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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6.11 14:10 수정 : 2007.06.11 14:10

제21차 남북 장관급 회담에 북쪽 대표로 참가한 권호웅 내각책임참사(가운데)가 29일 오후 숙소인 서울 서대문구 그랜드힐튼호텔에 도착해 이재정 통일부 장관과 웃으며 악수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역사적인 경의선 열차 시범운행이 이루어진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분위기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냉랭하다. 주지하다시피 우리 정부가 2·13 합의 이행과 쌀차관지원을 연계시켜 북한을 압박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미국과의 공동 보조를 중시하는 선택을 내렸다.

진보진영 일각에서는 우리 정부가 미국의 입김에 줏대없이 휘둘렸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그런 시각은 현실을 정확히 직시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 우리 정부의 잘못된 선택을 비판하는 것은 옳지만, 미국의 압력에 떠밀려 쌀 차관지원을 유보하는 결정을 내렸다는 평가는 지나치게 일면적이다.

남북관계를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경제현실을 먼저 살펴야 한다. 작년 북한 핵실험 당시 숱한 비난을 당하면서도 남북경협을 옹호했던 참여정부가 일시적으로나마 대북지원을 유보하게 된 이유가 아이러니하게도 이미 북한 경제에서 남한이 차지하는 비중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 데 있기 때문이다.

폐쇄적인 북한의 정치체제로 말미암아 얻을 수 있는 정보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비교적 신뢰할만한 유엔(UN)통계에 따르면 2004년 현재 북한의 국내총생산(GDP)은 137억 달러로, 최저점을 기록했던 1998년(102억 달러)에 비해서는 어느 정도 호전되었지만 아직도 1990년(168억달러)의 수준을 회복하지 못 하고 있다.


최근 북한을 방문한 의료 전문가들의 증언이 보여주듯 북한의 경제현실은 아직도 열악하기 그지 없다. 북한의 구매력평가기준(PPP) 1인당 GDP는 1,800달러로 세계 최빈국 수준이다.

게다가 작년 북한의 경제성장률은 겨우 1%에 불과했다. 북한의 작은 경제규모를 고려할 때 사실상 제자리 걸음을 한 것이다.

또한 대규모 기아 상태에서 간신히 벗어났다고는 하지만 절대적 식량부족도 여전하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북한의 올해 식량부족분이 51만톤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남한이 지원을 유보한 40만 톤의 쌀을 제외한 수치다.

무역수지 역시 만성적자 상태를 벗어나지 못 하고 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 따르면, 2005년 현재 북한의 무역수지 적자는 100만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지난 2000년 이후로 북한의 무역수지 적자규모는 GDP의 7~9%를 차지할 정도로 심각하다.

이처럼 북한경제의 오늘은 외부지원 없이는 지탱하기 힘든 허약한 상태다. 그리고 이런 북한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두개의 축이 바로 남한과 중국이다. 북한의 대외의존도는 GDP의 25% 정도로 추정된다. 그런데 북한 대외거래의 3분의 2가 남한과 중국에 집중되고 있다.

중국의 영향력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중국은 북한의 가장 가까운 우방으로 석유와 같은 전략물자를 저렴한 '우호가격'에 독점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중국은 북한의 최대 거래 상대국이다. 북한의 대외거래의 39%가 중국과의 거래다. 북한의 암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의 대부분이 중국제라는 사실은 북한 주민들의 실생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크다는 증거다.

그러나 남한의 중요성도 결코 무시할 수 없을만큼 커졌다. 남한과의 거래는 이미 북한 대외거래의 26%를 차지하고 있다. 더욱이 남한은 '북한이 상업적인 거래를 통해 무역 흑자를 실현하는 거의 유일한 국가이며, 이러한 흑자의 규모는 2002년 이후 연간 약 2억 달러 정도에 육박하고 있다'(통일연구원). 중국과의 무역에서 항상 막대한 적자를 보고 있는 북한 입장에서는 남한과의 무역으로 벌어들인 달러가 그나마 숨을 돌릴 수 있게 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남한은 상업적 거래 뿐 아니라 식량원조와 같은 '비결제성 거래'를 통해서도 북한경제에 커다란 힘이 되고 있다. 남한은 '2002년 이후 연간 3억 달러를 능가하는 비결제성 대북거래를 수행함으로써, 동일한 규모만큼의 물자를 북한의 지불 부담없이 제공하는 국가이기도 하다'(통일연구원). 반대로 중국은 무상지원과 같은 비결제성 거래에는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다.

결론적으로, 남한은 이미 북한의 주요 경제협력 파트너가 되었다. 더구나 북한은 남한의 지원과 협력 없이 어떻게든 혼자서 해 나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현재 남한이 북한경제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결코 작지 않으며, 큰 이변이 없는 한 앞으로 그 비중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그 동안 평화통일진영은 주되게 교류활성화를 통한 남북경협의 양적인 확대를 강조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증대된 영향력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 이번의 쌀차관지원 유보 결정도 위에서 제시한 경제적 맥락의 연장선상에서 거시적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맥도날드가 있는 두 나라 사이에는 전쟁이 없다'는 유명한 경구가 있다. 하지만 평화와 통일에 이르는 길은 절대 단선적이지 않다. 더욱이 우리는 미국, 중국 등 주변열강과의 의견조율을 소홀히 할 수 없는 처지다. 남북경협이 확대될 수록 보다 고차원적인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지금의 '냉각기'는 바로 그런 고민을 위한 시기가 되어야 한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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