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동차로 자신의 어깨를 치고 그냥 간 미군에게 사과를 받아 낸 강영숙씨가 26일 오후 서울 중구 신당동의 가게 안에서 미군에게 썼던 한글 편지와 영문 편지를 들어 보이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
평범한 아줌마, 두시간 뒤져 신고 사과 받아내
“그냥 넘어갈까도 생각했어요. 하지만 미군들이 뭔가 잘못을 했을 때, 한국에서는 (처벌받지 않기 때문에) 괜찮다고 생각할까봐 참을 수가 없었죠. 내가 당한 것은 작은 일이지만, 미선이·효순이처럼 큰일도 많이 일어나잖아요.” 학생 때 ‘데모’ 한번 하지 않은 평범한 ‘아줌마’ 강영숙(43·서울 용산구 이촌1동)씨가 ‘뺑소니 미군 찾기’에 팔을 걷어붙인 이유는 간단했다. 미군이라는 이유만으로 한국에서 특별대우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강씨가 전하는 ‘미군 뺑소니 사건’ 전말은 이렇다. 자동차로 어깨 치고는 ‘쏘리~’ 한마디 하고 가버려“내가 당한 작은 일이지만 미군 ‘특별대우’ 안될 말” 강씨는 지난달 30일 밤 11시께 아들(5)과 함께 바람을 쐬러 지하철 4호선 이촌역 근처로 나갔다. 그때 차 한대가 강씨의 왼쪽 어깨를 툭 치고 멈췄다. 운전자가 당연히 차 밖으로 나와 정중히 사과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운전자는 창문을 반쯤 열더니 “쏘리~” 한마디를 하고는 그냥 가버렸다. 강씨는 차량 번호를 외우려 했지만,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끝 네자리만 기억에 남았다. “미군이라는 생각에 머리가 복잡했죠. 크게 다치지도 않았고요. 근데 저 미군이 나쁜 사람인 것이 아니라, 잘못을 해도 아무 일 없는 듯이 지나쳐 갈 수 있는 지금의 상황이 나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신고하겠다고 결심한 강씨는 차 번호를 알아내려고 차가 들어간 길 가까이에 있는 아파트 주차장을 모두 뒤졌다. 두 시간 만에 드디어 ㄱ아파트 주차장에서 차를 발견했고, 번호를 적어 다음날 서울 용산경찰서에 뺑소니 신고를 했다. 불끈한 마음에 신고까지 했지만 괜한 일을 하는 것 아닌가 고민도 컸다. 하지만 강씨 옆에서 방긋 웃고 있는 아들을 보고는 ‘잘했다’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지난 21일 결국 경찰의 세 번째 출석 요구 끝에 미8군 소속 ㅍ(31)은 경찰서에서 강씨와 대면했다. 강씨는 그동안 영어사전과 ‘씨름’하며 직접 쓴 영문 편지를 ㅍ에게 건넸다. 강씨는 편지에 “이곳이 미국이거나 내가 미국인이었다면 당신이 이렇게 무례하고 상식에 어긋난 행동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화가 났다”며 “당신이 상식적이고 명예를 아는 사람이라면 내게 정중히 사과해야 한다”고 적었다. ㅍ은 강씨에게 고개를 숙이며 “아임 소 쏘리”(정말 죄송해요)라고 사과했고, 치료비 6만7500원을 건넸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야간대학을 다니면서 사회문제엔 관심도 가져보지 못했다는 강씨는 “직접 부닥쳐 보니, ‘권리’는 멀리 있는 게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강씨는 “미군 문제라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출두 요구를 세 번이나 하면서 발 빠르게 수사한 경찰에 감사한다”고 덧붙였다. 이 사건을 담당한 교통과 이장선 경사는 “관내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중 5%가 미군과 관련돼 있다”며 “일반 사건과 똑같이 처리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