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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10대 노숙자 / (하) 이들에게 쉼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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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10대 노숙자 / (하) 이들에게 쉼터를
# 17살 경호툭하면 때리는 아버지 앵벌이 끝에 유치장서 만나 부모는 경호(17·가명)가 세 살 때 이혼했다. 이후 아버지 손에 자랐다. 아버지는 공장에서 사고를 당해 손가락 네 개를 잃었다. 한 몸 챙기기도 어려웠던 아버지는 경호를 고아원에 보낼 것도 생각했지만 차마 그러지는 못했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경호는 아버지와 얼굴 볼 시간이 적었다. 경호의 집은 서울이었고 아버지는 지방에 있는 공장에 다녔다. 무슨 일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늘 피곤에 절고 술에 취해 밤늦게야 들어왔다. 집세는 항상 밀려 있었고 아버지는 툭하면 경호를 때렸다. 경호는 학교에서 늘 친구들을 때리고 괴롭혔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가출을 해봤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엔 2년을 놀았다. 중학교에 늦게 들어가서도 친구들을 꼬드겨 학교 수업을 빼먹었다. 출석일수 중 73일을 빠질 정도였다. 무면허로 오토바이를 타다 경찰서에 잡혀가기도 했다. 학교에 다니는 의미도 못 찾고 아버지한테 잔소리 듣고 얻어맞는 것도 지겨워진 경호는 올해 본격적으로 가출을 했다. 거리에서 만만한 아이들을 골라 돈을 빼앗거나 지하도에서 앵벌이를 했다. 돈이 조금 생기면 피시방에 가서 밤을 지냈고, 돈이 많으면 찜질방에서 잤다. 밤 10시 이후에는 미성년자들이 들락거릴 수 없는 곳이지만, 소주를 마시고 들어가면 아무도 잡지 않았다. 돈이 없으면 지하 주차장에서 밤을 지새워야 했다. 밥은 앵벌이한 돈으로 사먹거나 식당에서 사정을 해 얻어먹었다. 그것보다는 편의점에서 사 먹은 컵라면이 더 많았다. 거리에서 오가다 만난 5명이 이렇게 몰려다녔다. 한 달 정도의 거리 생활에 몸도 마음도 지친 경호 일행은 지난 4월 말 청소년쉼터를 찾았다. ‘이제 맘 잡아야지’란 생각이 들었고, 퇴소하면 친한 형과 함께 방 한 칸 얻어 살자고 다짐했다. 무슨 아르바이트를 할까, 희망어린 고민도 했다.
그러나 퇴소를 3주 남겨둔 지난달 말 경호는 경찰에 구속됐다. 거리에서 지내던 시절 친구들과 함께 빈집 물건을 훔친 게 들통난 것이다. 아버지에게도 연락이 갔다. 택시 운전을 하던 아버지는 최근 교통사고로 입원해 있었다. 아버지의 퇴원을 기다린 것은 가출한 아들의 구속 소식이었다. 유치장 면회실에서 오랜만에 아들을 만난 아버지는 계속 울기만 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 19살 혜미
어머니, 무관심·폭력에 가출…우울증 견디며 검정고시 준비 지난 겨울 어느날, 혜미(19·가명)는 친구 정현(19·가명)이와 공원 화장실에서 덜덜 떨고 있었다. 밤을 넘기긴 해야겠는데, 갈 곳도 없고 바깥 날씨는 추웠다. 한달 가량의 거리 생활 끝에 혜미는 청소년 상담전화인 ‘1388전화’에 도움을 청했다. 혜미의 부모는 혜미가 산부인과 신생아실에 있던 일주일 사이 이혼했다. 이후 외가집에서 자라던 혜미가 어머니를 처음 본 것은 아홉 살 때. 그때부터 어머니와 함께 살았지만, 혜미를 가졌을 때 아버지한테 많이 맞았다는 어머니는 그 화풀이를 고스란히 혜미에게 해댔다. “넌 어쩔 수 없이 낳은 거야”라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16시간 동안 쉬지 않고 때린 적도 있다. 혜미가 뇌수막염을 앓아 자리에 누웠을 때는 집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혜미는 ‘이대로 살다가는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5년 전부터 가출을 시작했다. 몇차례 가출과 보육원 생활을 반복하다, 지난해부터는 낮엔 거리를 헤매고 밤엔 친구집에서 잠만 자는 생활을 했다. 이를 못마땅히 여기는 친구 어머니 때문에 결국 지난해말 친구집에서도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한겨울, 본격적인 거리 생활이 시작됐다. 공원 같은 곳에서 밤을 새우고 찜질방이나 피시방에 가기도 했다. 돈이 떨어지면 앵벌이를 하거나 어린 아이들 돈을 빼앗았다. 피시방에서 돈을 내지 못해 경찰서에도 서너 차례 끌려가봤다. 여자 아이들에게 거리는 위험했다. 공원에서 밤을 새우게 되면 온 신경이 곤두섰다. 친구인 정현이와 밤늦게 공원에 앉아 있는데 어떤 아저씨가 다가와 몸을 더듬어 황급히 도망친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집에 들어가겠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들지 않았다. 무엇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지 알기 때문이다. 설사 어머니가 때리지 않고 천사처럼 잘 해주더라도 과거의 일은 결코 지워질 수 없을 것만 같았다. 1388전화를 통해 서울 ㄱ쉼터로 옮겨진 혜미는 정신과 진료에서 정서불안과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6달 가량 쉼터 생활을 한 혜미는 곧 성인이 되고 퇴소도 한 달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퇴소 날짜가 다가올수록 앞으로 무엇을 해야할지 막막한 심정 뿐이다. 검정고시 공부를 시작했다는 혜미는 스스로 다짐하듯 말했다. “검정고시 통과하면 취직은 되지 않겠어요?”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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