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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아파트 분양가격 산출 내역이 담긴 자료를 받아내려고 21일 오전 서울 강남구 논현동 대한주택공사 서울지역본부를 찾은 경기 양주시 덕정 주공아파트 2단지 주민 남아무개(65)씨가 주공 직원들에게 질문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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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원가 내역 공개’ 법정싸움 1년6개월만에 이겨
“거액 소송비용 억울…전문가 분석, 다시 싸울 것”
“아파트 분양값과 관련한 모든 자료를 복사해 주십시오!”
21일 오전 11시 서울 강남구 논현동 대한주택공사 서울지역본부 1층 임대팀 사무실. 경기 양주시 덕정 주공아파트에서 온 주민 김인수(42)씨가 당당하게 요구했다. 주공 직원들 얼굴엔 긴장한 빛이 역력했다. 방성민(46) 임대팀장은 “대법원 판결에 따라 공개하도록 하겠다”고 짧게 대답했다.
200여쪽에 이르는 자료를 받아 든 김씨는 2층 강당에서 기다리던 이웃 주민 40여명에게 이 ‘전리품’을 전달했다. 주민 대표 백창호(46)씨는 “내가 살 아파트의 값이 어떻게 책정됐는지 알기 위해 무려 1년6개월이 걸렸고, 소송 비용도 수천만원이 들었다”며 여전히 분을 삭이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덕정 주공아파트 2단지(1935가구) 임대아파트에 사는 주민 40여명은 주공을 상대로 대법원까지 가는 끈질긴 소송 끝에 이날 아파트 건설원가 산출 내역을 받아볼 수 있었다. 방 팀장은 “임대아파트 분양값 산정과 관련해 아파트 건설원가 산출 내역을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소송을 시작한 것은 5년의 임대기간이 끝나 분양 전환을 앞둔 2005년 11월이었다. 분양전환 가격이 공정한지 확인하려면 택지비와 건축비 등으로 구성된 아파트 건설원가(25평형 7800만원)가 제대로 책정됐는지 알아야 했다. 주민들은 주공에 건설원가 산출 내역을 공개하라고 정보공개 청구를 했다. 하지만 주공은 “영업 비밀”이라며 거부했다. 화가 난 주민들은 십시일반 돈을 모아 소송 비용을 마련하고, 주공을 상대로 정보 비공개 결정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냈다.
법원은 지난해 6월 “공사가 끝난 아파트 건설원가 산출 내역은 영업상 비밀이 아니고, 정보 공개로 아파트값 산출 과정의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다”며 주민들의 손을 들어줬다. 주공은 항소했으나 항소심에 이어 지난 5월 대법원도 마찬가지로 판결했다.
아파트 주민 김옥희(54)씨는 “임대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몇백만원에도 벌벌 떠는 서민들”이라며 “공공기관인 주공이 그냥 공개했으면 될 걸, 이렇게 시간과 돈을 낭비하게 해 억울하다”고 말했다. 고영옥(44)씨도 “소송 때문에 분양 전환을 하지 않은 주민을 상대로 주공이 불법거주 배상금까지 청구해 힘들었다”고 했다. 백 대표는 “공개된 자료가 너무 전문적인 분야라 건축사에게 맡겨 철저히 분석한 뒤 아파트값이 근거 없이 높게 책정됐으면 바로잡을 것”이라며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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