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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3.28 18:32 수정 : 2005.03.28 18:32

[사진설명]불에 탄 침대가 스프링만 남아 있다. 김순배 기자

[현장] ‘미아리텍사스’ 꿈과 욕정이 타버린 곳에 ‘감금’논란

곰 인형과 화장품. 모두 시커멓게 그을렸다. 27일 낮 12시36분께 불이 나 5명이 숨진 서울 성북구 하월곡1동 이른바 ‘미아리 텍사스’ 골목 4층 건물.

28일 오후 기자가 찾은 건물은 1층 계단 왼쪽에 술상이 놓였다. 그 위에 10병 가까운 맥주병이 남았다. 술상 위에 신문을 덮은 작은 밥상도 놓였다. 하얀색 드레스가 걸린 폭 1미터 남짓한 계단은 걸을 때마다 철벅철벅 물소리가 났다.

화재가 난 3층. 손전등을 비췄다. 1평 반, 자그만한 3개의 방은 타다 남은 침대 위에 불에 탄 천장이 내려 앉았다. 꽃무늬가 놓인 베개와 이불도 스프링만 앙상하게 남은 침대 위에 뒤엉켰다. 침대 옆 화장대에는 손바닥만한 지갑 속에 화장품이 들었다. 화장대 위 깨진 거울은 누가 얼굴을 비추며 머리를 빗었는지 알 수 없었다. TV와 휴대폰 충전기 위에도 새카만 재가 덮였다. 플라스틱 옷장은 촛농처럼 녹아내려 애초의 모습을 잃었다. 어느 방 어느 침대가 어느 ‘아가씨’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바닥 한 구석에는 화재원인이 됐다는 담배가 보루째 처박혀 있었다.


▲ 화재 건물의 1층 한쪽에 먹다 남은 술상이 차려져 있다. 김순배 기자



3층 한쪽 화장실. 샴푸와 비누, 칫솔과 치약통, 세숫대야가 나란한 그곳에 빨래걸이가 걸렸다. 그곳에는 레이스가 고운 흰색과 빨간색 속옷이 예닐곱개 걸렸다. 3층 복도 유리창은 깨져 햇빛이 눈부셨다.

화재 현장에서 30여미터 떨어진 곳, 숨진 5명의 여성들을 추도하는 분향소가 설치됐다. 젯상에는 수박, 오렌지, 곶감, 밤, 배, 대추, 사과, 시루떡이 얹혔다. “현고학생 OOO 신위”라고 한글로 적힌 5개의 위패 앞에는 “여종사자 대표 일동” 이름의 하얀 국화 화분 2개가 놓였다. 그 젯상 앞에는 4명의 20대 여성이 나란히 앉았다. 이들은 가끔 눈물을 훔쳤다. 향이 타올랐다.








“현고학생 OOO 신위” 위패에 “여종사자 대표 일동” 조화

분향소에 앉은 여성들도, 숨진 이들도 말이 없었다. 슈퍼와 약국, 인형가게와 양념치킨, 노래방과 란제리가게, 닭발과 소금구이 집 사이로, “술값 인상 안내, 현금 70000원, 카드 80000원”이라는 안내가 나붙은 골목. 한쪽 귀퉁이 시커멓게 그을린 화재 현장이 보였지만, 숨진 이들의 목소리는 미아리 골목에 들리지 않았다. “동네서 밥 먹고 살려다가 죽었느니 안됐다”는 한 가게 주인의 안타까움은 나즈막했다. 하지만, 이날 미아리 골목은 업주와 국회의원, 여성단체 회원과 기자들의 목소리로 시끄러웠다. ‘감금 성매매’냐 아니냐를 놓고.

미아리 골목의 긴장은 여성단체 회원들이 현장을 찾으면서부터 시작됐다.
“저것들이 또 감금 어쩌구 하면서 난리치겠네.”
“임시휴업”이라는 알림이 나붙은 미아리 골목에서 업주들이 소리쳤다. 업주들의 불만은 국회의원 조배숙·이경숙·홍미영 3명이 여성단체 회원들과 화재 현장을 들어가면서 터졌다. “왜 여성단체 회원들이 화재 현장에 들어가냐?”는 것이었다. 일부 업주들은 “증거를 조작할 수도 있는데 왜 들여보내느냐”고 경찰에 따졌다.





