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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연대 대표 강병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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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연대 대표 강병기님의 뜻을 기리며
‘이 세상이 과연 살만한 세상인가, 이 도시는 과연 살만한 도시인가’란 근원적인 고민을 안고 마지막까지 사람이 주인되는 도시를 위해 한 걸음 한 걸음에 최선을 다하셨던 도시연대 강병기 대표께서 지난 11일 작고하셨다. 각 분야마다 원로는 늘 존재하기 마련이지만 분야를 넘나들며 존경을 받는 어른은 그리 많지 않다. 한양대 도시공학과에서, 그리고 ‘도시연대’라는 시민단체에서 뜻을 펼치셨던 강병기 대표는 위에서 군림하는 원로가 아니라 후학들이 마음껏 날개를 펼칠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힘을 더해 주는 일을 마다하지 않으셨기에 이 날 빈소에 모였던 모든 사람들의 슬픔과 애도는 더욱 컸으리라. 사람에게는 그 자신만의 향기가 있다. 내가 그 분의 향기를 처음 접한 것은 주민참여를 바탕으로 활동하는 ‘도시연대’ 활동에 참여하면서부터다. 2002년부터 시작된 도시연대의 발걸음은 개발논리에 따라 빠르게 변화하는 도시의 거대한 힘에 대항할 무기를 갖고 있지 않았기에 처음엔 별로 내키지 않았다. 어두침침한 사무실 구석에서 모여 앉아 ‘주민참여와 사회적 디자인’을 붙잡고서 고민하던 시절, 깨달음과 돌파구는 ‘늘 주민을 먼저 생각하라’는 강 대표의 나지막한 목소리였다. 군림하지 않고 숨어서 밀어주던 ‘원로’2002년 도시연대 꾸려 개발논리 대항
“늘 주민 먼저 생각하라” 말씀 새길터 나는 그분한테서 진정한 주민참여 디자인을 배웠다. 그 분을 통해 살고 싶은 도시를 만들고자 꿈꾸는 일은 정책에 대한 비판과 현실에 대한 불만을 통해 가능한 게 아니라, 주민이 직접 나서서 그들의 힘으로 자신의 공간을 바꾸어 나갈 때 가능한 것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주민참여 디자인을 책이나 세미나를 통해서가 아니라 도시라는 삶의 구체적 현장 속에서, 그리고 그 삶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을 통해 배웠다. 인사동 상인들의 이해득실 틈바구니 속에서, 초등학교 통학로를 지나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발걸음에서, 북촌 한옥마을을 찾는 관광객들의 숨소리에서, 동네 놀이터에서 뛰어 노는 아이들의 힘찬 몸짓에서 주민들이 원하는 디자인의 참뜻이 무엇인지, 디자인의 사회적 구실이 무엇인지를 배웠다. 배움은 머릿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에서, 나 자신을 통해서가 아니라 도시의 주인인 사람들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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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의 작은 쉼터 ‘한평공원’ 만들기를 주도해온 고 강병기(맨왼쪽) 도시연대 대표가 지난 2005년 서울 금화초등학교에서 ‘한평공원’ 현판식을 갖고 있다.
도시연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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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 작고하신 강병기 대표를 돌이켜 보는 까닭은 도시설계 분야에서의 그분의 업적이나 대학에서 길러낸 제자들의 원기왕성한 활동에 있는 것만은 아니다. 도시의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사라져가는 이 세기에 도시와 인간, 장소와 삶에 대한 그분의 태도와 관점이 오히려 우리에게 더욱 큰 호소력을 지니며 더욱 더 절실한 지침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 분의 가치로 볼 때 도시는 곧 사람이다. 고인은 도시 전체와 그 안에 담긴 개별적인 삶을 함께 아우를 수 있는 작은 실천을 강조하셨다. 주민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극히 평범한 세상살이가 고인이 마지막까지 붙들고 젊은 우리들과 함께 고민하였던 과제였다. 이제 강 대표님의 뜻과 열정은 송두리째 우리의 몫으로 남았다. 그 분을 기리며 도시의 주인은 사람임을 다시 한번 마음속에 깊게 새긴다. 이영범/경기대 건축대학원 교수, 도시연대 커뮤니티디자인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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