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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7.04 14:25 수정 : 2007.07.04 14:25

2년 전 이 무렵 내 딸아이가 일본과 한국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만 세 살이 못되어 한국을 떠났으므로 한국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는 딸아이가 학교 오케스트라에서 일본을 방문하는 바람에 6월 중순부터 두 주일 정도 토쿄, 오사카, 히로시마 등지를 돌며 홈스테이를 한 것이다. 7월 초에는 시애틀 집에 잠시 돌아왔다가, 아내·아들·딸아이 셋이 서울을 한 달 정도 방문하였다. 난 그때 일이 있어 혼자 시애틀 집에 남았다.

돌아온 딸아이에게 한국과 일본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본 건 당근인데, 참 재미있는 답을 들었다. 한국말을 정기적으로 배우기는 했지만, 미국에서만 자라고 교육받은 이 아이 눈에 서울과 동경, 한국의 청소년과 일본의 청소년이 어떻게 비쳤을까? 나는 그게 궁금하여 가족 다 함께 가족 시간을 가지며 이리저리 물어보았다.

많은 이야기가 나왔지만, 그 중에서 아주 재미있는 답을 소개해 보자.

나: 일본에 다시 가보고 싶니?
딸: 아니.
나: 서울은?
딸: 아니.
나: 왜 싫은데?


딸아이가 제시한 답들은 정말 미국에서 자란 만 15세 소녀다운 것이었다. 동시에 그건 한국을 처음 방문하는 수많은 외국인들도 비슷하게 느꼈음직한 답이라고 생각한다. 답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일본에 다시 가고 싶지 않은 이유들>
1. 너무 무덥다.
2. 너무 붐빈다.
3. 어른들이 무섭다. (백화점에서 친구들이랑 같이 미국식으로 이것저것 들어 만져보고 또 입어보려 했는데, 직원이 일본말로 뭐라고 하면서 쫓아내더란다)
4. 어른들이 너무 일방적이고 강압적이다.

<서울에 다시 가고 싶지 않은 이유> 1. 너무 무덥다.
2. 너무 붐빈다.
3. 어딜 가도 담배연기가 있다. (서울에 있는 동안 외가에 머물렀는데, 외할아버지가 골초. 그러니 집에서도 거리에서도 담배연기 때문에 죽는 줄 알았단다)
4. 술 취한 사람들이 많아 무섭다.

조용하고 청량한 시애틀에서 유치원부터 다닌 딸아이로서, 1·2번 답은 지극히 당연한, 또 청소년다운 답이다. 그런데 3·4번에서 이 아이는 한국과 일본을 아주 재미있게 구별하였다. 특히 일본에 가기 싫은 이유로 꼽은 일본 어른들의 권위적인 태도는 딸아이가 일본 청소년들과 그 부모들과의 관계에 대해 느낀 것과 그대로 일치한다. 즉 자기 또래 일본의 학생들은 너무 어른들의 지시와 규제에 눌려 산다는 거다. 그래서 심지어 일본 학생들이 불쌍하다고까지 했다.

그럼 한국 청소년들은 어떤데? 걔네들도 학원 다니느라 너무 불쌍하지 않니? 딸아이는 한국 청소년과 부모와의 관계를 '가족 전쟁'(Family War)이라고 표현하였다. 즉 가족끼리 조용조용 대화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무조건 소리질러 다투는 걸 이 아이는 전쟁이라고 이해한 것이다. 그런데 더욱 재미있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런 점 때문에 딸아이는 한국의 청소년들을 높이 평가하고, 아주 독립적인 인격체로 인정하였다. 일본의 청소년들과는 매우 다른 면을 나름대로 본 것이다.

그럼 일본 학생들은 그러지 않디? 딸아이의 답은 일본에서는 '가족 전쟁'(Family War)을 못 보았는데, 그 이유는 아이들이 대개 부모에게 순종하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반문하였다. 홈스테이 하는 중에 부모와 자식이 너를 앞에 두고 어떻게 다툴 수 있었겠니? 손님이 없어도 과연 그랬을까? 딸아이 답은 이랬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비단 홈스테이 집뿐 아니라 학교에서 거리에서 몇몇 도시에서 공통적으로 느낀 거란다. 그러면서 일본 학생들이 어른들에게 대체로 너무 눌려 기를 못 피는 건 사실임을 극구 강조하였다. 참 재미있는 주장이다.

그러고 보니, 민주주의 후진국 일본 아닌가. 1945년 이후 미국에 의해 일방적으로 민주주의가 이식되었는데, 21세기에 들어선 지금도 정치적으로는 조폭정치로 남아있는 일본. 한 번도 투표를 통한 수평적 정권교체를 해 본 적이 없는 일본. 뭔가 서로 관련이 있지 않을까? 이건 나의 추론에 불과하지만, 어쨌든 딸아이가 보고 해석한 일본 청소년 평가는 매우 흥미로웠다.

반면에, 전투적이고 저항적인 한국의 청소년들에게서 아주 좋은(?) 독립적인 면을 찾아내 나름대로 해석한 딸아이가 기특하고 고마웠다. 지극히 미국적 (공립학교 교육을 받은 학생의) 관점이지만 말이다.

한편, 한국에 다시 가고 싶지 않은 이유 3, 4번도 지극히 여고생다운 답인데, 나도 솔직히 인정한다. 그래서 이걸 놓고도 일본과 비교해 보고 싶어 물었다. 일본 거리에서는 담배 피우는 사람 없고 술 취한 사람 없니? 딸아이는 거의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 어른들은 너무 담배를 많이 피우고 또 아무데서나 피우고 아무데나 버린다고 불평하였다. 또 저녁만 되면 거리에서 비틀거리거나 얼굴이 벌건 사람들이 보여 무섭다고 했다. 심지어 가게 앞 길거리에까지 술상을 차려놓고, 행인들이 오가는 길에서 술을 마시며 줄담배를 피우는 거리 풍경에 상당한 충격을 받은 듯하였다.

나 자신도 한때 주당이요 골초였지만, 딸아이를 낳기 전에 이미 담배는 단칼에 끊었고, 술도 거의 끊었으니, 딸아이 입장에서 보면, 정말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술 취한 남자어른 얼굴을 실제 육안으로 직접 본 게 그때가 처음이었단다. 그런데 외할아버지는 골초에 애주가요, 주당. 그러니 딸아이 입장에서는 거리에 나가도 담배와 술, 집에 들어와도 담배와 술…. 그러니 다시는 서울에 안 가겠다는 딸아이의 답을 나는 충분히 이해한다.

한 어린 여고생의 여행담이지만, 나 스스로 작년 여름에 서울에 5주 정도 있었고, 이제 또 6주 정도 계획으로 서울에 와 있다보니, 딸아이가 2년 전에 서울에서 보았을 광경이 눈에 선하다. 아니, 오늘도 바로 내 앞에서 실제로 펼쳐지고 있다.

세계화를 피할 수 없는 지금 21세기 벽두…. 이제는 도시의 하드웨어만 세계화할 게 아니라, 그 하드웨어 안에서 살고 있는 시민들의 의식구조 (시민정신), '즉 소프트웨어'의 세계화에도 시민 하나하나가 신경을 써야 할 때라고 본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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