[사진설명]화재가 난 4층 건물 입구에는 `술값' 안내문이 붙어 있다. 김순배 기자

현장 찾은 의원들 “성매매 알선으로 돈 버는 일이 없어야”

화재 현장에 들어갔다온 국회의원들도 감금과 인권유린 의혹을 제기했다. 이경숙 의원 등은 “성매매 현장을 철저하게 단속하지 않아서 인권유린이 계속되고 결국 이런 화재가 일어났다”며 “1평짜리 방안에 창문은 철판으로 막혀 있는데 이게 감금이 아니면 무엇이냐”고 지적했다. 이들은 “성매매를 알선하면서 돈 버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업주들을 겨냥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등은 이날 성명에서 “이번 화재는 성매매방지특별법이 시행되고 있음에도 불법적인 알선행위를 통해 여전히 막대한 수입을 올리고자 의도적으로 법을 어겨온 업주에 의해 무고한 여성들이 또다시 희생된 사건이자, 성매매 알선업소에 대한 단속과 불법업주에 대한 처벌을 책임지고 있는 사법당국의 직무유기다”며 “성매매가 근절되고 여성들이 무방비 상태로 목숨을 걸고 생활해야 하는 성매매업소들에 대한 철저한 단속과 폐쇄조치가 수반되어지기를 다시한번 강력히 요구한다”고 밝혔다.

국회의원들은 서둘러 현장을 떠났지만, 업주들이 벌떼같이 일어났다.
“무슨 감금이냐?”
“말도 안되는 소리하고 있네?”
“‘쌍팔년도’ 얘기하고 있네?”

“기자들도 들여보내라”고 업주들이 요구하면서, 경찰이 기자를 화재현장에 들여보냈다. 하지만, 기자도 “감금이 있었는지”는 정확히 판단하기 어려웠다. 골목으로 난 화재현장의 창문에는 분명히 철창이 있었다. 하지만, 녹아내린 철창은 자물쇠가 채워진 것인지, 밖에서 잠긴 것이지 알 수 없었다. 시커멓게 그을린 열쇠는 철창에 그대로 꽂혀 있었다. 업주들은 “원래 커피숍인데, 유리창이 커서 철창을 달았을 뿐이다”고 주장했다. 옆 집으로 난 4층 창문은 사람이 빠져나갈 만큼 컸고, 철창은 없었다. 기자들을 현장에 들여보낸 경찰도 “감금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김강자 서장이 여기 왔다간 게 언젠데…2000년까지는 몰라도 감금이 어디 있어요?…애들이 얼마나 똑똑한데…밥 먹으러 나갔다가 도망갈 수도 있고…출퇴근 하는 애들도 있는데…. 애들이 더 영특해서, 선불금 받고 도망가서 망하는 업주들도 많아요.” 경찰은 전날도 공식적으로 “성매매 여성들이 도망가는 것을 막기 위한 감금장치 등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사진설명]감금 논란을 불러일으킨 화재현장의 쇠창살. 화재로 깨진 창문 너머로 밖이 내다보인다. 김순배 기자

업주들 “애들을 공주로 대하는데, 가둬두기는…”


이날 현장을 찾은 여성 국회의원들이 화재 현장을 다녀온 뒤 감금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김순배 기자

업주들은 “우리가 무슨 뿔달린 도깨비냐?”, “우리가 애들을 가족처럼 대하는데…”, “여성단체는 헛소리만 해댄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업주들은 기자들을 데리고 화재현장에 들어가기도 했다. 골목 한쪽에서 식당을 하는 한 60대 여성은 “애들을 공주로 대하는데, 가둬두기는…”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여성은 “아침에 밥해주는 사람, 저녁에 밥해주는 사람, 빨래 해주는 사람 다 있는데, 공주도 그런 공주가 없다”고 말했다.

국회의원과 여성단체는 성매매를 없애야 된다고 강조했지만, ‘자율소방위원회’ 사무실에서는 ‘성매매특별법에 반대하는 시민모임’에서 성매매법 폐지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빈곤여성의 문제를 풀기 위해, 일정한 단속을 하면서 성매매를 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업주들도 “애들이 여기서 돈을 벌어 가족을 먹여살리는데…”라고 주장했다. 장하진 여성부 장관은 28일 화재 피해여성이 입원한 병원을 둘러본 뒤 “성매매 단속을 강화하도록 검·경과 협조하겠다”고 말했다.

화재가 난 미아리 골목에는 “3월27일부터 29일까지 3일간 고인들의 애도기간으로 임시 휴점을 합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었다. 성매매방지특별법 속에서 ‘영업’은 30일 다시 시작된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사진설명]화재가 난 골목에 차려진 분향소에 여성이 앉아있다. 김순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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