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통사 "큰 기술적 어려움 없어"…검찰 판정패
`보복폭행' 늑장ㆍ외압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최근 경찰과 한화그룹 관계자 등 33명의 통신사실(휴대전화 사용내역) 확인요청을 하자 법원이 `사생활 보호' 등을 이유로 `33명 상호간 통신만 확인하라'고 제한했다. 검찰은 기술적 어려움을 들어 강하게 반발하고 있지만 법원은 `우리나라의 IT기술 수준으로 봤을 때 33명 전체의 통화내역이 아닌 33명 상호간만 통화내역을 따로 뽑아내는 게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과연 법원과 검찰 중 누구의 말이 맞는 것일까. ◇ 법원 "통신사실 확인 조건 엄격히" = 18일 서울중앙지검과 서울중앙지법에 따르면 법원은 5월 30일 검찰이 `보복폭행' 관련자 33명의 모든 휴대전화 통화내역을 보겠다고 낸 `통신사실 확인내용 요청'을 부분적으로 기각하고 `33명끼리 통화한 사실만 따로 추려 확인하라'고 제한했다. 지금까지는 통상 수사기관이 특정 기간 A,B,C라는 세 범죄 관련자의 통신사실 확인을 요청하면 법원은 특별한 기각 사유가 없는 한 A,B,C 세 사람 사이의 통화는 물론 이 세 사람과 통화한 모든 사람의 통화내역을 볼 수 있도록 허가해왔다. 33명을 제외한 `제3자'와의 통화내역을 확인할 길이 막히게 된 검찰은 `기술적으로 33명끼리만 통화한 사실을 추려내는 것은 어렵다'는 의견을 첨부해 다시 통신사실 확인을 요청했지만 법원은 `그렇다면 기술적으로 어렵다는 이유를 소명하라'며 다시 기각했다. 검찰은 결국 6일 통신사실 확인요청 대상자를 5명으로 대폭 줄여 다시 요청한 끝에 이들의 전체 통화내역을 확보할 수 있었다.검찰은 당시 "특정인끼리만의 통화내역을 뽑으라는 전례가 없었다. 영장전담판사가 사법기관인지 수사기관인지 분간이 안 갈 때가 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 이통사 "기술적 어려움 없어" = 그렇다면 법원이 요구하는 대로 특정인끼리의 통화내역만 뽑아내는 건 기술적으로 가능한 것일까. 3대 이동통신사 관계자들은 다소 입장의 차이는 있지만 "기술적으로 큰 어려움은 없다"고 말한다. 검찰이 이통사를 핑계로 삼아 법원에 `엄살'을 부렸다고 풀이되는 대목이다. A사 관계자는 "만약 법원이 관련자끼리만 통화내역을 확인하라고 하면 기술적으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며 "사견이지만 검찰이 수사를 하면서 다른 사람들 것도 보고 싶은 욕심이 있으니까 우리 핑계를 대면서 기술적 어려움을 호소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B사 관계자는 "검찰이 문의를 해 와 `기술적 어려움이 다소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안다"며 "하지만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말은 아니고 촌각을 다투는 것이라면 다소 늦어질 수도 있다는 뜻으로 한 말"이라고 전했다. C사 관계자는 "현 시스템에서는 관련자끼리만 추리는 기능이 없는 건 맞지만 만약 실제 요청이 오면 이를 시행하는 데 큰 기술적 어려움은 없다"며 "예전 방식에 비해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법원이 이런 식으로 관행을 바꾼다면 우리도 시스템을 바꿀 고민을 해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통사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기술적 어려움'을 호소했던 검찰이 법원에 판정패를 당한 셈이다. ◇ 고민 깊어지는 검찰 = 인권보호 측면에서 검찰의 구속ㆍ계좌추적 영장 등에 날로 엄격한 제한을 가하는 법원이 `영장'이 아닌 통신사실 확인요청에까지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되자 검찰은 `법원이 수사까지 지휘하느냐'며 못마땅해하고 있다. 검찰의 입장에서 통신사실 확인은 자백 위주의 수사관행을 탈피해 물증을 통한 과학수사를 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자료인데 이마저 제한하면 수사진의 손발을 묶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것이다. 특히 보복폭행 외압의혹과 같이 은밀히 이뤄지는 범행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사건 관련자 주변 인물들에 대한 통신사실 확인이 없으면 숨어 있는 제3자를 찾아내 수사를 진행하기가 사실상 어렵다는 게 검찰의 논리다. 심각한 문제의식을 반영하듯 검찰은 최근 열린 서울중앙지검 확대간부회의에서도 이번 통신조회 제한 문제를 주요 안건으로 올린 것으로 전해졌다. 차대운 기자 setuzi@yna.co.kr (서울=연합뉴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