 수 있고, 후딱 집에서 나가 고기를 잡아 올수 있는 곳, 황도항’ 정도였다.
박씨의 자녀들로 부터 10년전 죽은 아버지의 한 맺힌 유언을 들은 신 교수는 안면도 입구의 작은 섬인 황도를 박씨의 고향으로 판단하고, 주민 설득 작업에 들어 갔다고 한다.
주민들은 격렬한 두차례의 회의를 거쳐 지금은 아무런 연고도 없는 박씨의 묏터를 내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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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의 유골 봉환을 위해 지난 10년간 정성을 쏟은 신근호 교수가 추도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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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교수의 절절한 호소가 주효했다.
또 박씨와 동성동본인 밀양 표충사의 주지스님인 청운 스님은 박씨의 애절한 망향가를 듣고 직접 티베트의 라싸로 가서 현지의 거대 사찰한 세라 사원에서 중국 승려들과 함께 박씨에 대한 천도제를 지냈다.
지난 4일 라싸 세라 사원에서 열린 박씨에 대한 천도제에는 티베트 스님 90여명이 참여, 가는이의 영혼을 달랬다.
청운 스님은 이번 유골 봉환식에 써 달라며 2천만원을 희사하기도 했다.
기자가 11년전 베이징 특파원으로 근무하며 티베트 출장갔다가 우연히 만난 박씨의 자녀들은 죽은 아버지의 유골함을 꺼내 보이며 통곡을 했다. 그런 자녀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들으며 기자도 흐르는 눈물을 억제할 수 없었다.
박씨의 유골함이 땅 속에 묻히는 순간, 울컥 눈시울이 뜨거워져 왔다.
박씨의 유골 봉환을 위해 얼굴에 주름이 늘어간 신 교수는 감정을 억누르기 위해 무진 애를 쓰신다.
마을이 생긴 이래 최고로 상대한 장례식을 치른다는 마을 주민들은 이날 만사를 제치고 얼굴 한번 본적 없는 박씨를 위해 장례식에 참가했다.
이제 박씨는 바다가 시원하게 보이는 황도 산비탈에서 휴식을 취하게 됐다.
박씨의 영혼은 얼마나 기쁠까?
박씨가 살아 생전 듣고 싶어 했다는 태평소 가락을 주민들이 들려 준다.
너훌너훌 한마리 나비가 박씨의 묏터 주변을 날아 다닌다.
황도/ 글 사진 이길우 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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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고향땅에 묻히는 유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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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박씨가 만감이 교차하는 감정을 품고 아버지의 영원한 안식처를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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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만의 귀향’이라고 쓰여진 박씨의 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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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환식 참석자들이 박씨의 묘지를 돌며 기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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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환식이 끝난뒤 음식을 주민들이 나눠먹고 있다. 특히 바지락이 듬뿍 들어간 국수맛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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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환식이 끝난뒤 아들 박씨와 신 교수가 기념 촬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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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전 박씨 자녀들과 신교수. 태극기가 그려진 유골함을 든 이가 이번 한국에 온 아들 박씨이고, 왼쪽 끝이 신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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