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6.21 16:29
수정 : 2007.06.21 16:29
항소심 법원이 2조1천억원대의 다단계 사기 행각을 벌인 혐의로 기소된 주수도 제이유 그룹 회장의 선고공판에서 주 회장을 "황금알을 낳는 거위", "하늘을 날고 싶었던 이카루스" 등에 비유해 눈길을 끌었다.
서울고법 형사10부 이재홍 수석부장판사는 21일 오후 열린 주 회장의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선고에 앞서 주 회장에게 "이솝우화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아느냐"고 운을 뗐다.
이 판사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게 계속 황금알을 낳게 해주려면 또다른 피해자들의 재산이 필요하다"며 "피해자 중에는 거위를 죽이는 것보다 살려둬서 뱃속에 있는 황금알이라도 나누고 싶은 사람들이 있지만 이제는 못 믿겠다고, 다른 피해를 막기 위해 죽이는 것이 나을 거라고 생각하는 피해자가 더 많다"며 주 회장을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 빗댔다.
이 판사는 "피고인이 원래 사냥감을 기다리던 사기꾼 같지는 않고 암웨이를 이기려는 애국심에서 나름대로 이 사업을 구상했다고 선의로 해석하고 싶다"면서도 "피고인이 수학적ㆍ통계적으로 완벽하게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했고 이는 높은 건물의 설계도만 갖춘 것이나 다름없었다"고 꼬집었다.
비유는 그리스 신화로 이어졌다. 이 판사는 "피고인은 하늘을 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공학적인 검증이 없었다"며 "그리스 신화의 이카루스는 부자(父子)만 날았지만 피고인은 날개에 균열이 생기는 데도 너무 많은 사람들을 태워서 동반 추락했고 그 날개에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었다"고 묘사했다.
이어 "피고인을 전형적인 사기꾼으로 볼 수는 없지만 법률상의 사기에는 미필적 고의가 있고 완벽한 수학적ㆍ통계적 장치 없이 이 사업을 시작한 것은 미필적 고의에 해당한다"며 "많은 사람들이 수당을 목표로 달겨드는 것을 알면서 내버려뒀고 건물이 높이 올라가면 무너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내버려 뒀다"고 지적했다.
이 판사는 "피해자들은 집을 담보로 돈을 투자하고 평생 일한 퇴직금을 날린 서민들"이라며 "투자한 것보다 가져간 돈이 더 많은 경우도 피해액에 포함돼 피해액이 이렇게 많은 것이 억울하겠지만 총액을 따지자면 가져간 돈보다 투자액이 더 많은 점을 고려한다"며 주 회장의 항소를 기각했다.
평소 선고공판에서는 재판부가 판결문을 보면서 요지와 주문을 간략히 읽어주지만 이날 공판은 이 판사가 20여분간 제이유 그룹의 다단계 영업을 사기로 판단한 근거와 양형 이유 등을 자유롭게 말하는 이례적인 방식으로 진행됐다.
주 회장은 제이유 그룹의 불법 다단계 영업을 통해 1조8천억원대의 사기 행각을 벌이고 거액의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됐으며 1심에서 징역 12년을 선고받은 후 항소했다.
백나리 기자
nari@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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