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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신정아와 이지영을 통해 바라본 학벌사회 |
또다시 가짜 논란이다. 한국사회의 고질적 문제가 다시금 고개를 들었다.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라던 가수 신신애의 노랫말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신정아와 이지영. 이 학벌지상주의 사회에서 가짜 간판을 달고 승승장구해오다 덜미가 잡힌 장본인들이다. 세간의 반응은 대체로 이렇다. 학력을 속인 행위는 분명 도덕적 지탄을 받아 마땅하고 또 그에 응당한 대가를 치러야 하지만, 문제의 근원은 바로 학벌 사회의 구조적 병폐에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들은 일종의 피해자다. 개인은 구조 앞에서 무력하기 마련이다. 학벌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학벌을 갖추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들이 ‘반칙’을 쓴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현실이 힘겹다고 해서 누구나 반칙을 쓰진 않을뿐더러 문제는 이 반칙의 위력이다.
학벌사회에서의 가짜 학력은 단순히 경력 한줄 허위로 보태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즉 그것은 상위 제도권으로의 진입을 보장하는 강력한 수단이다. 비록 신 씨와 이 씨 모두 학력 위조와는 별개로 그 실력을 인정받아왔다고는 하나 역설적으로 그들만큼의 실력을 갖추고도 이 사회가 요구하는 학력을 충족하지 못해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다시 말해서, 학벌사회 안의 비등한 실력을 갖춘 사람들 가운데 특정한 몇몇을 선별하게 해주는 지표가 바로 학력이다. 신 씨와 이 씨는 그것을 공정하지 못한 방법으로 얻었고, 그 덕분에 부여받은 ‘자리’와 ‘기회’로 인해 더욱 더 위로 올라갈 수 있었으며, 비슷한 시작점에 서 있던 이들과의 격차는 결과적으로 더욱 벌어졌다.
이렇게 본다면 신 씨와 이 씨는 학벌사회의 피해자인 동시에 그들과 비슷한 실력을 가졌으나 반칙을 저지르지 않은 수많은 이들에 대한 가해자다. 부당한 수단에 의한 성공은 필연적으로 사회 내 다른 구성원들의 희생을 담보하기 때문이다.
제2의 신정아와 이지영의 출현을 막기 위해서, 나아가 지금처럼 학력이 실력을 기만하는 사회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이번 사건의 결론이 ‘학력 검증 시스템의 강화’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이 학벌사회의 철옹성만 더욱 공고해질 뿐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우리는 신 씨와 이 씨의 실력이 해당 분야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에 별다른 모자람이 없었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아니, 가짜학력의 후광효과일지 몰라도 그들의 실력만큼은 뛰어났다는 것이 세인의 대체적인 평가다.
물론 가짜 학력이 가져다 준 자리와 기회가 실력을 더욱 배양했을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신 씨와 이 씨가 학력을 위조하지 않고도 본인이 갖춘 실력만으로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력이 곧 실력을 보증한다는 편견을 버리고, 학력의 위상을 지금보다 낮추어 ‘참고자료’ 정도로만 활용할 필요가 있다. 학력이 실력 위에 군림해서는 안 된다.
학벌사회의 타파는 곧 반칙 없는 사회의 구현이다. 학벌의 가치가 없다면 반칙을 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학벌을 좇아 반칙도 불사하는 사회가 아닌, 원칙에 따라 실력으로 경쟁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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