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7.16 15:35
수정 : 2007.07.16 15:35
|
한나라당 전여옥 전 최고위원이 12일 서울 여의도 이명박 대선경선후보 캠프에서 이 전 시장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고 있다.(서울=연합뉴스)
|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5부(재판장 한창호)는 11일의 1심에서 전여옥 한나라당 의원이 <일본은 없다>(저자 전여옥)의 표절 논란에 대한 기사를 작성한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와 정운현 당시 편집장, 인터넷 정치평론 사이트인 서프라이즈의 논객 김아무개씨 등 5명을 상대로 낸 5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전씨는 르포작가 유재순씨가 일본에 대한 책을 출간하려고 자료를 수집하고 취재한 내용을 정리해 초고를 작성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유씨로부터 들은 취재내용과 아이디어, 유씨한테 받은 초고의 내용 등을 무단으로 사용하거나 인용해 <일본은 없다>의 일부분을 작성한 것으로 인정 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오마이뉴스의 기사 및 칼럼 중 이에 대해 기술한 부분은 전체적으로 진실한 사실로 볼 수 있어 공익성과 진실성이 인정되므로 전씨의 손해배상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위의 판결 내용을 보고 맹렬한 증오를 느꼈다. 만일 전여옥이 앞에 있다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를 것 같았다. 이 사건에서 살의(殺意)마저 느꼈던 것은 내가 작가라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작가에게 글은 자식과 같다. 고통스레 살을 갈라 낳은 자식을 남에게 빼앗겼다면 어떤 심정이겠는가? 그것도 모자라 적반하장으로 욕설을 퍼붓고 협박을 가한데다, 거액의 손해배상까지 청구했다면 표절과 도용을 사갈(蛇蝎)시 하는 작가의 시각에서는 최악의 범죄에 다름 아니다.
기가 막히다 못해 어이없기조차 한 이번 사건을 되짚어보자, 1993년 11월에 전여옥의 명의로 출판된 <일본은 없다>는 대형서점에서 56주 연속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였으며 100만부 이상을 판매한 초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기록적인 판매량을 돌파하게 된 것은 일본에 극히 부정적인 국민정서에 잘 부합했기 때문이겠지만, 그것이 급격한 신분상승의 도구가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일본은 없다>가 출판되기 이전의 전여옥은 KBS기자로서 동경특파원의 신분이었다. 가능성 있는 기자의 하나였던 전여옥이 정치에 입문하지 1년 만에 전격적으로 대변인으로 기용되고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여 최고위원까지 될 수 있었던 것은 <일본은 없다>의 덕택이라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일본은 없다>는 장물이었다. 전여옥을 신데렐라로 거듭나게 해 준 역작은 동경특파원 시절 알게 된 유재숙 작가의 작품이었던 것이다. 전여옥이 유 작가와 친하게 지내면서 출판을 위해 취재한 내용을 듣거나 초고를 보고 그 일부를 복사해 갔으며, 그것으로 역작을 생산했다는 것은 명백히 입증되었다. 재판부도 증거가 충분하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에 이번의 판결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전여옥은 모든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였다. 기각당한 직후 “자신의 증언이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내용의 성명서와 함께, 즉각 항소하겠고 발표했지만 1심 판결이 뒤집힐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절도범과 장물아비의 역할을 겸한 전여옥의 비(非)양심에 대해서 그저 경악할 따름이다. 책임 있는 정치인으로서의 양식을 따지기 이전에 인간이면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보편적 가치관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전여옥이 혐의를 부인할 용도로 뱉은 말 가운데 재미있는 것이 있다. 유 작가와의 통화 가운데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을 퍼붓고는, <옆집 신발공장에서 똑같은 신발을 만들었기로서니 그게 뭐가 죄가 되느냐>며 강변한 부분이 바로 그것이다. 전여옥의 말 그대로 옆집 신발공장에서 똑 같은 신발을 만들었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기 위해서는 “그 신발공장 역시 남의 것을 도용했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고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독자적으로 개발한 제품이 버젓이 이웃 공장에서 생산되고 있다면 어떤 사람이 가만히 있겠는가? 그 부분에서 전여옥은 자신이 표절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시인하고 있으며, 내부에 탑재된 가치관을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전여옥이 말을 바꿔 탄 것이다. 거의 2년 동안이나 박근혜와 동고동락했던 전여옥이“이 후보를 돕는 것만이 정권교체의 지름길”이라고 커밍아웃 한 다음 이명박에게 의탁 했다. 그것을 두고 박근혜 측에서는 “이번 재판에서 표절이 사실로 드러나자 (보다 당선이 확실하고 파워가 강한) 이명박의 우산 속으로 숨는 것”이라며 심한 배신감을 나타냈다. 이명박으로서는 호재라고 판단하여 크게 예우할 모양인데, 최후의 카드로 선택한 이명박과의 합방이 어떤 패륜아를 탄생시킬지 자못 걱정이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