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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7.10 18:44 수정 : 2007.07.10 18:44

화가 최예지씨

승무원 8년차 ‘첫 개인전’여는 화가 최예지씨

“10시간 이상 일하고 나면 지상이 그리워요. 땅은 설렘이고 자유죠.”

대한항공 객실승무 8년차 최예지(32)씨. 스튜어디스로 일하면서 비행기 창문으로 내다본 땅의 모습을 화폭에 옮겼다. 그림에 나오는 땅은 색깔을 달리하는 각종 도형의 조합이다. 히말라야, 그랜드캐년, 대도시는 흑백 얼룩. 논과 밭은 사각형 조합들. 계절에 따라 주황, 초록, 노랑으로 색깔을 달리할 뿐이다.

화려해 보이지만 꽉 짜인 근무일정 속에 언뜻언뜻 창 너머 보이는 지상은 잠간의 평화이기도 했다.

“대자연 속에 인공의 논밭 경계가 사소해 보여요. 네것 내것 나누는 게 부질없어 보이기도 하구요.” 하지만 착륙할 때 애간장을 태우는거나 바퀴가 땅에 닿는 소리가 반갑기는 보통 승객과 다를 바 없다.

그림이 평화롭다 못해 나른해 보이는 것은 그런 탓이지 않을까.

미대를 졸업한 뒤 스튜어디스로 취업한 그는 그림에 대한 열망을 버리지 못했다. 해외노선 현지 체류 때는 쉬거나 쇼핑하는 대신 미술관을 찾아다녔다. 도록에서만 보던 명화 앞에 서면 졸린 눈에도 행복했다.

대학 동문회 전시회에는 해마다 그림을 냈다. 그림을 계속하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3년만에 등록금과 한차례 전시회를 열만한 돈이 모이자 야간 대학원에 등록했다. 직장인에서 학생으로 ‘모드 전환’할 시간이 빠듯해 승무복에 바퀴가방을 끌고 강의실로 직행하기 일쑤였다. 직장을 그만두고 그림만 그리려 했더니 교수님이 말렸다. 지금은 힘들지만 언젠가 좋은 작업의 밑천이 된다면서. 두 가지를 병행하는 게 버거울 때는 전투기 조종사였던 아버지를 떠올렸다. 무리를 해 발목을 삐어 휴학하기도 하고 최근에는 결혼과 출산이 겹쳐 대학원 진학 5년만에 졸업을 맞아 첫 개인전을 열게 됐다. ‘오버 플라이 더 어스’. 한지에 분채, 아교섞은 황토를 쓰고 수채 크레용과 수채 색연필을 섞었다. 승무원의 고뇌를 표현했다고 하니 너무 평화롭다면서 지도교수가 웃더란다. 가나아트스페이스, 11~17일.

“미대졸업 뒤 그림을 계속하는 여성은 10% 정도입니다. 전시회를 세 번까지 하면 작가로 굳어진다고 하죠.”


최씨는 이번 전시회에서 들어오는 부조금으로 다음 번 전시회를 예약할 생각이다. 오래 기억되는 큰 작가가 되고싶다는 게 욕망. 하지만 지금은 할머니가 돼서도 그림을 그렸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이다.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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