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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호 5·18교사동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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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너 있었는가’ 책 낸 이상호 5·18교사동지회장
해직교사들 원상회복 안돼자녀들마저 원망 안타까워 3번 해직당하고 3번 모두 공립학교로 복직한 진귀한 기록을 세우고 지난해 3월 서울 양평중학교를 끝으로 명예퇴직한 이상호(56) 5·18교사동지회 회장이 책을 냈다. 〈거기 너 있었는가〉(열린숲). “과거시제가 아니라 미래 어느때, 그때 당신은 어디 있었냐는 얘기를 들을지 모른다. 그러니 올바른 역사의식을 가지고 미래를 설계하라는 얘기다.” 전교조 쟁의국장, 전노협 초대 연대사업국장, 서울지부 참교육사업단 대표 등을 지낸 그는 올 초까지 전교조 원상회복추진위원회 지도위원으로 일했고 지금은 서울지부 원상회복 지도위원이다. “2천여명의 해직교사들 가운데 재판에서 이기고 완전히 원상회복된 사람은 나 혼자뿐이다. 해직교사 복직은 모두 신규채용 형식을 취했다. 원상회복이 안되니 해직기간을 인정받지 못하고 그래서 재직 20년을 채우지 못해 퇴직해도 연금을 받지 못한다. 이젠 나이든 그들이 당하는 고통이 말도 못할 정도다. 지방을 돌아보니 해직교사 자녀들이 안티전교조 사이트를 만들어 ‘아빠는 자기만 좋은 일 하고 우리는 거지 생활 한다’며 원망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었다. 친일을 하면 3대가 잘 먹고 살고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고 했는데, 실감하고 있다.” 교육정상화 운동과 함께
소외층 사회운동 해나갈 것 그는 전주 완산여상 재직 때 광주항쟁 관련 전주지역 시위사건 주모자로 해직당했다. 계엄법 위반으로 1980년 광주 상무대 영창과 육군고등군법회의를 거쳐 “가슴 빨간색 수번(744)을 달았다.” 그 수번을 “역사적 증거로 삼으려고” 숨겨 갖고 나와 보관중이다. ‘빨간색’ 수번은 ‘빨갱이(간첩)’로 분류됐다는 얘기다. “지금 생각해도 분하다.” 6월항쟁 때는 전국 교사서명운동을 주도했다. 1998년 재심 때 무죄를 받았으며, 2000년 광주항쟁 관련 손해배상소송으로선 처음으로 승소해 배상금을 받아냈다. 5·18특별법이 제정된 덕이었다. 재심 무죄판결 하루 뒤 한을 푸셨는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전교조 원상회복추진위 지도위원은 그때의 경험을 살려 해직교사들을 돕겠다는 것이고, 전교조 해직교사 특별법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김제 출신으로 서울중학교를 나왔고 광화문에서 노점상을 했다. 검정고시로 경희대 사학과에 들어가 학내 민주화 운동을 주도하며 유신체제에 반대했다가 1975년 긴급조치9호에 걸려 제적당했다. 그 뒤 33년간 민주화운동에 투신했다. 그때 함께 싸운 동지들이 36명이었고, 지금 청와대에 있는 문재인, 독도역사찾기운동본부 위원장 김봉우, 정치인 강삼재씨 등이 투쟁 동기들이다. 김제 농민야학을 거쳐 구로동에서 노동야학을 할 때 ‘한얼야학’ 교장으로 만난 야학교사가 지금의 부인 최주영(50)씨다. 부인 역시 해직교사(국어)다. 이 위원은 한때 통합민주당 쪽 후보로 관악구에서 이해찬 의원에 맞서기도 했으나 “지금은 90% 정치를 접었다.” 앞으로는 교육 정상화 운동을 하면서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사회운동도 함께 해나갈 각오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사진 열린숲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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