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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6.27 18:59 수정 : 2007.06.27 23:44

캄보디아 군 수색대와 구조대원들이 27일 수도 프놈펜에서 남쪽으로 167km쯤 떨어진 밀림에서 발견한 추락 항공기의 안과 주변을 살피며 수색작업을 하고 있다. 캄포트/연합뉴스

“동체 예상밖 온전” 소식에 짧은 기대뒤 긴 탄식
22명 모두 사망…‘악마같은 비’ 주검 이송까지 방해

[김남일·박종식기자] 캄보디아 2신/오열하는 유족

‘사고 가족’이라 불러 달라고 했다. ‘유가족’ ‘희생자 가족’으로 섣불리 불리는 걸 거부한다고 했다. 휴대전화 신호가 살아 있는 것처럼 질기게 살아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희망은 산산조각으로 부서졌다. 캄보디아 군 수색대는 27일 오전 7시15분(현지시각)께 가장 유력한 추락 추정지역으로 꼽혔던 캄포트주 북서쪽 40㎞ 지점에서 앞부분이 심하게 손상된 여객기 동체를 찾았다. 유가족들이 애타게 찾던 피붙이들은 휴양지에 어울리는 산뜻한 옷을 입은 채 동체 안에 숨져 있었다.

비슷한 시각, 수도 프놈펜. 숙소인 캄보디아나호텔에서 넘어가지 않는 아침식사를 마친 가족들은 한가닥 희망을 안고 오전 7시께 캄포트주 현장 상황실로 떠났다. “지난 사흘 동안 그 어느 때보다 맑은 날씨”라는 대사관 직원의 말에 ‘오늘은 동체를 찾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버스 안에 퍼졌다.

오전 7시30분께 관광 가이드를 맡은 고 박진완(34)씨의 동생 준완씨에게 서울에서 전화가 왔다. “동체가 발견됐다는 방송이 나온다.” 가족들에게 소식이 전해졌다. ‘비행기가 폭발하지 않았다’ ‘동체가 멀쩡하다’는 소식이 잇따라 전해지자 작은 탄성이 터져나왔다. 옆에 앉은 가족의 손을 꼭 잡았다. 앞뒤 자리로 다른 가족들끼리 악수가 오갔다. 비행기처럼 온전한 몸으로 아들과 딸과 손자와 사위가 살아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이 순식간에 피어올랐다.

하나투어 관계자가 버스 마이크를 잡았다. 고 최찬례(49)씨의 딸 서희경(25)씨의 귀에 “살아 있을 확률이 높다”라는 말이 귀를 찌를 듯 밀려들었다. 처음 외국여행에 나선 어머니와 얼마 전 어렵게 대학에 편입한 둘째언니 유경(26)씨의 얼굴이 크게 보였다. 방향을 틀어 숙소로 돌아오는 버스 안은 가시지 않는 불안 속에서도 사고 발생 뒤 느껴보지 못했던 ‘진짜 희망’이 부풀어 올랐다.

희망은 짧아서 더욱 슬펐다. 1시간 뒤 호텔로 ‘22명 모두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울었다. 쓰러졌다. 호텔 방문을 걸어 잠그고 들어간 가족들은 말이 없었다. 주검 수습 작업이 늦어지자 벌건 눈으로 호텔 복도를 서성이는 가족들이 진행상황을 서로 묻고는 또다시 울고, 분노하고, 다시 울었다. 숨진 한국방송 조종옥(36) 기자의 어머니는 애써 비운 점심 그릇을 앞에 두고 호텔방에서 사람들과 아들 얘기를 나눴다.

대화는 쓸쓸했다. 사고 원인이 기체 결함이 아닌 악천후일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들리자 연방 담배를 빼어 물던 박준완씨는 “같은 기종의 낡은 비행기가 또다시 운행된다면 비행 허가를 내준 사람을 그 비행기에 태워야 한다”고 했다. 고 최찬례씨의 남편 박희영(42)씨는 “날씨도 습한 이곳에 주검을 둘 수 없다. 한국으로 빨리 운구하고 싶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주검을 눈으로 확인도 하지 못했는데 보상 얘기가 나온다”며 “현지 대사관이 아닌 인터넷을 보고 소식을 먼저 듣는 심정을 아느냐”고 기자에게 따져 물었다.

추락 현장에서는 오후 2시가 돼서야 주검 8구가 겨우 수습돼 헬리콥터에 실렸다. 하지만 갑자기 쏟아진 비로 헬리콥터는 바로 뜨지도 못했다. 이들의 주검이 모두 프놈펜으로 옮겨지기까지는 6시간이 더 걸렸다.

가족사진을 보여주며 “이렇게 예쁜데 …”라며 한숨 짓는 서희경씨 휴대전화로 문자메시지가 들어왔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희경씨는 소파에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지난 26일 예정보다 1시간14분 연착해 밤 10시44분 프놈펜 공항에 도착했던 유족들은, 피붙이들의 사망 소식도 영원히 연착되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프놈펜 캄포트/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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