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아신자 미사 집전…“느낌이 다가온다”
아시아 가톨릭교회 사상 첫 청각언어장애인(농아) 사제인 박민서(39) 신부가 15일 강북구 미아3동 서울애화학교 강당에서 수화로 첫 미사를 집전했다. 박 신부는 서울가톨릭농아선교회(강북구 수유3동) 소속 신자 150여명을 비롯해 대구, 울산, 광주, 전주, 춘천, 마산, 제주 등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500여명의 농아신자와 함께 수화미사를 봉헌했다. 필리핀에서 농아를 대상으로 사목활동을 하는 일본인 사토 신부도 필리핀 신자 7명과 함께 이날 미사에 참석했다. 이날 미사는 입당송(入堂頌)을 시작으로 기도와 참회, 자비송, 강론, 영성체 후 묵상 등 일반적인 가톨릭 전례에 따라 진행됐다. 박 신부는 이 모든 과정을 수화로 진행했고, 이는 음성으로 동시 통역됐다. 미사 뒤에는 농아 청소년 15명이 수화와 율동으로 축하공연을 했다. 박 신부가 수화로 "전능하신 하느님과 형제들에게 고백하오니, 생각과 말과 행위로 죄를 많이 지었으며, 자주 의무를 소홀히 하였나이다"라며 가슴을 세 번 치면서 "제 탓이오, 제 탓이오, 저의 큰 탓이옵니다"라고 교우들에게 참회를 권하는 모습은 강당 안을 엄숙하고 성스러운 분위기로 만들었다. 박 신부를 사제의 길로 이끌었던 정순오(번동성당 주임) 신부는 강론을 통해 "독일 카르타 수녀가 1940년 원산 성당에서 농아들에게 수화로 하느님의 복음을 전한 이후 67년만에 이 땅에 농아 신부가 첫 수화미사를 봉헌하는 오늘은 기쁜 날"이라며 "박 신부가 1994년 미국 유학길에 오른 뒤 13년만에 사제서품을 받기까지 어려움이 많았지만 이 모든 것은 하느님의 뜻으로 이뤄진 것"이라고 말했다. 가톨릭에 입문한지 20년째인 농아신자 박수미(44.서울 서대문구 홍은동)씨는 "아무리 수화를 잘하는 신부라 하더라도 그들의 강론은 마치 외국인 신부가 한국말을 하는 것과 같아 답답하고 아쉬움이 컸다"면서 "이제 가톨릭 교회에도 농아신부가 있게 되어 하느님 말씀을 좀 더 가깝게 들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크다"고 말했다. 경기도 김포에서 온 농아부부 장영만(49)·박용주(50)씨는 "박 신부가 같은 농아인 입장에서 미사를 집전하니 느낌이 확실하게 다가올 뿐 아니라 수화미사 자체가 너무 기쁘기만 하다"면서 "박 신부가 앞으로 김포성당에도 찾아와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 신부의 미사를 지켜본 친형 박외서(45.캐나다 밴쿠버 거주)씨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을 계기로 가톨릭에 입문했던 동생은 작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실 무렵 부제(副祭)로 서품되어 성직자의 길로 들어섰다"면서 "여러 어려움을 이겨내고 여기에 이른 동생이 농아사목을 위해 몸을 바치겠다던 초심을 잃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자신의 생일에 첫 수화 미사를 집전한 박 신부는 "설렘 속에서 첫 수화 미사를 준비하느라 바쁘게 지내다보니 내 생일인줄도 몰랐다"면서 "농아인들과 함께 수화 미사를 진행해보니 자연스럽게 교감할 수 있고 소통이 잘 되는 것 같아 나 자신도 무척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우연하게도 생일에 첫 수화미사를 집전했지만 중요한 것은 내 생일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에 집중해서 살아가는 것"이라며 "첫 농아 사제로서 농아인을 위해 열심히 사목활동을 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깊게 느낀다"고 덧붙였다. 박 신부는 지난 6일 잠실실내체육관에서 다른 부제 38명과 함께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으로부터 성품성사(聖品聖事)를 받고 사제가 됐다. 정천기 기자 ckchung@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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