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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7.02 19:35 수정 : 2007.07.03 19:22

한국적 민주주의, 그 참을 수 없는 갑갑함

유신쿠데타가 가져온 변화
한국적 민주주의의 실체

71년 대선에서 온갖 부정을 자행하고도 차기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고서야 간신히 집권할 수 있었던 박정희는 서늘해진 가슴을 쓸어내려야 햇다. 더 이상 국민투표로는 집권할 가능성이 사라졌다고 생각한 박정희는 유신쿠데타를 통해 대통령의 연임제한을 철폐함과 동시에 직선제를 폐지하였다. 뿐만 아니었다. 민주세력의 개헌시도를 저지하기 위해서 국회의원 정원 219명중 3분의 1인 73명을 대통령이 임명하는 의회파괴를 단행하고나서야만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실 수 있었다.

박정희는 유신체제에 대한 비판을 의식하여 유신을이 '한국적민주주의'라며 국민을 호도하려 애썼지만 결국 한국적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니었다. 유신이 단행된 이후 수 많은 민주투사들이 강탈당한 민주주의를 탈환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투쟁해야 했고, 널리 알려진 인혁당 사건이나 민청학련사건 같은 대규모 간첩조작사건에 연루되어 수 많은 민주인사들이 빨갱이로 몰려 살해당하거나 투옥되기도 했다.

유신체제는 학교생활에도 많은 변화를 주었다. 가장 눈에 띠는 변화는 학생자치회가 사라지고 기존의 학교를 군대체제 처렴 개편시켰다. 유신이 단행될 당시 나는 중학생이었지만 각 학년의 대표를 대대장에 임명하였고, 전체 학생 대표는 연대장에 임명되었다. 물론 각급 제대장들은 학생 자치로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일방적으로 임명하는 것 이었다. 이전까지 학교의 학생자치회 투표는 미래 사회의 구성원들이 민주주의를 학습하는 아주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었지만 유신독재는 민주주의의 싹을 근본부터 말살하려 시도한 것이다.


이렇게 군대처럼 조직된 학교의 운동장 조회는 마치 군대의 행사를 방불케 했다.

각 제대장 별로 서는 자리가 달랐고 대대장과 연대장은 허리에 의식용 칼까지 착용한 채 열병과 심지어는 분열같은 군대 의식을 진행하며 국가에 대한 충성을 맹세해야 했다.

금지된 노래들

수 많은 서적들이 이른바 불온서적으로 분류되어 금서로 지정되었고, 유신 말기에 이르러서는 심지어 대중가요까지 금지곡으로 지정하였는데 이 노래들이 금지곡으로 지정된 이유는 대략 짐작하는 것처럼 이른바 운동권 노래 였기 때문이 아니다.

각 노래가 금지 당한 이유를 대충 훑어보면 그 이유가 참 가관 이었다. 당대 최고의 인기 가수였던 가수 이미자씨의 인기곡인 '섬마을 선생님'은 왜색(倭色)을 풍긴다는 이유로 금지곡에 지정되었는데, 세간에는 박정희가 밤에는 일본 노래를 부르며 주색을 즐겼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국민을 어리둥절 하게 하였다.

김상희씨의 '키다리 미트터김'이란 노래는 상당히 밝고 유쾌한 노래이다. 그런데 이 곡이 금지곡으로 지정될 어떤 이유도 없었다. 세간에는 '키다리 미스터김은'으로 시작되는 이 노래가 키가 작은 박정희의 자존심을 긁었고 심기가 불편해진 박정희에 의해 금지곡으로 지정했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 이유 외에는 이곡이 금지곡이 된 이유를 달리 찾기 어려울 것 같다.

가수 정미조씨가 영화 주제곡으로 불렀던 '불꽃'이라는 가요는 '언제 부턴지 내 가슴 속엔 꽃씨 하나 심어졌었지..'란 가사로 시작되는데 이 가사 내용이 혁명을 암시한다는 이유로 금지곡으로 지정되었다. 자기 자신이 두차레나 불법쿠데타를 단행한 인물이니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랐다."고나 할까?

가수 송창식씨는 당시 최고의 인기스타였다. 그의 히트곡인 '왜불러'는 각 방송사에서 연말에 수상하는 가요대상을 수상한 곡 이었는데 '왜 불러, 왜 불러 , 돌아서서 가는 사람 왜 불러..'라는 가사 내용이 사회에 대한 반항심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금지곡에 지정되었다. 이 밖에도 그의 히트가요 대부분이 사회에 대해 반항적이라는 이유로 금지되었다.

그 밖에도 김추자씨의 '거짓말이야'는 불신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되었고, 나중에 가수 이선희씨가 불러 히트시킨 '아름다운강산'은 가수 신중현씨의 '음반 자체가 퇴폐적'이란 이유로 금지되었다.

금지곡에 지정된 가요 중 아주 특이한 노래는 한대수씨의 '물 좀 주소'였다.

대략 '물 좀 주소 물 좀 주소 목마르오 물 좀 주소 물은 사랑이여 나의 목을 간질며 놀리면서 밖에 보내네…'라는 가사 내용이 좀 재미있는 노래인데 이 노래가 금지곡에 지정된 이유가 참 황당하다. 이 노래를 들으면 '물고문이 연상된다.'는 것 이었다. 하기사 죄 없는 사람들을 걸핏하면 빨갱이로 몰아 갖은 고문을 자행하고 살해하던 정권이었으니 그들에게 있어서는 물 방울 떨어지는 소리만 들려도 물고문이 연상되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 이었다.

목에 쇠고랑을 채운 기분

당시 나의 은사님께서 친지의 초청으로 두달 정도 독일을 방문하고 귀국했는데,(당시에는 해외여행을 자유롭게 할 수 없었다.) 해외여행은 꿈도 꾸지 못할 세상에 외국을 다녀온 것은 대단한 감투와 같았다. 우리는 수업시간마다 선생님의 독일 여행에 대한 무용담을 들으며 신기해 했는 데, 하루는 선생님의 자취집을 찾은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런데 말이지.. 너희들에게만 하는 말이지만 (귀국할 때) 김포공항 입국장을 들어서는 데 목에 덜컥 쇠고랑을 채우는 기분이 들더라…"

선생님께서 별 생각없이 하신 말씀이 내게 주는 공명은 크기만 했다.

당시 우리 사회가 얼마나 경직되어 있었으면 불과 두달 외국 나들이를 하고 돌아온 사람이 입국장에서 '목에 쇠고랑을 채우는 기분'을 느껴야만 했을까?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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