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법상 증거인멸죄는 `타인 사건'에 적용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 이후 이택순 경찰청장과 골프를 쳤던 유시왕 한화증권 고문이 이 사실을 숨기기 위해 관련 기록을 삭제했으나 검찰은 증거인멸죄를 적용하기 힘든 것으로 결론내렸다.
13일 서울중앙지검에 따르면 검찰은 유 고문이 보복폭행 사건에 대한 경찰 내사가 진행 중일 때 이 청장과 경기도 모 골프장에서 골프를 쳤으며, 5월 초 이 청장이 국회에서 "보복폭행 이후 한화측과 만난 사실이 없다"고 부인한 뒤 골프장에 부탁해 내방객 명단을 다른 이름으로 바꾼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유 고문의 행위는 현행법상 처벌 대상이 아니어서 그 자체는 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증거인멸죄는 다른 사람의 형사사건이나 징계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 은닉, 위ㆍ변조하거나 위ㆍ변조한 증거를 사용한 경우 성립해 자신의 사건에 관한 행위는 처벌하지 않기 때문.
형법 155조 1항에는 `타인의 형사사건 또는 징계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 은닉, 위조 또는 변조하거나 위조 또는 변조한 증거를 사용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돼 있다.
이처럼 형법상 증거인멸죄에서 자신의 행위와 관련된 증거를 인멸한 경우 처벌하지 않는 것은 당시의 구체적 사정을 볼 때 적법행위를 할 것을 기대할 수 있는 가능성이 낮은 경우 행위자를 비난할 수 없고, 따라서 책임이 면제된다고 보는 법 논리에 따른 것이다.
법이론에서는 이를 `(적법행위의) 기대불가능성에 의한 책임 조각(阻却)'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범죄가 성립하려면 법률에 규정된 구성요건에 해당해야 하고, 법을 어겼다고 인정돼야 하며, 그 행위를 비난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같은 구성요건 해당성ㆍ위법성ㆍ책임성 중 어느 하나라도 결여되면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결국 유 고문의 행위도 타인이 아니라 자신이 관련된 사건에 관한 행위여서 형법이 규정한 증거인멸죄에 해당하지 않아 처벌 대상이 아니다. 검찰은 이 청장과 유 고문의 `골프 회동'은 보복폭행 사건 발생 이전에 약속이 정해진 데다 사건무마를 청탁했다는 증거가 없어 무혐의 처리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임주영 기자 zoo@yna.co.kr (서울=연합뉴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