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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7.16 15:40 수정 : 2007.07.16 15:40

한일간의 의식의 차이를 보다

매달 서울과 동경을 오가는 형편상 자연스럽게 양국의 단면들을 비교하게 되고 그 속에 감춰져있는 정신구조나 가치관의 차이를 발견하게된다.

노약자석은 말 그대로 '나이드신 분'과 '약자 - 임산부, 장애자 등'만이 앉을 수 있는 자리라 비어있더라도 건강한 사람과 젊은 사람들은 다리가 무지무지 아파도 앉으려면 약간의 죄의식과 주변의 강렬한(?) 시선을 이겨내야 한다.

흑과 백, 절대적이다.

노인을 공경하고 약자를 보호하려는 배려가 있는 것이라 세계에 자랑해야하는 우리들의 좋은 것인데도 불구하고 왠지 내게는 거부감이 생겨나게 만든다.

일본에는 노약자석 대신에 '우선석'이란 이름의,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자리가 있다. 물론 버스와 전철에 있다. 이 '우선석'이라는 것이 참 편리하다. 뭐가? 그 뜻을 해석해 보면 "그 이유야 어떻든 간에 필요한 사람이 우선적으로 앉을 수 있는 자리"라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서 몸이 불편하든, 임신을 해서 불편하든, 지난 밤에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피곤하든, 겉은 멀쩡하지만 속이 병들 었든... 좌우간 그 이유가 어떻든 간에 필요한 사람이 우선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자리다.

나 자신 한국에서의 습관대로 '우선석'에는 기본적으로 앉으려고 하지 않지만, 다리가 심하게 아프고 어지러움을 느낄 때는 주변의 시선을 그리 의식하지 않고 앉는다.


한국의 '노약자석'과 일본의 '우선석'은 비슷해보이지만 아주 다른 시스템이다. 한국의 그것은 '나이'나 눈에 보이는 '장애'와 같은 제한조건을 단 절대적 가치관에 기초로 하고 있고, 일본의 그것은 그때 그때의 형편을 고려한 '상대적 가치관'을 바탕에 두고 있다. 상대적으로 약한 사회구성원을 배려하는 기본 정신은 같지만 현실에 접근하는 정도나 방법이 다르다.

무엇이 더 나은가하는 단순 비교를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장단점이 있고 오랜 역사를 통해 그 나름의 형편 속에서 얻어낸 정신적 가치관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단순히 어느 쪽이 낫다라고 하는 것은 섯부른 판단이 되기 쉽다.

절대적 가치관, 상대적 가치관의 단면을 나타내주는 '노약자석'과 '우선석' 중 나는 '우선석'이 편하기는 하다. 겉은 멀쩡해도 속이 고장(?)나 있어 힘들 때가 많기 때문에 '우선석'에 앉아도 된다는 것이 너무 좋다. '노약자석'이 노인분들과 약자를 무조건 보호하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난 약자라는 좁은 의미의 배려를 하는 데 반해서, '우선석'은 그 이유는 모르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약점을 가지고 있을 '숨은' 약자에 대해서도 배려의 손길을 펴고 있기 때문에 나는 이 쪽을 더 좋아한다.

그리고 '노인 = 약자'라는 등식을 나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7순이 넘어서도 청년처럼 일하고 또 건강한 노인아닌 노인분들을 이 곳 일본에서 너무나 흔하게 접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환갑만 넘기면 노인티가 나는 분들을 너무 많이 만난다. 사회가 그렇게 만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40대 정년이라는 이상한 현상이 존재하는 한국이라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노인(시니어 시티즌)을 존경하고 공경하고 보호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보이지 않는 약자의 존재를 인정하고 보호하려는 섬세함은 더 좋다고 생각한다.

엘리베이터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는 탈 수 있는 사람의 자격을 제한하고 있는 반면 일본은 누구라도 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무거운 짐진 사람들, 보이지 않는 곳이 아픈 사람들, 젊지만 너무 지친 사람들, 과음해서 주저앉을 것 같은 사람들에게 계단오르기는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물론 멀쩡한 사람들은 대부분 약자들에게 엘리베이터를 양보하고 급할 때 외에는 사용하지 않는다.

지금은 성이 개방되어가는 사회지만 십여년전만해도 혼전 성경험, 특히 여성이 경험했다면 남자들로부터 여자가 평가절하되는 기준이기도 했다. 결혼할 여성은 '처녀'라야 한다는 절대적인 관념에 지배되던 시대였다는 말이다. 십여년전의 일본은 어떠했나?

내가 아는 일본 남성들은 여자의 '과거'에 대해서 정죄하는 경향이 없다. 요즘 이야기가 아니라 20년전쯤에도 그러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결혼한 후에는 역시 엄격하다. 성에 대한 개념이 다르기도 하겠지만, 이 역시 절대적 가치관과 상대적 가치관의 차이가 아닌가 한다.

요즘 세상, 살기 힘든 세상,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있을 법한 '이유'까지 고려해서 서로를 대하는 사회가 살기 편한 성숙한 사회가 아닐까?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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