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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6.13 15:15 수정 : 2007.06.13 15:15

삼양동 산동네에도 최루탄 가스는 날아 들었다.

발포 지점이 어딘지는 모르지만, 마당 한편에 있던 대추나무 사이로 최루 가스는 날아들었다. 아버지는 한달에 두세 번 집에 계셨다. 가끔 경찰들이 찾아왔다. 대문 밖에서 '엄마'가 언성 높여 싸우는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어렸다. 지금 생각해도 어렸다. 아버지 손에 이끌려 나간 종로 바닥은 아비규환이었다. 아버지는 치약을 내 눈과 코 밑에 발라주었다.

하얀 헬멧(나중에 백골단을 알게 됐다)을 쓴 경찰들이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폭행했다. 초등학생이었던 나에겐 그 폭력이, 왜 이루어져야 했는지 또 그들은 왜 맞아야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초등학교 등굣길에 아버지가 목에 걸어준 '빨간 마후라'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교실에 앉았다. 한 선생이 대뜸 말했다.

"야 너 그거 안 벗어?"

왜 그렇게 그 선생이 열을 냈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당시에는 붉은 색에 대한 일종의 '알레르기'가 있었나보다.

당시엔 '호헌철폐'가 무슨 뜻인지 몰랐다. 대학생 형들이 그 더운 여름에 줄기차게 외쳐대는 이유가 궁금했다.


정확히 20년이 흘렀다. 나는 어떤 과정을 거쳐서인지는 몰라도 한겨레 기자가 됐고, 20년전의 기억은 최루탄 냄새와 함께 아련한 기억으로 남았다.

지금은 옛 살던 삼양동 산동네는 아파트 단지가 대신했다. 일명 '돌산'이라 불리던 삼양동 판자촌 뒤에 야산에 가득했던 아카시아 향내와 섞여 나오던 최루탄의 냄새는 나에게 지금 어떤 의미로 다가 오는 것일까.

삼양동 산동네의 변화만큼이나 많은 것이 변했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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